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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부활 대축일 성야 미사 040426 가해 강론
부활 성야 미사는 인류 구원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여러 가지의 독서 말씀으로 구성되며, 특히 복음 말씀은 해당 해의 복음서를 봉독합니다.
오늘 밤에 거행되는 부활 성야 미사의 주요 독서와 복음 말씀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독서: 창세 1:1-2:2 (천지 창조)
제2독서: 창세 22:1-18 (아브라함의 이삭 봉헌)
제3독서: 탈출 14:15-15:1 (홍해 바다를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
제4독서: 이사 54:5-14 (새 예루살렘의 영광)
제5독서: 이사 55:1-11 (모든 이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은혜)
제6독서: 바룩 3:9-15, 32-4:4 (지혜의 근원이신 하느님)
제7독서: 에제 36:16-17ㄴ, 18-28 (새 마음과 새 영)
로마 6:3-11; 마태 28:1-10
지금 우리는 주님을 위한 우리의 부활 성야 (復活聖夜), 즉 우리가 올리는 전례(典禮)의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 우리는 오늘 밤에 부활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당 바깥 어둠 속에서 기도의 밤을 시작했습니다. 초저녁의 편안함을 주는 어둠 속에서가 아니라, 밤의 깜깜한 어둠 속에서 시작했습니다.
침실의 따뜻하고 포근한 어둠 속에서가 아니라, 우주의 무한한 어둠 속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우주의 무한한 어둠은 곧 무거운 침묵이 예시하여 보여 주는 두려움, 공포와 외로움을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은 우리 세계에 대한 설명이며, 또한 우리 자신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차갑고, 준엄하며,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비우호적일 수 있고, 우리도 그렇게 세상을 향하여 비우호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저 역시 차갑고 어두우며, 범접할 수 없이 준엄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모습이 바로 저의 자연스러운 상태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의 이런 상태에 대하여 제가 의아스럽게 생각한다면, 바로 제가 거리에서 걸어가면서 제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무관심한 것처럼, 저 또한 그러한 군중 속의 추위와 어두움과 고독함 속에서, 저의 주변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채 해보기만 하면 금방 확답을 얻을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제 죄의 많은 부분이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에서 지어진 죄라는 것이 사실인가요? 우리는 친교를 위해, 친교 속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성(性)은 이러한 신비의 가장 기초적인 표징입니다. 우리의 우정은 분명 위로와 기쁨의 원천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린 타인과의 단절, 그리고 하느님과의 근원적 분리를 온전히 치유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친구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차가운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서로의 작은 온기를 나누며 새벽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은 마지막 추위, 최종적인 어둠, - 곧 죽음입니다.
우리의 모든 두려움과 분열, 그리고 모든 죄의 밑바탕에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현실, 차갑고 어두운 그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우리의 존재가 시작되듯, 차갑고 어두운 가운데에서 오늘의 이 밤에 이 전례를 시작했습니다. 빛이 오시지 않으면 세상이 살아가는 방식이 바로 이러한 어둠입니다.
그러나 빛이 오셨습니다!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업적을 이해하기 시작하기 전에, 축하할 수 있기 전에, 우리는 하느님의 업적이 필요한 이유를 스스로 상기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나고, 어둠은 그것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상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빛, 즉 세상의 빛을 기념하는 것으로 오늘 이 밤, 빛의 전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빛이십니다. 차갑고 효율적인 형광등 같은 빛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며 따뜻하게 데워 주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하느님의 불꽃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잠시 번쩍이며 사람을 유혹하는 네온사인의 빛이 아니라, 한결같고 신뢰할 수 있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세상 끝 날까지 동행하시는 참 빛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과의 단절, 세상과의 단절, 서로 간의 단절, 그리고 참된 나 자신으로부터의 단절이라는 차갑고 깊은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따뜻하게 비추는 빛이 있습니다.
그 빛은 죽음의 어둠마저 이겨 내는 생명의 빛입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비치고, 어둠은 그 빛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빛이십니다. 그것을 알면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 즉 하느님의 백성의 역사와 삼위일체 하느님 중 한 위이신 분의 역사를 - 자신 있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역사들이 그리스도께 의해 깨달음을 받고 따뜻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한 민족의 역사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계몽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창세기는 우리에게 우주도, 인간도, 단순히 전자(電子)의 우연한 결합이나 시공간의 일시적 일그러짐으로 생겨난 존재가 아님을 알려 줍니다.
우리는 결코 우연한 산물이 아닙니다. 온갖 신비로 가득한 이 우주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 드러내는 표징이며, 그분 안에서 창조된 질서의 반영입니다.
아브라함이 이해할 수 없는 요구 앞에서도 하느님을 믿고자 했던 태도는, 성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신 사랑을 되새기게 하며, 우리 또한 의심과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려는 마음을 성찰하도록 초대합니다.
출애굽 사건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해방시키시어, 모든 사람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해방의 표지가 되도록 부르신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를 건너며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우리도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과 새로운 생명의 은총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점점 더 깊어지는 충실함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처음 선택하신 백성도, 우리도, 완전히 충실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충실함을 새롭게 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이 온통 어둠일지라도 빛을 믿는 신앙을 다시 고백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가 충실함을 향해 더듬더듬 나아갈 때에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확신시켜 줍니다.
“빛 속에서 본 것을 어둠 속에서도 충실히 지키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일들을 올바로 알아볼 수 있는 참된 지혜와 참된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이 그 빛에 충실할 뿐 아니라, 세례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그 빛의 표지가 되고, 어둠에 잠긴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빛 자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어둠을 이기신 그리스도, 결코 꺼지지 않는 빛이신 주님과 참으로 일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분과 함께 죽었으며, 이제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잔치에 대하여 우리는 “부활, 축하합니다!” 라고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시험에 합격하셨군요! 축하합니다!” “득남/녀 하셨군요! 축하합니다!” 등이라고 하는 인사들은 모두 그런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에게 축하를 해 주는 인사들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부활, 축하합니다!"라고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우리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세례를 통해 그분의 죽음에 함께 잠겨 이미 새 생명으로 부활하였습니다. 이 새 생명은 죽음이나 어둠이 겉으로 승리하는 듯한 순간에도 결코 꺾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런 내용은 참 좋게 들리기는 하는데, 우리가 의지할 만한 확실한 근거가 정말 있는지? 묻게 될 때가 있습니다.
흔히 “믿음은 추운 밤의 짧은 담요와 같다”는 말이 있듯이, 삶에는 정말로 차갑고 어두운 밤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한때 보았던 빛을 잊어버리고, 마음을 덥혀 주던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다시 ‘빛의 자녀’로 살아가려는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되살려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교회는 오래전부터 그 답을 하느님의 말씀, 성사, 그리고 공동체 안의 사랑에서 찾아왔습니다.
그리스도 부활의 진리를 매우 강하게 상기시켜 주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 일은 바로 오늘 밤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 교회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고 감사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오늘 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증거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는 어둠이 빛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셔서 그 새로운 생명을 나누라고 부르시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모든 나약함과 불성실함에도 불구하고 빛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은 빛이 극복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매주 주일, 미사 중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다시 ‘그리스도의 몸’으로 결속되기 위해 모입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계약의 표징으로 남겨 주신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우리가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임을 고백하고 그에 합당하게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이 주일 미사 중에 우리는 두려움과 죄와 죽음의 어둠에서 해방된 그리스도의 몸,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가도록 자신을 봉헌해 올리는 것입니다.
수년 전 신학교 미사 중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성당 안에서 하나의 속삭임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속삭임이 저에게 전달되었을 때, 그 메시지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전달해 주세요."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사실 그 메시지는 무덤에 있는 천사의 메시지였습니다. 사실, 실질적으로 그 메시지는 바로 교회의 정의(定義)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어둠 속에서 승리하신다는 것을 믿고 선포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오늘의 전례 시작 때 어둠에 맞서 촛불을 든 것처럼, 우리는 어둠 속에서 빛으로 살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세례 받을 때 그렇게 하겠다고 서약했으며 곧 우리는 그 때 올린 그 성세 성사 서약을 갱신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앞에서 스스로를 ‘빛의 증거자’로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어둠을 단호히 거부하며, 아브라함이 보여준 믿음처럼 하느님께서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신뢰로 어둠에 맞서 싸우겠다는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우리의 빛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부활하셨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또한 충만한 생명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생명에 대한 우리의 서약을 새롭게 하고, 성찬례 안에서 그 은총에 감사드리며, 세상의 어두운 대낮으로 나아가 그리스도의 빛을 지니고 또 그 빛이 되어 살아갑시다.
2 예수 부활 대축일 낮 미사 040526 가해 강론
사도 10:34ㄱ, 37-43; 콜로 3:1-4 (또는 코린 5장 6ㄴ-8); 요한 201-9
이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가장 큰 축일로,
미사 중에 부활 부속가를 바칩니다.
우리는 오늘, 이날 , 부활절을 맞아 아주 멋진 인사를 합니다. "부활, 축하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떤 때 다른 사람들에게 축하 인사를 하지요? 물론 인사를 받는 그 사람들의 인생에서 멋진 일이 일어났을 때입니다.
저는 "축하(祝賀)"라는 표현으로 상대방의 기쁨을 공유한다고 생각합니다. 축하한다는 인사는 이타적(利他的)인 인사입니다. "축하"라는 단어는 상대방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이벤트 자체보다는 상대방과 이벤트의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오늘 왜 서로에게 축하를 하지요? "부활"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예수님께 일어난 일인데 왜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서로를 축하해야 하지요? 축하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아니신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께 축하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여러분이나 저는 무슨 연관이 있지요?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보니, 이제 많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 아주 확실해 집니다. 우리는 부활절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옛날 옛적에 한 번 있었던 행사로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절은 그리스도의 축일이자 우리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도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부활절을 축하해야 하고, 또 동료 그리스도교 교인들에게도 축하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내용이 부활절 미사 동안 우리가 우리의 세례 서약을 다시 갱신하는 이유입니다.
바오로 성인께서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시듯이,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우리도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기 위해 무덤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 나오시는 것을 기념하는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의 합일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 나오시 자, 우리 모두에게도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부활절은 영원한 생명 속에서 우리의 생일입니다.
영생은 언제 시작이 되지요? 우리가 죽으면 시작됩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죽음, 즉 육체적 죽음에서 영생이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영생은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신 주님과 합일하면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서약을 갱신하는 날은 진정한 의미에서 생일을 축하하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 축하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고, 우리는 그분을 통해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다고요? 제가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제 삶은 정말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다른 삶이 되었습니까?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인가요?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친절한가요?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사람인가요? 뭐, 특별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게 되지요?
제 생물학적 삶은 대부분 제 의식적인 선택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장기(臟器)가 작동하는 방식을 통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제 삶은 제 입장에서 어느 정도의 응답이 필요합니다.
부활절에 우리는 그러한 응답으로 우리의 성세 성사 서약을 다시 갱신해 올립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분리된 삶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아들과 딸로 살고자 하는 열망을 선언해 올립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영원한 삶을 살기로 하겠다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생을 선택하는 것도 기뻐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부활, 축하합니다!
이러한 성세 성사 서약은 저와 세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될까요?
우리가 올리고 갱신하는 우리의 성세 성사 서약(誓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나누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의미해야 합니다.
제가 이미 영원한 삶을 살고 있다면, 왜 이 세상에서 저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두려워해야 하겠습니까?!
저는 부활하신 주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느님과 이웃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부활에서 시작된 새로운 창조의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을 축하합니다!
부활절은 우리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부활절은 그분의 부활을 통해 영생이 여러분에게 제공된 날입니다. 하느님과 세상을 위해 그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새롭게 하는 날입니다.
부활, 축하합니다!

첫댓글 신부님♡
안녕하세요?
성주간 잘 지내고
예수님 부활하심을
축하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신부님♡
신부님 강론 부활대축일 말씀의
은혜입니다. 감사합니다 .건강의 옥체보존을 기도합니다
응원합니다 신부님
아멘 아멘 🙏
신부님 감사드립니다 ~♡
신부님 안녕하세요 작년 여름 피정집 방문한 이안젤라입니다 문경 성지를 몸소 운전하시며 구경시켜 주신 일 두고두고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답니다
가톨릭신문 보고 금경축 맞으신걸 보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름다운 노년을 봤어요 항상 행복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저를 믿음의 여성이라고 불러주셨어요 올 1월에 저의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빈자리가 느껴지지만 주님이 저의 신랑이십니다 제
남편은 저를 정화시키는 용광로 역할을 했지요 저의 남편이 저를 참된 인간으로 만들고 가셨다고 생각됩니다
신부님 금경축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박수를 보냅니다 주님께서 더욱 더 영육의 건강을 주시기 기도드립니다 안녕히 계셔요 이안젤라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신부님~~
행복한 한주 되세요^^
아멘 .🙏
감사합니다
안드레 신부님 항상건강하세요~~~♡
신부님늘감사합니다 오늘도주님과함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아멘! 감사합니다.
거룩한 성주간, 성삼일 되시길 빕니다.
강론말씀 감사히 묵상하며 부활 맞이하도록 기도합니다.
신부님 세상의 보석이신
사제님들의 50주년 금
경축!!!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으셨을지
저희 평신도 들은 상상도
못할 일들이 많으 셨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신부님들 진심으로 감사
하며 축하드립니다..
부활 성야 와 부활절
강론 말씀 으로 부활
이 무슨 의미인지
다시한번 배우며 기쁜
부활절를 기다리겠어요.
성삼일 거룩하게 잘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신부님 사랑합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성주간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죽음의길
생명의길
예수님사랑
십자가에 💕 사랑
신부님 늘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아멘.아멘.
감사합니다.
안드레아신부님!찬미예수님!오늘성목요일에축하를드립니다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은경축. 축하드립니다.
시간이 어떠신지요?
분도씨랑 찾아뵙고 싶습니다.
부활 축일 후,
화, 수요일 중에 찾아뵈올 수 있을지요?
통화가 안 되더군요.
연락이나 문자 주십시요.
강귀주. 분다 드림
산부님.
오타입니다.
금경축 축하드립니다.
문자 보시면
부활 대축일 후, 화요일이나 수요일에 찾아 뵈올 수 있을지요?
신부님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요?
금경을 착하합니다. 주님의 복음으로 더욱 축복되고 기쁜 사제생활을 하시기 빕니다.
존경하는 신부님,
금경숙 큰축하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늘 건강과
기쁨을 부어 주심을 봅니다.
신부님,
통화도 안 되었고,
문자 드렸는데도
못 보신 것같아, 다시
톡으로 문의 드립니다.
찾아 뵙고 싶습니다
부활 축일 후,
화요일 이나
수요일에
신부님 시간이
어떠신지요?
찾아 뵈어도 되겠는지요?
신부님,
연락 바랍니다
네~~
신부님,
알겠습니다.
상주, 김태영 분도씨랑 함께 갈 예정입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 신부님,
분도씨랑,
수요일, 10시30분 미사 전에 도착해서
미사 참석하겠습니다.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안드레아신부님!찬미예수님!축하합니다!건강하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