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피플외
강진영
이것은 나크다크* 맛이군 자네 언제 나크다크를 먹어본 거지? 먹어보지 않았지만 맛은 안다네 자네 미각에는 진정성이 없네 몽마르뜨 언덕의 공중전화기에 대한 시를 읽은 적이 있지 그 것은 존재에 대해 철저하게 파고드는 시여서 읽는 동안 담배 한 갑을 다 태우고 말았네 나는 그 공중전화기가 몹시도 궁금하여 파리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했다네 몽마르뜨에 공중전화기라, 그럴듯하게 속았군 그보다 이 시집 이야말로 진정성을 보여준다고 하니 한번 읽어 보게나 난 이미 읽었네 아직 출판되지 않은 시집이라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늘 그런 기분에 휩싸인다네 이것은 읽었던 것이 아닌가 모든 무덤을 하나의 무덤으로 보는 묘지기처럼 말인가? 자네도 그 묘지기를 알고 있군 그는 또한 하프너**이기도 하지 알래스카에 사는 나의 친구네 자네는 알래스카에 간 적이 한 번도 없지 않은가? 사냥을 취미로 하는 이들이 있었지 그들이 하프너의 마을에 침범하여 구역을 나누었을 때 나는 그와 똑같은 두려움을 느꼈 다네 하프너는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하지 때로는 취미로 사냥을 하는 이들이 더 많이 잡는다는 것을 나 도 알고 있네 나는 카리부*** 무리가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가다가 그들이 떼 죽음을 당할 때 그중 한 마리로 누워 있었다네 내 피는 차갑게 굳 어갔네 그 후였네 내가 이렇게 자주 몸을 떠는 것은 자네는 지금 이렇게 뜨겁지 않은가 몸이 추울수록 마음에 불을 피우게 되더군 알래스카의 불을 지키는 여인처럼 말이야 나와 함께 그 여인을 확인하러 가보지 않겠나 그녀는 내 안에 살아있다네 나크다크의 맛처럼, 나는 여기서 바다물범 기름을 태우겠네
*고래껍질로 만든 이누이트 요리 **그래사냥에서 우미악(이누이트가 사용하는 가죽보트) 맨 앞자리에 앉아 작살을 찌르는 역할 ***북아메리카 북쪽에 사는 순록
헬로우 스마일
내가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고 싶다고 했을 때 그녀는 신나보 였다 어느 병원에 가면 좋을지 몰라서 불어보았을 뿐인데 -각오 단단히 하고 가 그래야 충격을 덜 받을 테니까 끝나면 전화해 들어줄게
로르샤흐테스트* 그림을 보고 '하늘에서 내려다본 숲의 모습' 이라고 대답했다 관망적인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난 관망적 인 사람이 되는 것 같고 내가 부끄러워서 숨기고 있는 것 같다고 상담사가 말하면 난 부끄러운 사람인 것 같고
그때 상황을 천천히 설명해봐요 주변은 어땠는지 당신의 얼굴 표정은 어땠는지 구체적으로 (나의 얼굴 표정?)
미안해요 얼굴 표정 보지 못해거 미안해요 낮술을 마시고 와서 미안해요 필름이 끊겨본 적 없어서 공이 날아오는데 피하 지 않아서 미안해요 잘못된 것을 느끼지 못해서 노트를 낭비해 서 물병에 입을 대고 마셔서 미안해요 꼭 그날 생리를 해서 (그런데 '펼쳐진 생리대 같아요' '질의 단면처럼 생겼어요'라는 대답의 결과는 왜 말해주지 않는 거지?)
이제 이 고백을 해야 할 것 같군요 상황이 뒤집힐지도 몰라 서 반성을 했어요 반성은 반전이나까 나는 빼곡하게 적힌 노트를 꺼냈다 내가 쓴 문장들이 사건을 불러왔고 내 죄의 증언이 되었다고 기도하는 손은 잘못을 빌면 서 두 손을 비빌 때 처음 만들어졌다고
별 문제는 없는데 왜 왔는지 모르겠네요 그는 애써 여러 검사 를 했고 (괜찮아 보인다는 말을 들으러 여기 온 건 아닌데) 필요할 지 모르니 약도 줄래요? 약은 내 병을 찾아낼 거에요 벌 을 주면 죄가 생기는 것처럼 그제야 그는 나를 이상해하는 것 같았고 난 덜 미안해졌다
- 괜찮아?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나도 그랬어 기대에 찬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의사가 약을 주지 않더라는 얘기는 할 수 없었다
*잉크 얼룩같은 도형을 해석시켜 사람의 성격을 판단하는 인격진단법
야마하 기타를 칩니다
조심히 앉으라니요? 차라리 기타 줄을 조심하라고 일러주면 모 를까
나는 쇼파에 앉습니다 팔걸이에 두 다리를 걸치고 나는 이 소파 와 함께할 거에요 탕진할 때마다 예쁘게 해진 쇼파에서
나는 애써야만 했습니다 딱딱해질 순간을 위해 당신은 간단했어 요 털썩 주저앉으면 쇼파는 쇼파가 되는 것처럼 우린 구조에서 부 터불평등해요
수줍어하지 않아서 수상하다니요? 기타를 너무 잘 튕겨서 난 해 고당 했었죠 지난 여름 쇼파에는 담배 냄새가 가득 배었어요 러브 모텔같이 천장에 거울을 달고 내가 젖을 수 있는 선율을 연주 합니 다
배영의 자세로 힘을 주지 않아야 떠 있을 수 있어요 거울 속엔 더 많은 쇼파들이 떠 있네요 하얀 눈이 덮인 쇼파 시커먼 구름을 뒤집 어쓴 쇼파 물고기를 집어삼키는 쇼파
신청곡을 부탁하는 대신 물장구나 치는 게 어때요? 당신은 누워보 기 전까지만 누워보고 싶던 해먹처럼 구는군요
처음 듣는 곡이지만 처음 같지 않은 곡을 연주합니다 당신 손가락 에 굳은 살이 배기지 않는 것엔 관심 없어요 나는 명랑할 겁니다 성 생활하는 태아처럼*
그리고 연주가 끝나면 바로 일어설 겁니다 내 얼룩은 닦아내지 말 아요 김이 새버렸다면 쿠션이나 쌓아두시죠
*밀란쿤테라「정체성」
강진영 1982년 제주 출생.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춘천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작가전문가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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