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님의 살면서, 사랑하면서: 95일 만의 귀가 ◈
지근거리에 살며 자주 왕래하는 목사님이 달뜬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목사님, 다롱이가 돌아왔습니다. 송천동에 있는 동물병원에서 찾았습니다. 이제야 두 다리 쭉 펴고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해 10월 경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말티즈) 네 마리 중 한 마리를 운동 중에 잃어버렸는데 95일 만에 극적으로 다시 찾았다는 겁니다.
개를 잃어버리고 사모님이 얼마나 속상해 하셨던지 그동안 집안이 얼음장 같았는데 이제 봄을 맞은 것 같다며 좋아하셨습니다.
제일 먼저 이 소식을 내게 전해드려야 한다며 사모님께서 전화 걸 것을 서두르셨다는 말에 사모님이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강아지를 잃은 후 식음을 전폐 하다시피 하며 눈물로 여러 날을 지새우고, 전단지를 만들어 곳곳마다 뿌리는 것은 물론 동물병원과 유기동물 보호소를 찾아다니고, 온 동리를 헤매고 다니기를 수십 일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개 한 마리 잃은 것에 뭐 그렇게까지 난리냐며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유독 나만 자신의 아픔처럼 여기고, 반드시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기에 제일 먼저 알리는 것이 도리라며 전화를 재촉하셨다는 겁니다.
난 전화를 받고 축하의 인사를 건네다 동반하여 작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위로가 주는 힘’입니다.
앞일을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에 대하여 절망적인 말보다 희망적인 말의 소중함은 크다 못해 위대합니다.
95일 만의 귀가(歸家)! 강아지로서는 기적 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기적 같은 일 뒤에는 포기하지 않은 주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무심코 던진 소망의 언어를 진정으로 받아들인 사모님의 믿음이 가져온 결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살지 않은 시간에 대한 세상의 모든 일에 부정(否定) 보다는 긍정(肯定)을, 절망(絶望)보다는 소망(所望)을 말하는 사람이 됩시다.
소망은 경험보다 위대하며, 긍정은 결과보다 아름답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