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 050326 가해 강론
사도 6:1-7; 1베드 14:1-12; 요한 14:1-12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요한 14:8) 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빙빙 돌려서 하시는 복잡한 말씀은 제발 좀 그만하시고, 저희가 금방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좀 말씀해 주시기바랍니다.
쉽게 말씀해 주셔도 우리는 믿을 것입니다.’ 라는 식으로 예수님께 말씀을 드린, 참 딱하기도 한, 필립보에게 저도 공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2천 년 전, 그 당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음은 사실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옛날의 그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소위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자처하는 우리도, 여전히 그런 문제를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종종 그렇듯이 우리가 추구하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증거는 바로 우리의 눈 앞에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그 증거는 우리가 어디를 가든 바로 우리 눈 앞에서 얼른거리고 있습니다.
우리들 자신이 바로 그 증거인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확신에 대하여 필요하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증거는 바로 우리들 자신인 것입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기본적으로 제 자신의 자아(自我)가 거처하는 곳은 바로 저 자신의 몸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저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저는, 제 몸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거주하시는 곳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미리 약속해주신 대로 십자가에까지 올라 가셨다가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는, 바로 우리들 자신인,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는 많은 거처할 곳이 있습니다.
천주 성부 (天主聖父)와 천주 성자 (天主聖子) 예수께서는 한 분이시기 때문에 결국 어디에 계시든지 우리가 있는 곳은 바로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하느님 나라인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면, 교회를 보거나 나 자신을 보면서 “여기 천국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네, 저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의 내용은 바로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하신 말씀의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고문과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시면서 당신께서는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지상에 하느님의 왕국인 천국이 있다고 해서 악, 고통, 죽음의 가능성이 반드시 배제되는 것은 분명히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을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가 ‘요한 복음서 저자’ 라고 부르는 복음사가의 신학을 이해해야 합니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의 승천 때 드러나는 사건이, 요한 복음에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미 이루어집니다. 요한에게 십자가는 곧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드러남(영광화)’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수난에 들어가시기 직전에 “사람의 아들이 이제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라고 말씀하시며, 십자가 사건 자체가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순간임을 밝히십니다.
요한 신학에서 ‘영광화(Glorification)’는 단순히 부활 이후의 영광만을 뜻하지 않고, 십자가–죽음–부활–승천이 하나의 구원 사건으로 통합된 하느님의 결정적 계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갈바리아의 십자가는 이미 승천의 의미를 내포한, 하느님의 구원이 완성되는 자리로 이해됩니다.
하느님께서 왜 세상에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 고통은 다른 이들의 극심한 고통에 비하면 미약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겪는 고통은 그 고통을 겪고 있는 그 사람에게는 결코 가벼운 고통이 아닙니다.
제가 삶에서 겪는 많은 고통은 사실 제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 그런 고통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저의 나약함과 죄를 치유하기 위한 일종의 영적 훈련처럼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결코 마땅하지 않은, 이유 없이 주어지는 고통도 너무나 많습니다.
사실 고통은 삶의 많은 부분이 다른 생물의 섭취에 의존하는 삶의 기본 현실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죽이고 먹습니다.
그래서 여러 형태로 고통을 받는 다는 이야기는 바로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야기 전체는 아니지만 사랑, 우정, 좋은 유머, 그리고 다른 은혜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은 이 이야기 속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가 견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재앙을 승리로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되는 내용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요한 14:12)
이런 일은 우리가 그 어디에 있든, 우리가 그 누구이든, 우리의 숫자가 그 얼마나 많든,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 그 성령을 통해서 하는 일입니다. 그 당시의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언제든지 소수의 사람들과 만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만 예수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한계 속에 가두는 시간과 장소의 한계는 예수님도 그런 한계 속에 감싸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아버지께 가신다는 것은 하느님의 성령이 우리들 중에서 우리와 함께 현존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 어디를 가든지 우리가 가는 곳에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가 그 무엇을 견디어 내든지 우리가 견디는 것에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견디어 주십니다.
하느님의 성령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현존하고 계십니다. 천국은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이 정도만 말씀드려도 충분하겠지만 더 많은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존재는 바로 세상에 현존하는 왕국의 존재이셨고, 성령께서는 우리들 중에서 현존하시는 그 존재의 연속이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에는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자체가 죽을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1코린 15:19) 라고 상기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하느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왕국의 충만함과 충만함을 위해 기도합니다. 왕국은 세상을 위해 준비된 것이지만, 여러분과 저를 위해 준비된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오늘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사는 곳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만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집에서 우리 각자가 함께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많은 거처'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꽃이 넘 예쁘게 피었네요~
감사합니다 ~^^
아멘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신부님
아멘!아멘!
말씀 묵상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속 미소짓는 모습에 한걸음에 달려가 신부님 뵙고 싶습니다. 건강하시어 저희들에게 평화의 기쁨을 오래도록 전해주셔요
아멘 🙏 감사합니다
아멘 .🙏
행복한 5월이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성도님 사랑이
가득하세요
성모님 수정합니다
신부님늘감사합니다 늘주님의사랑이가득하시길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요즘 일교차가 심한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
아름다운계절 성모성월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