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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일차> 2011년 11월 14일(월) 시닝, 맑음/옅은 안개, 시닝의 명물들
어제 저녁 8시13분 시안(西安)을 출발한 기차는 밤새 달려 중국 서부의 중심도시인 란저우(兰州)를 지나 시닝(西宁)으로 향했다. 산시성(陕西省)에서 출발해 간수성(甘肃省)을 지나 칭하이성(青海省)으로 가는 12시간의 긴 여정이었다. 간수성의 텐수이(天水)와 간구(甘谷) 지방은 끝없이 펼쳐진 계단식 밭으로 한번 방문하고 싶은 곳이었지만, 한밤에 그냥 스처 지나간 것이 못내 아쉬웠다. 프랑스의 여행가는 이곳의 어마어마한 계단식 밭이야말로 인간이 삽과 곡괭이를 갖고 수천 년 동안 만들어낸 걸작 중의 걸작이라며, 세계문화유산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 곳이었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그런 장관들을 지난 것이었다.
밤새 달린 기차는 칭하이성 핑안(平安)을 거쳐 시닝으로 향했다. 시닝은 해발고도가 2275m로 매우 높았지만, 기차를 타고 가면서 그걸 느끼지는 못했다. 새벽에 어렴풋이 잠에서 깼으나, 주기적으로 덜컹거리는 기차 레일 소리와 가볍게 흔들리는 것만 느낄 수 있을 뿐 기차 안은 여전히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이따금 가볍게 코고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커튼을 펼치고 창밖을 보니 짙은 어둠 사이로 가끔 남루한 마을과 허물어져가는 집들이 눈에 띌 뿐이어서 열차가 점차 삭막한 고원지방으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새벽에 잠에서 깬 후 설핏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7시 가까이 되자 차장이 실내에 불을 켰다. 베이징 같았으면 벌써 날이 밝을 때지만, 우리가 서쪽으로 한참을 이동했기 때문에 창밖은 여전히 짙은 어둠에 쌓여 있었다. 엄청나게 넓은 땅덩어리를 동일 시간대로 책정해 놓고 있는 중국의 현실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중국은 모든 것을 베이징 중심으로 운영할 뿐 각 지역의 특성과 고유의 생활양식에는 별 관심이 없는 참 무지막지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 하나만 보더라도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소수민족들을 중국 정부가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 그것을 소수민족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상상이 갔다.
기차는 예정시간보다 1시간 정도 빠른 7시30분 시닝서역에 도착했다. 11시간20분 정도가 걸린 기나긴 여정이었다. 시닝에 도착해서도 걱정했던 고산증세는 별로 느낄 수 없어 내심 안심이 됐다. 하지만 기차에서 내리자 차가운 새벽 공기가 확 밀려왔다. 해발고도가 높은 중국 서부 내륙 깊숙이 들어왔음을 그 차가운 공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역을 빠져나가기에 앞서 긴급하게 배낭을 풀고 스웨터와 잠바를 하나씩 더 끼어 입었다. 다른 중국인들의 복장을 보니 한겨울에나 입는 두툼한 방한복으로 몸을 둘둘 감싸고 있었다. 시안에서 미리 겨울용 옷과 모자, 장갑 등을 준비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시안에서 장갑이나 모자, 목도리 같은 방한 용구를 충분히 구입하지 못한 승희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시닝서역은 임시로 지은 역사처럼 보였다. 역 부지와 역사는 중국 서부의 교통요지답게 매우 컸지만, 건물은 철골 골조에다 샌드위치 판넬을 덮은 가건물 형태를 띠고 있었다. 주변의 상가도 아직 정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닝 서부엔 대규모 신도시가 조성되고 있었고, 시닝서역은 이 신도시 조성에 맞추어 새로 건설되고 있는 중이었다. 때문에 시내버스와의 환승 시스템도 완전히 구축되지 않았고, 이렇다 할 표지판도 눈에 띄지 않는 등 역 앞이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역에서 나와 바로 5번 버스를 타고 예약해 놓았던 레테유스호스텔(理体青年旅舍)로 향했다. 시안에서 유스호스텔에 가는 방법을 치밀하게 조사를 해 놓았던 관계로 이전처럼 크게 헷갈리지 않고 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레테유스호스텔은 론리 플래닛과 우리가 애용하는 인터넷(www.hostelworld.com)에서 시닝의 가장 편안하고 저렴한 숙소로 꼽혀 있던 곳인데, 아파트 15~16층을 개조해 만든 아기자기하면서 공간 활용도가 뛰어난 곳이었다. 유스호스텔에선 시닝 시내가 내려다 보여 전망도 괜찮았다. 체크인을 한 다음, 10시께 유스호스텔 앞의 신장개업한 음식점에서 한국의 부대찌개와 같은 잡탕찌개식 국수 요리로 푸짐하면서 뜨끈하게 식사를 했다. 국물도 한국인 입맛에 맞게 매콤하게 만들어져 있어, 야간 침대열차에서 시달리던 몸과 속이 확 풀리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다음 시닝박물관을 갈까 하다가, 좀 쉬는 게 낫다고 판단해 숙소로 돌아왔다. 유스호스텔에서 내려다 본 인구 220만명의 대도시인 시닝은 개발이 거의 완료된 듯한 모습이었다. 숙소 인근으로는 10층 안팎의 비교적 높은 아파트를 비롯해 새로 지은 건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고, 멀리 시내 쪽에는 급성장하는 중국의 경제를 상징하는 듯 고층빌딩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유스호스텔 바로 뒤에는 공원이 조성돼 있어 산책하고 운동하는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중국이 서부 대개발에 착수하면서 시닝을 비롯해 란저우, 우리가 앞서 둘러보았던 시안과 같은 거점도시들을 우선적으로 개발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동안 묵었던 유스호스텔은 모두 1~2층에 자리잡고 있었던 데 비해 레테유스호스텔은 아파트 고층을 개조해 만든 관계로 매우 조용했다. 그런 만큼 이 유스호스텔은 중국인들의 일상생활 공간과 격리돼 있는 곳이었다. 다른 유스호스텔은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중국인들이 생활하는 거리가 나왔지만, 여기서는 15층을 내려가야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 한 가운데 있어 길거리에 사람도 많지 않았지만... 역시 아파트는 사람을 고립시키는 주거공간으로, 이 유스호스텔은 그런 아파트 한가운데 자리잡은 여행자들의 섬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스호스텔에서 쉬다가 3시에 시내도 둘러보고, 저녁도 먹을 겸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그에 앞서 시닝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인 칭하이호(靑海湖) 여행 방법을 알아보았다. 칭하이호수는 시닝에서 한참 떨어져 있어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이 어려웠다. 때문에 현지 투어 프로그램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유스호스텔에는 1인당 60~120위엔의 다양한 1일 칭하이 투어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포스터가 걸려 있어 그걸 알선하는 여행사를 찾아 나섰다.
우리는 유스호스텔의 소개로 바로 위층에 있는 티벳여행사로 올라갔다. 그러나 티벳여행사에서는 이런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지만, 기사가 딸린 자동차 렌트를 알선해줄 수 있다며 운전수를 포함한 렌트비 1000위안(약 20만원)과 수수료 1인당 25위엔(5000원, 합계 2만5000원)을 제시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가격이 비싸 혀를 내두르며 저렴한 투어 프로그램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직원은 중국 로컬여행사를 알아볼 것을 추천했다. 그러면서 그런 싼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칭하이호 관람은 잠깐 들르는 정도로 끝내고, 이곳저곳 쇼핑몰로 끌고 다니며, 경우에 따라선 쇼핑을 강요당하기도 한다고 약간 겁을 주었다.
우리는 다소 망설였지만, 로컬 여행프로그램을 통해 중국 사람들하고 같이 여행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1층에 있는 중국여행사로 내려갔다. 그러나 우리가 내려갔을 때 그 여행사 문은 닫혀 있었다. 지금이 비수기라 일찌감치 영업을 끝낸 것 같았다. 결국 칭하이호수 여행 프로그램은 내일 다시 알아보기로 하고, 시내로 직행했다.
시내로 나오자 유스호스텔에서 봤던 것처럼 시닝시는 다른 도시에 비해 상당히 깨끗했다. 왕푸징(王府井)백화점이 있는 시내 중심가는 이미 대자본과 금융기관들이 모두 장악했고, 우리가 태산이나 뤄양 같은 중소도시에서 보았던 서민적 풍모의 가게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도로도 중앙분리대가 설치돼 있고, 인도와 차도를 나누는 철책이 세워져 있어 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지하도로 통행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중국 중소도시들이 자동차와 자전거, 오토바이, 행인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던 것과 확연히 다른 것 같았다. 뭔가 깔끔하고 현대화된 모습이지만, 반대로 사람 냄새는 많이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길을 건너기 위해 지하도로 내려가니 입구가 두툼한 천막으로 가려져 있어 마치 입구 같지가 않았다. 시안에서 한두 번 보았던 천막이 시닝에서는 지하도나 상점의 입구 등에 일반적으로 사용돼 이색적이었다. 바깥의 찬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천을 두툼하게 해서 만든 일종의 차단막이었다. 언뜻 봐서는 일반인들의 통로라고 보기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손때도 잔뜩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밀치고 들어가자 엄청난 지하상가가 펼쳐졌다. 다른 세계였다. 안과 밖이 이렇게 다를 줄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였다.
지하상가는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길게 만들어져 있었다. 중심도로 전체에 지하상가를 만들어 시민들도 그곳을 통해 통행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거의 모든 중국의 도시가 항상 엄청난 사람들로 붐볐는데, 이곳 시닝 거리에선 이상하게 한산한 느낌을 가졌던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하상가는 공기가 다소 탁했지만, 난방이 잘돼 겨울철에 추위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매장들은 모두 깔끔하게 단장돼 의류와 가죽제품 등을 팔고 있었다. 변화하는 중국의 모습을 한눈으로 보여주는 지하상가였다. 구질구질하고 먼지 나는 중국의 도로들을 돌아다니며 고통을 받았던 아이들은 현대적 매장들이 죽 늘어선 깨끗한 지하상가가 마음에 드는지 단연 활기를 보였다.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지하상가를 지나 우리는 시닝의 가장 큰 전통시장인 수정항(水井巷) 시장으로 향했다. 수정항 시장은 시닝시를 정비하면서 전통시장을 새롭게 단장한 것이었는데, 그곳 설명문에는 약 340m의 거리에 1천여 개의 작은 점포들이 모여 있다고 적혀 있었다. 점포들에선 각종 토산품과 기념품, 먹거리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특히 다른 중국 지역과 달리 티벳 불교와 관련한 제품과 양와 돼지 닭 등 고기를 포함한 식품류, 티벳 고원에 사는 야크를 재료로 한 가죽제품과 말린 야크고기까지 판매해 이곳이 티벳고원에 가까운 곳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수정항 시장을 죽 들러보다 우리의 눈을 확 잡아당긴 제품들을 발견했다. 바로 야크고기 육포와 양고기였다. 티벳고원에서 주로 생산되는 고기들을 가공한 제품이었다. 말린 야크고기는 다양한 종류가 생산돼 팔리고 있었다. 원래의 맛을 살린 제품, 매운 맛이 나는 제품, 다섯가지 맛(五香味)을 넣은 제품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우리는 그 중에서 깔끔해 보이는 5향미 제품(26.8위엔, 약 5300원)을 사서 맛을 보았는데, 모두들 맛이 괜찮았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한 봉지를 먹어치우는 식성을 발휘했다. 한국식으로 보면 육포에 중국식 조미를 한 제품으로, 여기가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제품이라며 모두 즐거워했다. 나중에 시닝시에서 제작한 여행안내서를 보니 말린 야크고기(牦午肉干, 마오우러우칸)는 야크 살코기를 삶아 산초, 카레가루, 설탕, 소금, 후추 등으로 간을 하고 불에 말린 것이라고 설명돼 있었다.
양고기도 많이 팔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시장의 한 이슬람 간이음식점에서 시닝의 특산품인 쒀우꽈양러우(手胍羊肉) 맛을 보았다. 양의 갈비를 통째로 삶은 다음, 먹을 만큼 잘라 꼬치로 만들어 살짝 구워 먹는 것으로 맛은 일반 양꼬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양고기를 삶은 다음 굽기 때문에 육질이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것이 특징이었다. 우리는 쒀우꽈양러우(48위엔, 9600원)와 함께 양의 내장으로 만든 순대(20위엔, 4000원), 양고기 삶은 육수에 쌀보리를 넣어 만든 스프(5위엔, 1000원)를 먹었는데, 모두 먹을 만했다. 새로운 음식에 대해 경계감을 많이 표시하던 승희도 거리낌 없이 젓가락을 들이댔다. 적극적이고, 도전적으로 변하는 승희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요리에 부쩍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동희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나서 주문을 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관심 있는 부문에 대해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동희가 대견해 보였다.
수정항시장에서 이 가게 저 가게 돌면서 상당한 음식을 먹어치웠다. 우리가 대략 한끼 식사하는 금액에 상당하는 100위엔 가까이를 지출했다. 창희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자꾸 이것저것 군걸질 같은 것을 하는 게 불만이었다. 자신은 오늘 저녁으로 푸짐한 뷔페를 먹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식으로 자꾸 배를 채우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가난한 장기여행자로써 여간해선 가기 어려운 뷔페를 기왕에 갈 것 같으면, 속을 말끔하게 비우고 가야 본전도 뽑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데, 이렇게 자꾸 시장을 돌아다니며 배를 채우면 어떻게 하느냐는 불안(?)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케이. 지금부터 주점부리는 끝이다! 저녁은 뷔페로 간다!”고 선언을 했다. 그러자 창희도 안심을 하는 눈치였고, 동희와 승희도 ‘좋다’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시내 중심가를 한바퀴 빙 돌아 지금까지 먹은 야크와 양고기를 어느 정도 소화시킨 다음, 천천히 뷔페식당으로 향했다.
우리가 들른 오리거스(好伦哥) 뷔페는 얼마전 산동성(山東省) 타이안(泰安)에서 들렀던 뷔페와 같은 체인점으로 왕푸징(王府井)백화점 2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뷔페 분위기가 타이안과는 완전히 딴 판이었다. 타이안에서는 손님들이 먹을 만한 음식을 접시마다 듬뿍듬뿍 덜어다 놓고 일반 음식점에서와 같이 식사하고 있었는데, 시닝은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만 조금씩 덜어다 먹는 분위기였다. 시닝이 상당히 세련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잽싸게 분위기를 눈치 채고, 각자 먹을 만큼만 음식을 덜어다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자연히 동희의 꿈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가 흘렀다. 동희는 주저주저 하면서 여간해선 이야기하지 않던 음식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털어놓았다. 자신은 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그 동안 고고학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쪽(고고학)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창희와 승희도 자신의 꿈에 대한 동희의 말에 집중했다. 나와 아내는 동희에게 앞으로 여행을 하면서 각 지역의 요리와 그곳의 자연환경, 역사적 문화적 특수성 같은 것들을 같이 고려하면서 요리를 비교할 수 있도록 더 관심을 갖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요리에 대한 동희의 관심이 얼마나 지속될지, 자신의 꿈이 또 어떻게 바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으나, 어차피 관심이 있는 것이라면 한번 도전해보고 경험해봐야 관심 영역을 확대하든, 아니면 다른 것으로 관심을 옮기든 할 것이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모처럼 동희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는 여행이 아니었다면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동희가 서울에 있었다면 매일 반복되는 학교 수업과 오후 10시까지 지속되는 야간 자율학습 등으로 쳇바퀴 굴러가듯 하는 일상을 지속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자신의 꿈을 찾고 키워나가는 여행의 단초를 엿본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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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이들이 커가는것이 보여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성공한 계획이란 생각이 드네요.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면 더욱 성장하여 참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기녀요.
건강하고 행복한 여행이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