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축문 간지에 대한 소고 : 白 雲
◑, 삭(朔)과 월건(月建)의 관계
축문의 전문(前文)중 태세간지(太歲干支) 다음에 기월(幾月) 간지삭(干支朔)이라 되어 있는데 삭의 의미가 초하루냐, 달이냐에 대하여 일부에서 이의(異義)가 제기된 바 있어 이를 해명하고자 한다.
대구에서 발행되는 족보신문(99년 1월호)에 한산이씨 대종회 이원규 부이사장(韓山李氏 大宗會 李元珪 副理事長)의 기고에 의하면 삭 자는 초하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달(月)을 의미한다고 다음과 같은 이론을 들었다.
첫째, 삭자는 초하루도 되지마는 달 삭자로도 해석되는 복합적 의미를 갖는 글자로서 이 경우는 달 삭으로 본다고 하였다. 예로 사글세(朔月貰) 또는 만삭(滿朔) 등은 달 삭자로 해석되며,
둘째로, 문체순서로 보아 태세(太歲) 월건(月建) 일진(日辰)순이 되어야 하고,
셋째, 초하루 삭이 맞다. 고 하면 문법구성상 간지 삭(朔)이 아닌 삭 간지(朔干支)로 해야 하며,
넷째로 월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초하루간지가 들어감으로 다음에 그날의 일진과 중복되는 모순이 있다고 하였다.
이 문제를 검토한 바 보첩부록 60면의 서식중 기제축(忌祭祝 조부모의 경우) 예시(例示)에는 분명히 태세, 월건, 일진이라 되어 있어 50면의 태세 다음에 삭은 초하루 일진이라 설명된 것과 상반되어 이를 확인코자 중앙종회를 통하여 성균관 전례연구위원회 위원장 권오흥(成均館 典禮硏究委員會 委員長 權五興)씨에게 조회질의 한 바 다음과 같이 회시되어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삭(朔)과 월건(月建)에 대한 고증
문헌 :역법원리분석(歷法原理分析) 정음사간 이은성(李慇晟) 칠정산외편역주자(七政算外篇譯註者)
① 삭(朔)에 대하여
일진(日辰)의 간(干)과 지(支)에 기록으로 조선왕조실록 연대기에 역일(歷日)은 적지 않고 일진만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다. 일진을 쓴 후 그날에 일어난 사실만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역일(歷日)보다 일진이 더 확실성이 높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또 일진 기제축문에 '유세차 을미 팔월 임진삭 십삼일 갑진 효자 모 감소고우(維歲次 乙未 八月 壬辰朔 十三日 甲辰 孝子 某 敢昭告于) 이 글은 을미년 음력 8월 초하루의 일진이 임진이고, 13일의 일진이 갑진이라 한다.
세차 월건 및 간지 기시법(紀時法)에서 년의 간지를 세차(歲次) 월(月)의 간지를 월건(月建)이라 했다. 세차는 간지기년법(干支紀年法) 월건은 간지기월법(干支紀月法)을 밝히고 간지기시법은 매일의 시각을 간지로 나타내는 방법이라 했다. 이와 같이 년에 간지(干支)를 배차(配次)하는 것을 간지기년법(干支紀年法)이라 하고 이때의 간지를 세차(歲次)라 한다.
역에 관한 간지는 오행(五行)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으로 월건은 간지인 간십이지(干十二支)를 음력매월에 배치하여 쓰는 것으로 달마다 십이지(十二支)를 고정 배치한 예로서 정월은 인월(寅月), 11월이 자월(子月), 12월을 축월(丑月)이라 한다.
2. 삭(朔)과 망(望)에 대하여
달은 매일 매일 그 위상이 변한다. 달의 위상변화는 합삭과 망을 가져오고 일식과 월식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합삭(合朔) 시각이던 날을 음력 초하루라 정하였다.
부모의 복중에 있는 가정에서는 삭망전(朔望奠)이니 삭망차례니 하며 음력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아침에 제물을 차려놓고 곡을 하면서 제사를 지낸다. 삭망전에서 삭은 음력으로 무조건 초하루 날에 행한다. 합삭(合朔)이란 달과 태양이 궤도상(황경)에서 겹치는 때를 말하는데 이때 태양은 달의 뒤쪽을 비춰주고 지구에서는 달의 그늘진 부분만 보게 되므로 달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이후 계속 변하여 보름 그믐으로 초승 등으로 순환한다.
달은 1삭망월동안에 합삭 → 상현 → 망 → 하현 → 합삭의 순서로 월상이 반복하여 변한다.
달의 원구상의 궤도를 백도(白道)라 하며 1회 운행하는 동안에 29.53일을 주기로 변한다. 이것은 1태음월(太陰月)또는 1삭망월(朔望月)이라 한다.
◑, 결론
190쪽 조선왕조실록 연대기에 역일(歷日)을 적지 않고 일진만 기록한 예로 일진이 더 확실성이 높다는 견해로 기제 축문에 삭일을 쓴 점과 세차 월건 간지기시법에서 기년기월기시(紀年紀月紀時)에 천간지간(天干地干)을 순차 배당 순차 배당하며 편의상 사용됐다는 설명이고, 삭(朔)과 망(望)에서 삭은 해와 달이 궤도상에서 겹치는 때를 말하며 이때를 반드시 삭으로 정했다는 설명과 달이 1삭망월 동안에 변하는 현상을 합삭→ 상현 → 망 → 하현 → 합삭의 순으로 월상이 순환반복하는데 합삭하는 시기를 삭이라 하였으니 삭은 월건(月建)과 다른 것임을 확인케 된다.
이 문제를 좀 더 쉽게 부연 결론지우자면 월건 자리에 초하루 일진이 들어가고, 그날의 당해 일진과 중복되는 사유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음력의 달은 삭망(朔望)이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는 역법(歷法)에 의한 것으로 그달의 초하루가 그달의 모든 기준이 됨으로 과거 왕조실록에도 사건의 날자를 생략하는 반면 그날의 일진을 쓰는 경우가 허다하였으며, 월건은 정월(正月) 인월(寅月)로 시작하여 12월 축월(丑月)로 끝나며 매년 12지(支)가 고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윤달(潤月)이 있는 해의 윤달은 월건 간지를 배당받지 못함으로 월건 간지가 있을 수 없다. 고로 축문상 월건은 아무 의의(意義)가 없다. 따라서 축문 서식상 삭(朔)자는 초하루 일진이 분명하다.
참고로 1972년 공주에서 발굴된 무령왕릉 묘지석(墓誌石)문의 일부를 소개하면 『백제 사마왕년 62세 계묘년 오월 병술삭 칠일임진붕(百濟斯麻王年 之十二歲癸卯年(서기 523년) 五月 丙戌朔 七日壬辰崩)』이라 명기됨을 보아도 옛날인 백제시대에도 삭의 개념이 활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사축문 서식을 옛것과 근대 것을 비교한바 일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고(별표서식) 옛날 유학자의 집약된 표본으로 감히 이를 비판함이 아님을 전제하고 의문점 또는 난해한 점 그리고 심오한 의의를 찾아 이해와 공감대를 이루고자 함이니 첫째 연호(年號) 둘째 삭(朔)과 월건(月建)의 관계 셋째 종합편으로 고찰키로 하겠다.
◑. 연호문제
근대서식에는 연호가 누락되어 있는데 그 사유를 살피건대 근대서식의 적용을 대전(大田)의 회상사(回想社) 발행의 대동보 부록의 58면에서 65면까지의 축문서식을 활용함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결 같이 연호가 누락됨을 볼 수 있다. 태세(太歲) 간지(干支)는 60년마다 되풀이 되므로 연호(年號)가 표기됨이 마땅하다. 옛날 우리나라에는 주자가례를 토대로 유종(儒宗)으로 추앙되던 퇴계(退溪)와 율곡(栗谷)을 위시한 유학자들이 우리나라에 걸맞는 가례를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 체계화하고 도암(陶庵) 이재(李縡)선생이 1600년대에 사례편람(四禮便覽)을 편저함으로서 서식화 되었다.
이 서식에 따르면 분명히 연호가 명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동보 부록에는 연호가 왜 빠져 있을까? 살피건대 이는 1910년 이후 근대화된 서식으로 보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광복이 된지 반세기가 지난 현재도 이 서식을 통용함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일부 가문에서 단기연호를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거의가 부록서식대로 연호를 빼고 있고 서기연호를 쓰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본다.
여기에 대하여 본인의 소견으로는 서기 연호를 쓰는 것이 타당 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서기연호는 세계 공통연호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조선말기에 양력 1896년 1월 1일부터 연호를 건양(建陽)이라고 하였고 건국 후 1948년 9월 25일부터 공용 연호를 단기(檀紀)연호를 쓰다가 1950년 6.25전쟁이 발발되자 국제교류의 확대로 단기연호의 불편함을 느끼고 1962년 1월 1일부터 국법으로 서기연호를 쓰게 됐다. 고로 서기연호는 국제연호인 동시에 합법적인 우리나라의 공용 연호인 것이다. 따라서 축문에 서기연호를 쓰는데 조금도 하자가 있을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축문은 음력 간지를 따르므로 가령 경진년(庚辰年) 음 12월 15일이면 양력으로 2001년 1월 9일에 해당함으로 양력 2001년 1월 23일까지는 태세간지(太歲干支)를 경진(庚辰)으로 표기해서는 안 된다. 는 것이다.
음력 경진년은 양력 2000년 2월 5일부터 2001년 1월 23일까지이다.
결론적으로 태세란 해의 순을 간지로 나타낸 것으로 년호와 기년(紀年)이 빠진 태세간지는 마치 주소에 번지가 빠진 호수(號數)와 같다. 때문에 형식을 갖출 바엔 년호와 기년이 들어가야 합당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