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 에바다(ἐφφαθά 열리라)
마가복음
7:31-37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36. 예수께서 저희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계하실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가로되 "그가 다 잘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제가
미국에 이민왔을 당시에 어떻게하면 영어를 빨리 할 수 있을까, 또는 잘 할 수 있을까를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공통적인 답은 "먼저 귀가 뚫려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 살다보면 먼저 귀가 뚫리고, 그런 다음에 자연적으로 입이 열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들리지도 않는데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저는 먼저 말하려고 하지
말고 듣는 연습부터 하라고 권합니다.
마음이
조급한 사람은 무엇이든지 속전속결로 빨리 결과를 얻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있어서 모든 것은 순서가 있습니다. 유아기를
지나 청소년기를 거쳐서 성인이 되듯이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신앙생활에 있어서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나 성실하게
말씀에 순종하며 사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순서가 있습니다.
1.
주님과 개인적인 만남이 있어야 한다
본문을
보면,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예수께서 고쳐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고쳐주지 않으시고,
그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서 치유해주셨습니다. 마가복음 8장을 보면 예수께서 벳새다에 가셨을 때에 사람들이 소경을 데리고 왔는데,
이때에도 예수님은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고쳐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때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위해 주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그의 문제가 고침을 받기 위해서는 그가 주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본인은
기도하지 않으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 기도할 줄을 몰라서, 또는 믿음이 적거나 없어서
믿음이 큰 사람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내 문제를 다른 이들에게 맡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엄마 젖이나 우유만 먹고 어린애처럼 살 수 없듯이 신앙생활도 유아기의 모습을 벗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대중 속에서 그들이 하는대로
함께 휩쓸려가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하나님과 독대를 해야합니다.
특히
아픔이 있는 이들에게는 사랑의 주님께서 개인적으로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손가락을 귀에 넣기도 하시며, 혀에 손을 대시면서 그의 아픈 곳을
직접 만져주시고 회복시켜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혹시라도 지금까지 옆에있는 가족이나 친구나 교우들을 붙잡고 그들 덕택에 함께 복을 받기를
원하며 그들이 기도해주기 때문에 안심하며 살아왔다면 이제 그러한 생활습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구원은 개별적인 문제이므로 주님과의 만남도
개별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성장하며 우리의 쓴뿌리를 주님의 터치하심으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알지 못하고 깊숙히
뿌리내린 자신의 쓴뿌리는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는 수많은 대중과 함께 있을 때보다는 조용한 묵상
시간을 통해 주님과만 단 둘이 있을 때 은밀하게 이루어집니다. 교회에서 수련회를 떠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조용한 곳으로 세상과 분리되어
주님과만의 은밀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2.
주님의 방법에 맡겨야 한다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고치는 방법을 볼 때, 현대인이라면 예수님께 자신을 맡기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만약 어눌한 사람에게 침을 뱉아서 혀에
댄다고 하면 그것을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만약에 당신의 가족 중에 어눌한 사람이 있는데, 의사가 침을 뱉아서 그의 혀에 댄다고 한다면
그대로 하라고 맡길 수 있습니까? 아마 그 의사를 미쳤다고 하며 가족을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다행일 것입니다. 그러나 침을 바르는 것은 고대의
치유방법 중의 하나였습니다. 침 속에 있는 성분 때문입니다.
(침(타액)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벌레에 물렸을 때에 우리는 응급처치로 침을 바릅니다. 또 어디가 가려울 때에도 침을 바르는데, 이는 피부질환에도 효과가
있기 때문이며, 입 안에서 충치와 입냄새를 제거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만약에 침의 분비량이 줄어들면 입안이 건조해져서 입안에 세균의 양이
늘어남으로 혓바늘이 돋는 등 여러 질병이 발생하게 됩니다. 일본의 동경의과대학 연구팀이 타액 속에 에이즈 바이러스를 섞어 배양했더니 그 결과
1시간 만에 97-99의 바이러스가 죽었다고 합니다. 즉 침 속에 에이즈 바이러스를 죽이는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사람을
살리기 위해 외부에서 제일 먼저 입을 통해 음식이 들어올 때에 그것을 살균하는 역할을 침이 하고 있습니다. 침은 항상 우리의 입 안에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지 필요할 때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질이나 성품, 지식 수준, 또는 경험이나 모든
면에서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일을 볼 때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천차만별입니다. 엘리사 시절에 문둥병에 걸렸던
나아만 장군은 처음에 엘리사가 시키는 것을 듣고 몹시 분노하며 그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의 명성은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그와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었기에 요단강에 가서 7번 몸을 씻으라는 말을 듣자 그는 "내 생각에는"이라며 자기가 생각했던
치유방식으로 엘리사가 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 몹시 불쾌함을 느끼며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부하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더 어려운 일도
시키면 해야하는데, 이렇게 쉬운 것을 왜 행하지 않느냐고 권하므로 그대로 행해서 병이 나았습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 방법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먼저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해 알았으면, 그분과의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 역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과 묵상을 통해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주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행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일일이 성경말씀과 묵상을 통해 말씀해주십니다. 이렇게 주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사람은 나아만장군이 가졌던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방법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탄식과 명령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탄식하시며"라는
말은 단순 과거 직설법으로 쓰였는데, 이는 고통받는 이에 대한 깊은 동정심과 아픔을 공유하시며 나오는 신음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직접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다 느끼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계시며,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롬 8:26).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탄식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또한 우리를 위해 명령하시는 그 명령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에바다"
즉 "열려라"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지도 않는데,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현재
내 믿음이 적거나 없으면, 본문에 나온 병자처럼 다른 이들에게 이끌려서라도 주님 앞으로 나아와야만 합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주님 앞으로
끌려나왔을 때에, 주님의 긍휼하신 손길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왔을 때,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멀리 떨어져있다면, 결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문제가 있어서 혼자 탄식하며
괴로와하지 말고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 억지로 이끌려서라도 주께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주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며, 주님의
방법에 나의 모든 것을 맡기게 되며 그럴 때에 주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귀가 열려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원수같이 지내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아예 마음의 문을 닫고 그의 말에는 무조건 반대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말을 하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가 하는 말을 하나라도 놓칠까봐 노심초사하며 열심히
청종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개인적으로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우리의 문제를 하나도 빠지지 않고 듣기를 원하시며 그 아픔들을 일일이 만져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한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가 열리게 되어있습니다. 나의 아픔을 만져주시고, 내
고통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들어주시는 그분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그분의 말씀이 들리면 무엇을 하다가도 그곳으로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믿음은 기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이 믿음은 말씀을 들을 때 생깁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들을 때에 그것에 대한 믿음이 생기거나 그것을 믿지
못하거나 합니다. 따라서 무엇에 대한 믿음이 생기려면 먼저 무엇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 속에서 무엇을 듣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듣더라도 그것을 믿는 사람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깨닫는 사람과 깨닫지 못하는 사람, 이해하는 사람과 오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
4:23)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귀가 있어서 듣기는 하지만 들을 귀가 없으므로 말하는 이의 진정한 뜻을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시자, 베드로가 그 비유의 뜻을 설명해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라고 하시며
설명해주셨습니다(마 15:16). 아무리 박사 학위가 여러 개가 되고,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들을 귀가 없으면, 들을 귀가 있는 초등학생보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들을 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귀가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렘
6:10)
귀가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권면하는 것을 욕으로 받아들이며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선포할 때에 "저건 나보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상처를 받아 교회를 떠납니다. 그러나 모든 말씀은 다른 이가 아니라 "내가"
들어야하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왜 갑니까? 말씀을 들으러 가서는 "나보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라고 한다면, 정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말은 잘 듣습니다. 예를 들어서 건강이 나빠졌을 때, 식습관을 바꾸라고 의사가 말하면 "내가 그 동안 식습관이 별로 좋지
않았다"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의사의 말을 들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영적인 건강이 나빠졌을 때, 나태한 신앙생활을 바꾸어 경건의 훈련을 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권면하면, 귀찮아 하거나 듣기 싫어합니다. 성경에서 "피를 먹지말라"고 했으니까, 선지국이나 순대, 육회나 덜 구운
스테이크를 먹지 말라고 하면, 말을 듣지 않으면서도, "피가 알러지를 일으키므로 먹지말라"고 하면 그런 말은 너무나 잘 듣습니다. 세상 말은
그렇게 잘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왜 그렇게 무시하는 것일까요? 들을 귀가 없고, 귀가 할례를 받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과의 개별적인 만남을 경험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 영적으로 둔해져있거나 막혀있는 귀가 열리도록 간구하며 주님을
만나는데 무엇보다 주력해야 합니다.
5.
입이 열려야 한다.
귀가
열리면 자연적으로 입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대화를 할 때에,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에 대한 대답을 합니다. 즉 무엇인가를
들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입이 열리는 것입니다. 나에게 말하는 사람이 없는데, 나 혼자서 말을 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아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을 할 것입니다. 반대로 상대방이 아무리 말을 해도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 역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또는 상대방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자폐증을 가진 아이를 보았는데, 그 아이는 옆에서 아무리 말을 해도 "너는 떠들어라. 나는 모른다"라는
식이었습니다. 선생이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도 전혀 대꾸하지 않고, 소리를 질러도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입을 다문채, 자기가 하고싶은 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큰 소리로 말하고 그 사람을 붙들고 이야기해도 그 말이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에
입이 열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엉뚱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을 주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 말씀을 믿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체험한 사람은 "그가 다 잘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라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셔도 그들이
더욱 전파하듯이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은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당신의
문제를 해결받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내 생각과 지식과 경험 등 "내가 생각하기에~"라는 것을 다 내려놓고 주님의 방법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고, 이상하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더라도 주께서 하라고 하시면 해야합니다. 주님의 방법이 내 방법과 다르다고
해서 원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은 제대로 듣지 못하기 때문에 엉뚱한 말(원망과 불평과 반역의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바른 교제가 이루어져서 귀가 할례를 받은 사람은 제대로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깨닫기 때문에 감사와 찬송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저를 만나주시고 저의 아픔을 만져주시고 치유해주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온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아뢰면 그 모든 것을 해결해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는
커녕, 제 힘과 제 지식과 제 경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보려고 안간힘을 써왔던 영적 무지를 깨우쳐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삶
속에서 제 지식과 제 생각과 다른 것이 있으면,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제 주장만 내세웠던 저의 완악함을 또한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주님을 닮아서 어떠한 방식에도 마음을 열어놓으라고 하시는데, 저는 제 방식이 아닌 처음 듣는 말이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비판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변함없이 주님의 방법으로 저희에게 다가오십니다.
저의
모든 견고한 진들을 깨뜨려주옵소서.
제가
이해가 되지 않고,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아도 입을 열지 말게 하시며,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도록 저의 마음과 귀가 할례를 받게하여 주셔서 제 입으로는 소금으로 간을 고르게 하듯이 은혜로운 말만이 흘러나오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주님을 전파하지 말라고 할지라고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며 아픈 이들을 위로하며 격려해줄 수 있는 주님을 닮게
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탄식하신 그 심정으로 주위에 아픈 이들을 보며 긍휼한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모르는 자들을 주님께로 데리고 갈 수 있는 제가 되어서 저를 통해서 영적으로 귀가 멀고 입이 닫혀있는 사람들이 많이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저를 인격적으로 만나주시고, 저의 아픈 상처를 만져주시고 저의 고통을 보시며 함께 아파하시며 탄식하시는 주님이 저의 아버지이시며 저의 친구가
되어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세상을 얻은 것보다 저에게는 더 큰 기쁨이 됩니다.
저에게
이러한 기쁨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