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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2장 16절의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는 "안식일" 문제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3-17)
안식일 폐지론자들이 안식일 교인들을 공격할 때 단골로 사용하는
골2:16의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는 안식일에 대해 말씀 드립니다.
재림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안식일의 폐지를 주장하는 비평가들이
안식일 교인들의 교리적 급소라고 하면서 가장 자신만만하게
저들의 성경적 근거로 인용하는 성경절이 바로 골로새서 2장 16절입니다.
저들은 이 말씀이야말로 제 칠일 안식일이 폐했다는
가장 강력한 성경적 근거이며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이 말씀이 제 칠일 안식일 폐지를 언급한 말씀인가?
안식일 폐지론자들의 주장은 절기, 월삭, 안식일 순으로 되어 있는
이 문맥을 놓고 절기는 절기이고 안식일은 제 칠일 안식일이지
이것이 결코 절기 안식일을 가리킬 수 없다고 강변합니다.
저들은 이 안식일이 절기 안식일이라고 하는 안식일 교인들이
성경을 억지 해석을 한다고 실랄하게 비평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만약 이 말씀이 사도 바울이 제 칠일 안식일 폐지를 언급한 것이라면,
첫째, 여기서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둘째, 제 칠일 안식일이 십자가에 못 박아 도말한 의문에 쓴 증서일까?
셋째, 제 칠일 안식일이 장래일의 그림자일까라고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시에 제정하시고 십계명에 명시된
제 칠일 안식일이 과연 십자가에 못 박은 의문의 증서이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폐지될 장래일의 그림자가 확실하다면
그것은 명백히 제 칠일 안식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십계명 중 넷째 계명인 제 칠일 안식일이 결코 십자가로 인해
폐지될 모세의 율법이나 절기, 의식법, 제사법이 아니라면
이 골로새서 2장의 ‘안식일’은 제 칠일 안식일이 아닌 다른 안식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제 칠일 안식일 말고 다른 안식일이 있는가?
성경은 제 칠일 안식일 외에 절기 속의 안식일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를 먼저 찾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레 23:24)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레 23:32)
위 성경절은 7월 1일 나팔절 안식일과
7월 10일 대속죄일 안식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두 성경절에서 볼 수 있듯 7월 1일 안식일과 7월 10일 안식일은
성경의 매 주 일곱째 날인 제 칠일 안식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9일 만에 오는 안식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렇게 절기들 속에 오는 이 안식일도
그냥 ‘안식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레위기 23장에서 언급한 절기 안식일은
1월 15일, 1월 22일, 3월 6일, 7월 1일, 7월 10일, 7월 15일,
7월 22일로 어떤 때에는 7일 만에, 어떤 때에는 43일 만에,
어떤 때는 무려 4개월 가까이에, 어떤 경우에는 9일 만에,
어떤 때는 5일 만에, 어떤 경우는 8일 만에 오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주신 제 칠일 안식일의 일주일 사이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다른 안식일들임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골로새서 2장 16절의 안식일은 성경에 나오는 이 두 가지 안식일
곧 제 칠일 안식일과 절기 안식일 중 어느 안식일을 ‘의문에 쓴 증서’
혹은 ‘장래 일의 그림자’로 십자가에 못 박았을까요?
철저히 성경으로 알아보겠습니다.
1. “폄론하지 말라”는 뜻에 대하여
“폄론하다”는 말은 “비우호적인 판단을 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크리노]에서 왔습니다.
여기 사용된 “폄론”(貶論)이란 한자는 “떨어뜨릴 폄”, “논의할 론”으로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 헐뜯음”이라고 국어사전은 설명하며
쉽게 말하면 ‘비판 받지 않게 하라’는 뜻입니다.
다음 개정 개역 번역서와 새번역서는 다음처럼 번역해 놨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개정 개역 골1: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일이나 명절이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새번역 골1:16).
그러니까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 때문에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앞과 뒤에 언급한 것처럼, 그것들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며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던 의문의 쓴 증서’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아 도말하고 제하여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 십자가에 못 박아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렸다고 하는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는 과연 무엇인가?
여기에서 “의문에 쓴 증서”(케이로그라폰 토이스 도그마신)라는 문맥에서
‘증서’라는 말은 헬라어로 ‘케이로그라폰’(cheiro graphon)인데
'손'이라는 뜻의 명사 '케이르'(cheir)와 '쓰다'라는 뜻의 동사 '그라포'(graph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손으로 쓴 문서”를 의미합니다.
실제적으로 법정에서 사용될 때에는 ‘빚 문서’(채무증서)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의문’이란 말의 '도그마신'(dogmasin)의 원형은 '도그마'(dogma)로서
'법령' 혹은 ‘의식’(儀式)이라는 의미로서, 여기서는 복수 여격으로 쓰였으며,
이것은 '법령(조항)들을' 이라는 목적격적 의미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의문에 쓴 증서'는 '법령(조항)들을 쓴 문서'라는 뜻인데,
이것은 사람들에게 “율법적 행위의 온전한 이행을 요구하는
손으로 쓴 법적 채무 증서”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한글 새 성경은 이것을 '빚 문서'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골로새서의 비슷한 다른 성경절이 있습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 2:15)
여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폐한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 나옵니다.
이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란 무엇일까요?
골로새서에서는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는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문’(儀文)이란 무엇일까요?
앞서 설명한 그대로 의문이란 헬라어는 [도그마신]으로
‘의식’(儀式), ‘법령’ ‘조항’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에서 언급한 ‘의문에 쓴 증서’와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의 뜻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이 쓰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쓴 법적인 채무 증서’
혹은 ‘사람의 손으로 쓴 의식 문서’로서 사람들에게 법적인 이행을
요구하는 빚 문서라고 함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어적 측면에서 엡2:15를 쉽게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의문이 일어납니다.
왜, 하나님의 “계명의 율법”이 사람에게 불리한
‘채무 증서’(빚 문서)가 될 수 있는 것인지요?
도대체 하나님의 계명의 율법이 왜, 어떻게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며
어떻게 우리와 원수가 될 수 있을까요?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율법이 그렇다는 것인가요?
정말 하나님의 십계명이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는 것인가요?
정말 하나님의 십계명이 우리에게 원수 된 것이란 말인가요?
정말 예수님의 십자가로 폐하시고 도말하신 것이 십계명 율법인가요?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성경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도덕적 율법인 십계명을 결코 폐하거나
없어지거나 사라진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모두 지켜야 한다고 이렇게 권면합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 2:10-12)
그러므로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에서 언급한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며
우리에게 원수된 의문의 계명의 율법을 결코 십계명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십계명 율법 말고 다른 율법이 있는가요?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다른 율법이 있습니다.
그 계명의 율법은 다름 아닌 [모세의 율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 2:3)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왕하 14:6)
그렇다면 십계명 율법과 모세의 율법은 무엇이 다르고 차이가 있을까요?
1. 하나님이 친히 돌비에 쓴 율법과 모세가 책에 쓴 율법
(1) 십 계 명 :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출 24:12)
(2) 모세의 율법 :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신 31:24)
2.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친히 반포하신 율법과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가 백성들에 전한 율법
(1) 십 계 명 : “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네게 주셨나니 그 판의 글은 하나님이
친수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신 9:10)
(2) 모세의 율법 :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출 24:3)
3. 언약궤(법궤) “안”에 둔 율법과 “곁”에 둔 율법
(1) 십 계 명 :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왕상 8:9)
(2) 모세의 율법 :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신 31:26)
이상 살펴 본 것처럼, 십계명 율법은 하나님이 돌비에 친히 쓰신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모세가 직접 책에 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골로새서에서 언급한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골 2:14)
그리고 에베소서에서 말한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엡 2:15)은
결코 안식일 계명이 속한 십계명이 아닙니다.
의문에 쓴 증서 곧 ‘사람의 손으로 쓴 법령인 채무 증서(빚 문서)’는
바로 다름이 아닌 "모세의 율법"인 것입니다.
그 모세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 2:15)
곧 십자가로 제하여 버리시고 도말했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엡 2:16)셨다고 강조했습니다.
골로새서에서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골 2:14)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5)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골 2:16)
여기 “그러므로”가 바로 앞서 모세의 율법을 십자가로 폐하시고
소멸하시고 도말하시고 승리하셨다는 말씀의 “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론에 언급된 “먹고 마시는 것, 절기, 월삭, 안식일”은
당연히 하나님이 도덕적인 법 십계명과 전혀 상관이 없는
철저히 ‘모세의 율법’에 속한 것들임을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문제가 되는 ‘절기와 안식일’은 무엇일까요?
모세의 율법 속에 절기와 안식일은 무엇인가요?
어떤 분들의 주장처럼 여기 안식일은 제 칠일 안식일이 될 수 없는 것은
이미 확실하게 밝혀졌기 때문에 이 안식일은 모세의 율법의 안식일입니다.
십계명 율법은 결코 십자가로 폐하거나 도말하거나 소멸할 수 없고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기 때문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마 5:17-19)
신구약 성경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도덕법인 십계명 율법을
십자가의 표상이라거나 십자가로 폐지될 모형이요 그림자라고 하거나
십자가로 소멸될 것이라고 한 적이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제 칠일 안식일은 인간의 범죄와 전혀 상관 없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제정하신 제도로서 인간의 범죄로 인해
필요한 십자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너무도 확연하게 십자가로 없어지고 영구히 폐할
모세의 율법과 절기 안식일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레위기 23장에는 유월절, 무교절, 요제절, 오순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 등 일곱 절기를 언급하고 있고, 이 절기들과 연관되어
성회로 모이는 일곱 번의 "절기 안식일"이 명백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레위기 23장에서 언급한 절기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주신 일주일의 사이클로 움직이는
제 칠일 안식일과는 전혀 다른 안식일들임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절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7)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이
‘장래 일의 그림자’라고 했는데 “장래일의 그림자”는 무엇이고 “몸”은 무엇일까?
장래 일의 “그림자”는 헬라어 [스키아]이고 “몸”은 헬라어로 [소마]입니다.
헬라어 [스키아]는 여기서 문자적인 실제 “그림자”가 아니라 “예시”(豫示)를 의미합니다.
[스키아]라는 단어가 “장래 일”(헬라어 톤 멜론톤)이라는 구절과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골로새서 2:17은 히브리서 10:1과 매우 비슷합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 10:1)
위 구절에서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은 헬라어로 “텐 멜론톤 아가쏜”이고
“그림자”는 같은 헬라어 [스키아]입니다.
다시 말하면 “장래 일의 그림자”는 “장차 올 것을 예시하는 표상들”이란 것입니다.
“장차 오는 좋은 일”을 예시하는 율법이란 결코 십계명 율법이 아니라
표상 및 의식과 관련된 모세의 율법인 제사법으로
히브리서에 분명하게 진술되어 있습니다(히 10:1∼4참조).
그러므로 골로새서 2장 16절에 열거된 ‘먹고 마시는 것, 절기, 월삭, 안식일’ 등은
모두 “그림자” 곧 표상이므로 예수님을 철저하게 표상하는 모세의 율법에
속하는 것들임이 명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표상했던 그림자는 그 실체요 원형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두 도말하고 제하여 버리고 소멸된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17까지의 말씀은 우리를 대적하는 죄의 빚 문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도말되었으니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예시하고 표상했던 그림자였던
모세의 율법인 먹고 마시는 것(소제, 전제), 절기, 월삭,
안식일로 인하여 남들에게 비판 받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과 2장 서두에 보면 당시 골로새 교회에 분명 유대인들도 있었으나
교인의 대다수가 이방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1:21, 22, 27; 2:13 참조).
유대주의화 된 소위 골로새 이단과 거짓 교사들은 골로새 교회의 신자들에게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만 충분치 않고
때와 절기에 맞게 유대인의 의식법과 모세의 율법을 따라
먹고 마시는 것, 절기, 월삭, (절기)안식일들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유대화주의 거짓 교사들의 거짓 복음에 대해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준 권면은 그 모든 것들이 이미 십자가로
폐하여지고 도말되고 제하여 버렸고 소멸되었으니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비난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도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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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대인으로서 유대교의 관습과 교리에 젖어있던 사람들에게 많은 혼란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는것은 맞는데 그럼 하나님의 계명과 절기 음식물에 관한 규례 관습 등을 다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어느것은 지키고 어느것은 안지켜도 되는가 아니면 다 안지켜도 되는가 이런 의문들이지요. 사실 이런 의문들은 오늘날에도 일요일교회들과 안식일교회들간의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문의 법이 무엇이고 그것이 폐하였는가 아닌가 그리고 도덕적인 법들이 지금 유효한가 아닌가입니다.
박목사님께서는 율법을 하나님의 법과 모세의 법으로 나누고 하나님의 법은 폐하지 않고 모세의 법이 폐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봅니다. 어떤것은 의문의 법이고 어떤것은 의문의 법이 아니다 이런 논리는 잘못된 것이라고 보며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이나 절기나 먹고 마시는 것이나 다 의문의 법이고 다 십자가로 폐하였으나 신앙인들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십계명과 음식물법과 기타 성결법은 유효하다 하는게 정론입니다. 문자로 기록된 법이 없어도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곧 살아계신 법이시므로 도덕적인 법과 성결법은 그리스도인에게 유효하며 강요나 압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지켜야
하는 법이 된 것입니다. 안식일교회의 신학자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서 궁색한 논리를 가지고 진리를 옹호하려고하나 밝은 눈을 가지고 인정할것은 인정하고 바르게 주장할것은 바르게 주장을 해야 할것입니다.
만일 모세를 통하여 선포된 십계명(의문의 법)이 폐하지 않았다고 할것 같으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칭함을 얻고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났다는 말이 거짓말이 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법적 표현이 의문의 율법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폐했다 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사시고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는다는 것이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의 법 십계명이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문의 율법이 폐하였으나 십계명과 성결법은 그대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법적 구속력이 없다 뿐이지 도덕적으로는 여전히 전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 강요하고 지키지 않은 죄를 물어 사람을 처단할수가 있었습니다. 이는 법적 구속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후로는 그럴 권리가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왜 신정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로마의 속국이 되어 있었느냐하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그런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유대인들이 자기 나라를 가지고 있었다면 기독교는 도무지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단자들은 법에 따라 다 죽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속국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러지를 못한 것이지요.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번성하고 심지어 교인들이
나라를 세웠다할지라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 강요하거나 법적 제재를 가할수 없습니다. 의문의 율법이 폐하였기 때문에 그럴수 없는 것이고 다만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 이리 말할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모세의 율법을 범한 자도 두 세 증인의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했는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성령을 욕되게 한자들이 얼마나 중한 형벌을 받겠느냐 하셨는데 이는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의문의 율법이 폐했다며 십계명을 함부로 범하고 폐하며 모욕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성령을 거역하고 모욕한 죄로 엄히 벌하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