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모처럼 집에 올라갔더니 아내의 대접이 은근했다. 열심히 들리던 굿뉴스 굿자만사의 올드멤버 중에 투병생활을 하던 형제님이 그래도 외출할만 하다고해서 얼굴보자며 해서 저녁을 먹었거든. 이제는 굿뉴스 자게판을 떠난 터라 옛날이 좋았지 하며 오랫만의 회포를 풀고 있는데 전활 주는게야. 평소에는 내가 올라오는지 마는지 일체 관심이 없던 아내가 '왔냐고' 관심을 주길레 용기가 등천을 하더군. 그래서 번개팅 2차를 쏴버렸지. 내일 아침에 속이 쓰릴망정 기분이 쏴아~하게 좋더구먼.
토욜은 산엘 갔지. 참 좋은 날씨야. 덥다덥다하며 땀투성이가 되어 올라가서 쉬는데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게 그저그만이야. 이맛에 산엘 가거든. 눈에 보이는 건 다 초록, 울울창창한 숲에 들어누워서 눈을 감고 바람을느끼는 건 어떨른지 상상이 가던가? 초록만큼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게 없다지.
여름이 짙어가면 싱그럽던 초록도 시커멓게 짙어갈테지. 성을 낸다고 하나? 맹렬한 기세로 생명력을 불태울 때즈음이면 흙더미 속에서 참다참다못해 훅하니 단내가 치밀고 올라올테지. 우리 인간의 이름이 아담이란 건 아실테지. 아담이란 바로 흙이래. 대지가 생명력을 움틔우고 찬란하게 생명의 불꽃을 태우게 하는 힘의 원천이자 종결자라고 말하지.
어쩧든 산엘 올라가서 잎새가 바람에 부댖기는 소리와 살랑살랑 내얼굴을 간지르는 햇볕 한 줄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건 대단한 사치랬다만 어쩌랴. 가물어서 물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해서 서운하더구먼. 날씨가 가물어지면 우르쾅쾅하며 계곡을 뚫고 쏟아내리던 물소리가 잦아들고, 가뭄이 더 길어질 때면 개울물도 찔금거리며 명맥을 겨우 유지할 거고. 이럴 지경이면 새들이 바빠져. 찔끔찔금 흘러내려가는 개울 물에 물고기가 몸체를 들어낼 수밖에. 새들이 휭하니 덮치나 하더니 물고기 한 마리를 입에 물고는 잽싸게 하늘로 올라가버리는 계곡엔 비정하게도 물고기 사냥이 한창이었어. 가물다못해 바싹 물기가 사리진 개울엔 먹이가 없어지자 새들도 보이지 않는 날이 한참이나 지나가면 이제 물고기는 씨가 말랐겠지 하고 애닯아했거든.
어느날 구름이 모이고 비바람이 몰아치자 계곡은 다시 옛날의 위용을 되찾고 우르쾅쾅하며 물이 넘쳐나기 시작했어. 호기심 많은 내가 가만히 있겠어. 바위 좋고 경치 또한 절경인 곳에 자리잡고 다리쉼을 했지. 어렵소, 내눈을 의심했어. 물고기 떼들이 바글바글거리더군.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물이 고이니깐 숨죽였던 몸을 들어내고 생기를 찾았어. 내 생각에 바위 밑, 그래도 물기가 남은 흙더미를 주둥이로 파내고 몸을 숨겼던 게 아니겠어. 생명력은 치열했고 신비했어. 오늘의 가르침, 우리도 뭐든 쉽사리 포기해선 안 된다.
산에서 뭇 자연이 숨쉬고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노라면 우리가 살아가야할 길이 어떠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답이 나오는게야. 그래서 오늘도 산엘 올라가고 다리쉼을 하며 푸른 숲과 한가롭게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는 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주일엔 집앞, 고속터미널에 있는 영풍문고엘 갔거든. 거기엔 영화관도 있고 백화점에다가 먹거리가 풍성한 식당도 많거든. 웬걸, 영풍문고 정문에 오늘까지 문을 열고 내일부턴 임대료 문제로 폐업한다는 공고문이 붙어 있는 게야. 벌써 신문에도 나왔던 사실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가슴이 멍멍했어. 또 하나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소리일까? 사람이 바글거리는 번화가에 떡 하니 크고큰 서점이 있다는 게 내 자존심을 지켜 주었거든. 교보문고 스타일의 엄청 큰 서점 하나가 사라지는 게 그리 슬프더군.
대학가에 요즈음 서점이 없다며? 사실, 영풍문고에 내가 뭐그리 대단한 단골이었다고. 온라인으로 책을 사는게 제일 싸거든. 그래도 이따금 서점, 오프라인으로 서점에 꽂힌 책을 둘러보는 재미가 별나거든. 한 두어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잖아. 영풍문고에 미안해서 문구류 하고 책 한 권 사서 나왔지. 그제야 미안한 게 조금은 덜어지더만. 그래도 이건 지적하고 싶네. 서점엔 분야 별로 책을 나누어 진열하는데 종교분야엘 가보면 여간 창피한 게 아니야. 벽에는 책장이 열 두어 칸 되고 서가가 여덟칸이지 아마. 어제는 일일이 헤아려 봤는데 불교는 책꽂이 네 칸 정도가 되고 우리 가톨릭은 책꽂이 세 칸에 불과했어. 그전엔 서가에도 세 개정도 양면에 가득 우리 책이 꽂혀 있었는데. 이젠 개신교에 비해 10분의 일도 못미칠 거야. 가톨릭 신자가 책 안 읽는다 해도 이건 너무했어.
사실, 우리 집이 서점을 했거든. 시골이었지만 전국적으로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큰 서점이었어. 교통이 발달하지 않을 때는 지방 상권이 온전했는데 고속도로가 뚫리고 차가 씽씽 달리면 지방 상권은 맥없이 쓰러지지. 난 세상 어떤 아이들보다 부모님한테 엄청난 혜택을 받은게야. 어려서 나만큼 책을 읽을 수 있는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 누가 있었을까?요새 말로 금수저가 나라니까? 방학 때는 창고에 들어가서 책 읽다가보면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도록 열중했거든. 부모님은 날 잃어버렸다고 난리가 나고 ....
우리 주위에서 서점이 없어진다고 걱정이 태산이지만, 그건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한 게야. 온라인으로 책을 사거든. 또 e book, 전자책이 차츰 그 기세를 넓혀가지 않던가. 아무리 세월이 바뀌어도 e북은 가까이 할 수 없는 먼 임이라고 봐. 레코드도 LP판으로 듣던 시절에 CD가 나오니 정이 안 가더니 요즈음은 그나마 친근해져 괜찮아. 우리 집을 자랑한다면 책이 빽빽하게 꽂힌 서가를 추천하지. 사실 마음에 꽂힌 책이 있음 무조건 사버리거든. 문제는 금방 읽지도 않으며 비좁은 서가에 자리가 나질 않으면 방바닥에 쌓아두기도 하거든. 나이가 들어가니 손을 대지도 않은 책을 읽기 시작한답니다. 죽기 전에 내 서가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어버릴 테야. 그리고 책으로 가득한 내 방은 일단 폼이 나잖아.
사람이 사람다워지려면 책을 가까이 해야겠지. 우리가 정신적 성장을 해가는데 책만한 게 어디 있던가? 어떠한 형태로든 사람들은 책을 읽을거겠지만 우리 동네에서 큰 서점이 사라진다는 게 섭섭하기 짝이 없어서 한 마디 해보는 거야. 밤늦게 들어온 딸아이한테 영풍문고가 그만 둔다고 했더니 그 자리에 뭐가 들어온대요. 신문 기사에 따르면 옷가게가 들어오지 아마. 유니클로가 딸아이가 '아우 창피하게 그게 뭐야!' 그말에 조금은 위로를 받고 잠을 청했어.
유달리 더위가 심했던 여름 건강하게 지내셨다면 다행입니다. 건강에는 뭐니뭐니 해도 밤에 잠을 충분하게 자두는 게 제일이랍니다. 더위에 지친 몸에 생기를 붇돋이줘야 하는데는 충분한 수면과 골고루 음식 투정하지 않고 먹는 거 아닐까요?
제가 단골이던 카폐에 올렸던 글을 모으느라고 계절과 때가 많이 다르군요. 영풍문고가 폐점한지 벌써 15년 정도 지나갔나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