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선운사에서’ 전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넘어 피는 꽃이 없다는 뜻으로 누군가의 인생에서 찬란한 시절도 끝내 시들어 사라지고 만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마도 시인은 전북 고창의 선운사에서 붉은 동백꽃을 보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러 해 전에 강진의 백련사의 숲에서 열린 음악회를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여러 나무들에서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을 직접 보았던 기억이 있다.
정말 ‘꽃이 / 피는 건 힘들어도 / 지는 건 잠깐’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이 시의 화자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경험하고, 그것을 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지는 꽃처럼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것 또한 그렇게 / 순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화자의 마음속에는 그 사람에 대한 추억이 ‘멀리서 웃는 그대’와 ‘산 넘어 가는 그대’의 모습으로 아른거렸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다시 ‘꽃이 / 지는 건 쉬워도 / 잊는 건 한참’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피었다 지는 꽃을 통해 우리네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하겠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