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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은 20대부터 흔히 루게릭병이라고 일컫는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물리학에 대한 열정과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려는 노력을 평생 보여주었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스티븐 호킹의 이미지는 종종 언론에서 보였던 바와 같이, 컴퓨터가 장착된 휠체어를 타고 웃는 얼굴을 한 모습일 것이다. 특수 제작한 컴퓨터가 장착된 휠체어에서 안경과 자신의 얼굴을 이용하여 대화 내용을 기록하고, 그것을 컴퓨터가 음성으로 번역하여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였다. 그를 만나본 많은 이들은 천재이자 괴짜로서의 호킹을 소개하고 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의 신체를 가지고서도, 쉬지 않고 연구에 매진해온 그를 생각하면 이러한 대중들의 평가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이 책의 저자는 호킹의 말년에 <위대한 설계>를 공동 집필했던 물리학자로서, 그 과정에서 그와 함께 지내며 소통하고 경험했던 바를 토대로 호킹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책에는 '삶과 물리학을 함께 한 우정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그동안 내가 접했던 스티븐 호킹에 관한 내용은 대체로 공적이고 부분적인 일화에 바탕을 두고 있었지만, 이 책은 오랫동안 호킹을 직접 만나서 대화하고 교감하며 느꼈던 저자의 생각들이 잘 드러나 있었다. 더욱이 저자는 물리학자로서 그의 이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에, 호킹의 삶과 학문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넘쳐나고 있다고 느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생활하면서, 그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따라서 다른 책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인간적인 면모의 스티븐 호킹의 모습이 소개되어 있다고 하겠다.
20대에 처음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까지 했던 제인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소개되고 있다. 비서였던 일레인과 두 번째 결혼을 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연구에는 열정적이었지만 그와 결혼했던 아내들이 느낄 수밖에 없었던 공허함의 감정들을 저자는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자신이 세웠던 이론에 오류가 발생했을 때, 여느 학자들과는 달리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높게 평가하는 저자의 시각도 엿볼 수 있다. 장애가 있는 몸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평생을 우주의 탄생과 그 역사를 탐구하기 위한 진지한 학설을 제기하고, 또 그로 인해 물리학의 역사가 새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저자는 2018년 3월 호킹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기억으로부터 시작되는 '들어가며'의 글을 서술하고있다. 호킹은 이미 죽었지만, 그가 남긴 물리학의 이론들은 여전히 많은 과학도들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주고 있다. 2003년 호킹의 제안으로 그의 뛰어난 걸작인 <시간의 역사>를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라는 책을 공동 저술하기로 하면서, 저자는 그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이후 우주론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논하기 위한 <위대한 설계>를 공동 집필하기로 하고, 이후 두 사람은 저자가 거주하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호킹이 재직하고 있던 영국의 케임브리지를 왕래하면서 서로의 우정과 학문적 공감을 넓혀나갔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대체로 저자와 호킹이 진행했던 약 5년 동안의 작업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호킹의 과거와 학문적 성과들이 상세히 설명되고 있다.
여전히 자연과학에 대해서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저자가 서술하는 과학 이론들이 생소하기는 하지만, 과학에 대한 공식이나 도표 등이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아서 어렵기는 하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저자가 호킹의 이론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기에, 그 내용에 대해서 가급적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호킹은 생전에 '고집은 내 가장 큰 자랑'이라고 했다는데, 그가 말하는 '고집'이란 아마도 자신의 학문적 자부심과 열정을 뜻하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저자는 이 책의 저술을 제안받았을 때, 이미 호킹을 소개하는 책들이 적지 않아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회고록’ 형식으로 호킹과의 만남을 기록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다른 책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스키븐 호킹에 관한 내용을 담은 이 책이 탄생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호킹의 생애나 그의 과학 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이 적지 않지만, 저자가 직접 접한 호킹의 모습을 소개하는 내용을 통해서 독자들은 보다 인간적인 면모의 호킹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호킹의 말년을 함께 했던 저자의 경험을 통해서, 위대한 학자로서 호킹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충분하게 느껴지는 내용이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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