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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살림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주장을 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통해, ‘집안 살림’에 참여했던 사례들을 수집해서 소개하고 있다고 파악된다. 이러한 배경에는 ‘조선시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가부장제가 관철되지 않았다.’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아울러 남성 중심의 제도와 관습이 오히려 일제 강점기 이래 더욱 공고해진 것이라는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처럼 일제 강점기 이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더욱 견고하게 작동했던 것은 다양한 측면에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선이 가부장제 사회였다고?’라는 문장으로 반문하는 저자의 주장에는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아울러 분명 가정의 살림에 참여했던 남성들이 있었을 지라도,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전히 남성적인 권위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조선시대 남자들의 집안 살림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분명히 드러나듯, 이 책은 ‘집안 살림’에 참여했던 남성들에 관한 기록을 발굴하여 그들의 ‘자상한 면모’를 조명하고 있다.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였던 퇴계 이황과 미암 유희춘 등이 남긴 기록을 통해, 남자들이 집안 살림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며 관여하는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집안에서 소용되는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품목들을 자세히 따지며 값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를 지시하는 모습 등이 인상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 전제해야 할 사실은 조선시대 여성들은 대외 활동이 불가능해, 물건을 구입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등의 ‘집안 살림’에 남자들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했다는 점이다.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자유로운 지금의 상황과는 다르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라고 하겠다. 즉 저자가 소개하는 내용들이 남자들이 ‘집안 살림’에 참여했다는 일반적인 주장으로 이해되기보다, 다만 그들이 남성 중심적 제도와 관습에 투철했던 당대의 일반적인 남성들과는 다른 예외적인 존재였다고 파악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비록 조선시대의 제도와 문화가 가부장제가 견고하게 작용하고 있었을지라도, ‘집안 살림’에 있어서만큼은 ‘남녀 공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면모는 현대에도 마찬가지이며, 다만 누가 주도하고 실질적으로 그것을 이끌었는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집안 살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남성들의 기록을 통해 그 면모를 확인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먼저 ‘우리 조상들이 영위한 남녀 공존의 역사’에 대해서 서술하면서, ‘조선시대 양반 남자가 평소 집안 살림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했는지 유형별로 나누’어 그 양상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대부분 공적인 기록이 아닌, 일기나 편지 등 개인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자료에 드러나고 있다.
가장 먼저 1장에서 ‘조선 사람들의 살림 인식’에 대해 소개하고, 이어서 ‘가족을 부양하다’(2장)와 ‘안살림’(3장) 그리고 ‘요리하는 남자’(4장)과 ‘재신 증식’(5장) 등의 항목에서 일부 남성들의 역할을 조명하고 있다. 아울러 ‘남녀가 함께 한 봉제사 접빈객’이라는 제목의 6장에서는, 제사 준비와 물건의 조달에 남성들이 참여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함께 기존의 관념과는 다른 ‘조선시대의 부부 관계’(7장)과 ‘조선의 다정한 아버지상’(8장)에서는 통상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자상한 남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자료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잇다. 또한 ‘극성스런 손자 교육’(9장)에 나섰던 몇몇 사대부들의 기록을 제시하고, ‘님산과 출산 그리고 육아’(10장_에도 남자들이 일정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원예 취미와 정원 가꾸기’(11장)와 ‘외조하는 조선 남자’(12장)의 사례를 들어, 조선시대가 완고한 ‘가부장제’와는 다른 면모를 드러내는 기록들이 적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결론 적으로 ‘한국 가부장제를 제조명하자’라는 마무리까지 이이지고 있다. 여전히 남성 중심의 문화와 관습이 잔존하고 있는 현대에 과거의 그릇된 관념이 지속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과거의 문화와 제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 일부 사대부들의 기록에 나타난 ‘자상한 남자’의 면모를 강조함으로써, 그 시대가 ‘가부장제 사회’가 아니었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과연 조선시대의 제도와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그릇된 제도와 관념을 바로잡고 개개인의 권리와 능력이 존중을 받는 문화로 바꾸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소개한 ‘사대부 남성들의 살림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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