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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과 걷기를 좋아하는 저자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연극에 대해서도 각종 지면을 통해서 활발하게 글을 발표하기도 한다. 등산을 좋아하지만, 남들이 가는 잘 알려진 루트가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서기도 한다. 지도상에 잘 나타나지 않지만, 옛사람이 걸었을 법한 옛길을 즐겨 찾는다. 그 결과 이미 <옛길>이란 책을 출간했을 정도니, 그의 옛길에 대한 애정은 전작을 통해서도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고 하겠다. 그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도 역시 저자는 옛 지도상에 나타난 옛길을 찾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저자는 ‘산을 오르는 일과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은 계절마다 그 맛이 다르다’고 강조하면서, ‘산과 길은 항상 그곳에 책처럼 있’기에 즐겨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단순히 산행을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잊지 않고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산행 중에 만난 집의 위치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저자는 그들의 삶에 공감하며 소개하고 있다. 그리하여 ‘산을 오르고 길을 걸으며 본 풍경과 만난 사람 그리고 머문 집에 관한’ 내용을 위주로 정리했기에, 이 책의 제목을 <길과 집과 사람 사이>라고 붙였다고 밝힌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전혀 가보지 않았음에도, 주변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마치 저자와 동행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모두 3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가 '길과 사람 사이‘라는 제목으로 주로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은 옛 산길을 찾아서 산행을 한 기록들이다. 모두 12개의 주제로 나뉜 글들에는 저자가 찾은 옛길의 매력과 함께 그곳의 자연 풍경,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저자가 답사한 길의 지도를 함께 소개해 놓고 있어, 독자들 역시 관심만 있다면 저자의 루트를 따라 옛길을 걸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주로 국내의 산행 코스를 소개하고 있지만, ‘산과 사막’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저자가 걸었던 톈산산맥의 실크로드에 대한 답사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자연을 해치는 개발사업에 대해 비판의 의미를 담은 ‘삶은 산이 되어라’와 산행의 미덕을 자신의 관점에서 정리한 ‘겸손한 길’이라는 두 편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집과 사람 사이’라는 제목의 두 번째 항목에서는 사람들이 살고 생활하는 건축에 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다. 저자의 관점에서 집의 의미를 풀어낸 ‘숨쉬고 있는 집’, 그리고 ‘내가 본 건축, 건축인’ 등에서는 자신의 전공인 연극 뿐만 아니라 건축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음을 인상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충북 음성의 생극성당과 서울의 은평구립도서관을 통해서, 그것을 설계한 건축가들의 철학을 읽어내기도 한다. 이와 함께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에 농구대를 설치하기 위해 나섰다가, 자치회장이 바뀌면서 금세 사라졌던 경험을 통해 경제적 가치로만 치환되는 아파트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강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최근 뉴스에서도 떠들썩한 사건들은 대부분 대규모 아파트 건설로 인한 불로소슥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처럼 한국의 아파트는 이미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부의 축적 수단으로 그 역할이 바뀐 지 오래되었음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마지막 항목인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저자가 해외에서 거주했던 경험이나 여행의 기록들을 통해서 만났던 그곳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수록하고 있다. 모두 7개의 글이 수록되어 있지만, ‘바깐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모두 12개의 짧은 글을 수록하여 전체적인 분량은 다른 두 항목과 비슷하다. 여행 중에도 늘 사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그곳에 사는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내용에서 저자의 품성을 엿볼 수 있을 듯하다. 파리에서 유학하던 시절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던 거지 토마와의 인연이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12월의 추운 날씨에 “내게 차 한 잔 베풀어 줄 수 있겠니?”라고 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토마와 한동안 커리를 마셨던 기억과 얼마 후에 사라져 다시 볼 수 없었던 사연이 소개되어 있다. 이밖에도 저자는 여행 중에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인연을 맺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산행과 여행은 그 과정에서 ‘그’와 ‘내’가 우연히 만나 사람답게 사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저자에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곳에서 길은 끝나지 않고 다시 이어진다.’는 고백은 그래서 자연스럽게 들린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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