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선언
손과 죽음을 사슬이라 부르자. 그들이 손가락을 걸고 있는 모습을 엉켜 있는 오브제라 부르자. 그들은 손가락을 쥐고 엄지와 엄지를 마주한다. 구부러진 몸이 손을 향해 있다. 손이 죽음을 외면하는 것을 흔적이라 부르자. 빠져나갈 수 없는 악력이 그들 사이에 작용한다. 손이 검지와 중지 사이 담배를 끼우고 죽음은 불을 붙인다. 타오르는 숨김이 병원 로고에 닿을 때 그들의 왼쪽 가슴은 기울어진다. 손에 입김을 불어넣어 주자. 손이 기둥을 잡음으로써 손은 기둥이 되고 그것을 선(善)이라 부르자. 죽음이 선의 형상을 본뜰 때, 다리를 반대로 꼬아야 할 때, 무너질 수 있는 기회라 부르자. 사라진 손을, 더듬는 선을, 부드러운 사슬을, 죽음이라 부르자. 그들의 호흡이 거칠어지면 담뱃재를 털자. 흩어짐에 대해 경의를 표하자.
비정규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잠잘 때 조금만 움직이면
아버지 살이 닿았다
나는 벽에 붙어 잤다
아버지가 출근하니 물으시면
늘 오늘도 늦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골목을 쏘다니는 내내
뒤를 돌아봤다
아버지는 가양동 현장에서 일하셨다
오함마로 벽을 부수는 일 따위를 하셨다
세상에는 벽이 많았고
아버지는 쉴 틈이 없었다
아버지께 당신의 귀가 시간을 여쭤본 이유는
날이 추워진 탓이었다 골목은
언젠가 막다른 길로 이어졌고
나는 아버지보다 늦어야 했으니까
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버는지 궁금해했다
배를 곯다 집에 들어가면
현관문을 보며 밥을 먹었다
어쩐 일이니 라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외근이라고 말씀드리면 믿으실까
거짓말은 아니니까 나는 체하지 않도록
누런 밥알을 오래 씹었다
그리고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 걸었다
이리
어느 마을 사람들
대화하길 좋아한다
쉬지 않고 얘기하며
얇게 저민 수육 입에 넣는다
그릇 비면 음식 담긴
그릇 새로 나온다
외투들 벽에 걸려 있다
*
당신은 식당을 했었다
그 식당에서
오도독, 오도독
내가 자랐다
당신은 뚱뚱하고 육개장을 잘했지
나는 당신 품에서 잠들었던 거 같아
오래도록 쓰다듬었던 거 같아
할 수 있다 아이는
엉망이고 간혹
도로에서 발견됐다
노란 선까지 엉금엉금
기어가던 작은 손발
위험을 감수하며 산다는 거
찬란한 아홉과
아름다운 아홉
병원에 있던 당신을 보았지
당신 손잡고 서 있었다 나는
주검 위 작은 새 골몰히
생각하는 에메랄드그린
나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았다면
나는 좀 더 편안한 사람이 되었겠지
당신과 다투지 않았다면
다정한 사람이 되었겠지
울지도 기쁘지도 않았겠지
평온했겠지
목매 죽은 삼촌의 손
창틀에 늘어져 있었다
약을 달이는 시간 동안 나는
당신 손톱을 만져 주었다
죽음은 고무 대야에 담긴
도라지와 파, 쑥과 검은 콩
잠이 들면 멀리서 온 새 떼가
온몸 쪼아 대고
열심히 일하길 바라네
자네는 고민이 많은 게 흠이라네
임금 체납이 불가피하고 나는
지하철 타고 무사히 출근했다
식구들 모여 있었다
두루뭉술
당신 발이 차가웠다
이력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트럭이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카페테라스에 놓인 철제 의자는 조금 녹슬었다. 녹슨 의자라니, 딱하기도 하여라!
파란색 배경 앞에 있으려니까 입술이 제멋대로였다. 입술을 가지런히 놓아두면 눈과 코가 달아났다. 귀라도 얌전하니 다행이었다. 사진사가 셔터를 눌렀다.
인사 담당은 당황했겠지. 이런 부류는 녹슬지도 않는다며 흉을 볼 거야.
비탈길이 무서웠지만 비석 옆에선 대담해졌다.
어릴 적 살던 집에선 사람들이 오가는 발이 보였습니다. 그 발을 보며 자랐습니다. 그 아이는 자라서 한 공원을 산책했다. 모름지기 프로의 산책은 사무적인 법.
공원에 있는 벤치는 여든일곱 개. 그중 스물세 개는 등받이와 팔걸이가 있었고, 서른한 개는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었고, 열네 개는 망가졌고, 아홉 개는 사라졌고, 나머지는 실수였다.
죄를 고백하고 죗값을 치렀을 땐 이미 늦었다.
몸통이 날아올랐다. 긴 시간, 찌그러진 범퍼를 보았고, 트럭운전수의 표정을 따라했다.
푹 하고,
바닥에 눈이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