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쯤 대목강좌를 들었으니 벌써 20년 가깝게 세월이 흐른 것이지요.
그러니 동기들이 최소 중년이상에 나이불문입니다.
“어이, 이 선생님,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벌써 덕정역에 도착해서 역 앞 5일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난 후에도 한참 뒤에 나타난
나이로 치며는 70대 동기 분이었지만 ‘왜 늦으셨냐’ 투정을 하기엔
너무나 젊어지고 활기 찬 모습에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동기 한분이 이곳 덕정 근방에 작업장을 마련해서 겸사겸사 한번 모이기로 한 것인데,
워낙 거리가 멀어 척추에 문제가 있는 이 분께 알려드릴까 말까 망설였던 것이기 때문이지요.
불과 몇 백 미터만 걸어도 주저앉아 잠시 쉬곤 했던 분인데
이젠 내가 벽에 기대야하고 이 ‘어르신’은 그런 도움이 필요 없이 꼿꼿이 의자에 걸터앉아 나와 이야기를 하시니
정말 기가 차지 않을 수 없습니다.
궁금하긴 하나 본인이 밝히려고 하질 않으니 꼬치꼬치 물어볼 수는 없지만
영적인 것과 관련된 기적이 생긴 것만은 사실인 듯합니다.
어쨌거나 새로운 삶을 사시는 듯한 활기찬 모습에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작업장은 덕정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90년대에 같이 공부를 하면서도 믿음직하게 빈틈없는 솜씨를 보여주던 동기이기에
이런 작업장을 마련했다는 게 내일처럼 더욱 기쁩니다.
80 여 평 되는 시멘 블록 건물에 들어서니 오랜만에 맡아보는 소나무 대팻밥 냄새와 함께 부재를 손질하는데 꼭 필요한
자동대패, 수압대패, 각끌기, 테이블 쏘 등이 갖추어져 있고, 벽면에는 다부지게 생긴 스탠리 공구 설합장에
잘 손질된 부속과 절삭용구들이 주인 성격처럼 꼼꼼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인방을 다듬는 자동대패 소리가 부드럽습니다.
소리가 부드럽다는 건 대팻날이 무디질 않다는 뜻인데 결과물도 면이 매끄럽습니다.
그걸 보니 오랫동안 손을 놓아 아스라이 잊혀지는 목공에 대한 감각을 자극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께 식사하러 가자고 할려니 눈치가 보입니다. 다행히 6시에 작업 끝이라니 좀 기다립니다.
이 근방에 사시는 동기 분께 음식점 한군데 알아 보랬더니 영 음식점 찾는 덴 젬병입니다.
하긴 술 한 잔만 들어가도 얼굴이 벌개지는 동기 목수들이니 제가 고달픕니다.
날씨가 더우니 백숙 같은 걸 하면 좋을 텐데 초계탕은 의정부를 나가야 합니다.
근처 막국수집을 찾으니 하나 나옵니다. ‘용암리 막국수’
작은 마을 한복판 허름한 집이겠거니 했던 막국수집은 의외로 무슨 가든처럼 깨끗합니다.
넓은 마당 한편은 주차장으로 메밀밭과 접한 쪽으로는 평상에 차를 마실 수 있도록 꾸며 놓았습니다.
일행 모두 ‘야~’ 소리가 나왔으니 장소선택은 일단 잘한 셈입니다.
백숙도 있겠거니 짐작했는데 백숙은 없고 막국수, 메밀 손만두, 메밀 칼국수, 수육, 만두전골로 단촐 합니다.
나중에 보니 명함에 1시간 전 주문하면 백숙을 준비된다고 써있습니다.
“우선 수육 하나하고 손만두...” 일행이 다섯 명이라 손 만두 한 접시에 만두가 4개여서 머뭇거리는데,
종업원 같지는 않고 식구 같은 아주머니가 서비스로 만두 하나 더 얹져 주겠다며
간단명료하게 교통정리를 해버립니다. 이거 기분 좋습니다.
열무김치와 서비스로 메밀전이 나옵니다.
묵은지와 무말랭이 무침이 곁들여 나오는 돼지고기 수육은
그냥 삶은 것이 아니라 간장을 약간 가미를 해서 족발이 연상됩니다.
겨자를 섞어 찍어먹으려고 새우젓을 달랬더니 곤쟁이젓 밖엔 없답니다.
'돼지고기 수육엔 그게 왔단데...'
면수(국수 끓인 물)에 넣을 조선간장이 없냐고 물으니 간이 돼 있을 거라며 먼저 드셔보시랍니다.
이 정도로 잔소리를 하면 귀찮은 표정을 지을 만 한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손만두, 상상을 불허하게 예쁘게 빚어 놓았습니다.
블라우스 장식 레이스처럼 만두껍질을 여며 놓아서 만두를 헤쳐 먹는데 손이 떨리고 얼굴이 붉어질라 합니다.
돼지고기 수육을 한 접시 더 시켜먹고 막국수와 칼국수를 시킵니다.
사골국물 칼국수라는데 씨알이 굵은 굴이 사골국물 맛을 살짝 가립니다.
메밀은 우리나라에 흔히 볼 수 있는 곡물이지만 끈기가 없어 반죽이 힘들어서
옛날에는 녹두의 전분 지금은 밀가루를 섞는다고 합니다.
메밀만이라서가 아니라 칼국수기 때문에 가닥이 굵은 것이긴 하겠지만
제가 처음 먹어보는 메밀 칼국수도 먹을 만 합니다.
메밀로 만든 음식을 한자리에서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는 만족감이 맛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식사를 하고 하얀 꽃이 흐드러진 메밀밭을 배경으로 야외테이블에 식혜와 아이스티를 갖다 마시며
얘기를 나누니 어느새 보름달에 달무리가 졌습니다.
허 생원들이 물레방앗간에서 물러나야 할 시간을 모기가 대신 알려 줍니다.
홈페이지로 가기
http://blog.daum.net/fotomani
첫댓글 식도락과 취미생활을 함께 즐긴 알찬 하루였군요
식도락보다도 가족이 이 근방에 갈일 있으면 그때 들를 곳 하나 확보했다는 의미가 더 큽니다.
어쩐지...
닥터리가 그런 교육을 받은 분이군요
메밀국수는 나도 좋아하는데 전화번호 적힌 명함 사진이 없군요
가족과 가기 좋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