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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 https://youtube.com/shorts/o9VVwihwQrs?si=GulDlYS2SKtb2lXG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 경제는 이른바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이라 불리던 거품 경제의 절정에 달하여 있었으며, 수많은 중견그룹들이 재벌로 도약하기 위하여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추진하던 시기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자금줄을 확보하고 그룹의 위상을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는 종합금융사(종금사) 인수는 모든 중견기업의 숙원 사업이자 가장 매력적인 사냥감이었습니다.
건설업을 모태로 성장한 성원건설이 1996년 ‘대한투자금융(이후 대한종합금융)’을 레버리지 바이아웃(LBO, 차입인수) 방식으로 인수한 사건은 당시 한국 자본시장과 기업 성장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수년간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여 심층 분석을 하였던 <김영진M&A연구소>에서 성원건설의 '대한종합금융' M&A에 대하여 딜(Deal)의 전 과정을 M&A의 배경, 인수 조건과 지분, M&A 방식(구체적인 LBO M&A 방식의 작동 원리), 인수 가격,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 과정, 그리고 향후 결과까지 깊이 있고 상세하게 분석하여 보겠습니다.
■ 성원건설의 설립과 성장과정
성원건설의 뿌리는 전윤수 창업주가 1977년 3월에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설립한 '태우종합개발(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설립 1년 뒤인 1978년 6월, 사명을 현재 대중에게 익숙한 '성원건설(주)'로 변경하며 본격적인 건설업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초기 소규모 건설 공사에 집중하던 성원건설이 역사의 전환점을 맞은 것은 1987년 4월, 창업주였던 전윤수 회장이 대표이사로 정식 취임하면서부터입니다.
전윤수 회장은 특유의 공격적인 추진력으로 회사의 외형을 과감하게 키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지휘 아래 성원건설은 단순 주택 사업을 넘어 토목과 관급 공사로 사업 영역을 폭넓게 확장하여 나갔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과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 개발 붐을 타고 급격하게 사세를 확장하였습니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 성원건설은 굵직한 국가 인프라 사업을 수주하며 탄탄런 성장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1990년 서해안고속도로 착공, 1994년 서울 지하철 6호선 공사 등을 잇달아 따내며 토목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입증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고속 성장을 바탕으로 1991년 2월에는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성공적으로 상장하며 기업의 신뢰도와 덩치를 한층 키우고 있었습니다.
■ M&A 배경
성원건설이 ‘대한투자금융(사명변경 이후 대한종합금융)’을 인수하게 된 M&A의 배경은 1990년대 대한민국의 거시경제적 환경과 성원건설이라는 기업의 고유한 성장 한계, 그리고 이를 돌파하려는 전략적 갈증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었습니다.
주택 건설과 토목 사업을 통해 막대한 현금을 긁어모은 성원건설은 단순한 중견 건설사를 넘어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춘 대기업 집단, 즉 재벌로 성장하려는 강력한 야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설업이라는 산업 자체는 필연적으로 국내 부동산 경기의 부침에 따라 수익성이 극심하게 요동치는 천수답 같은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막대한 분양 대금이 들어오지만, 미분양이 발생하거나 거시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면 곧바로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구조적 취약성을 극복하여야만 하였습니다.
이를 위하여 성원건설 경영진은 외부 경기 변동에 흔들리지 않고 성원그룹 전체에 안정적으로 자금을 공급하여 줄 수 있는 든든한 '캐시카우(Cash Cow)'이자 '자금조달 창구'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금융시장에서 종합금융회사(종금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었습니다.
종금사는 은행과 달리 단기 외화자금을 해외에서 저리로 빌려와 국내 기업들에게 고금리로 장기 대출을 해주는 이른바 '단기 차입, 장기 운용'의 비즈니스 모델을 통하여 엄청난 예대마진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기업어음(CP) 할인, 리스, 팩토링 등 다양한 기업금융 업무를 제한 없이 취급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건설사를 모기업으로 둔 성원그룹이 종금사를 계열사로 편입할 경우 건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금 조달이나 성원그룹 계열사들의 운전자금을 확보하는 데 있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성원건설은 ‘대한투자금융’을 인수하기 전부터 금융기관을 인수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였습니다.
국민은행 계열이었던 ‘한성상호신용금고’ 입찰에 무려 네 차례나 응찰하며 끈질기게 금융업 진출을 타진하였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러던 중 성원건설의 레이더망에 들어온 것이 바로 '대한투자금융(이후 대한종금)'이었습니다.
대한투자금융은 1973년 8월에 미원그룹과 해태그룹이 공동 출자하여 창업한 단기금융회사(이후 종금사로 전환)였으나, 당시 탄탄한 영업망과 알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지배주주가 확고하지 않아 적대적 M&A나 우호적 지분 매각의 타깃이 되기 쉬운 지분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대한투자금융의 경영권을 쥐고 있던 미원그룹이 내부 사정상 자금 확보를 위하여 지분 매각을 은밀히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전윤수 회장과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대한투자금융의 박용훈 사장이 미원그룹의 임창욱 회장과 전윤수 회장 사이의 물밑 협상을 주선하면서, 역사적인 M&A의 서막이 오르게 됩니다.
성원건설은 이러한 ‘대한투자금융(대한종금)’의 지배구조적 취약점과 성원건설의 금융업 진출이라는 강력한 전략적 목표를 결합하여, 성원그룹의 명운을 건 대규모 인수전을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 M&A 조건과 인수 가격의 결정
1995년 9월, 마침내 성원건설은 미원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대한투자금융 지분을 전격 인수한다고 발표하며 증권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 M&A는 적대적 인수가 아닌 철저한 '대주주 간의 합의에 의한 우호적 M&A' 형태를 띠었습니다.
미원그룹 입장에서는 막대한 현금을 챙길 수 있었고, 성원건설 입장에서는 그토록 염원하던 금융기관을 손에 넣을 수 있었기에 양측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결과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원그룹은 공동 창업주였던 해태그룹과 사전 협의조차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지분을 전량 성원건설에 넘겨버려 훗날 기업 간의 마찰을 빚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인수를 위한 세부 조건은 매우 공격적이었습니다.
경영권을 확실히 장악하기 위하여 성원건설은 장외 거래와 블록딜(대량 매매) 방식을 통하여 미원그룹의 지분을 일거에 사들였습니다.
인수 가격은 당시 대한투자금융의 시장 주가에 막대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주당 약5만5,000원에서 5만6,600원이라는 파격적인 고가에 책정되었습니다.
주당 인수가격은 장내거래 가격에 수십 퍼센트의 프리미엄이 가산되어 산정되었으며, 이는 대한투자금융이라는 금융기관이 가진 면허(라이선스)의 희소성과 향후 성원그룹의 사금고 역할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무형의 미래 가치가 선반영된 결과였습니다.
증권가에서는 성원건설이 대한투자금융을 집어삼키기 위하여 동원한 총 인수자금이 무려 1,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였습니다.
중견 건설사였던 성원건설의 자기자본 규모나 현금 창출 능력을 감안할 때 이 인수가격은 자체 보유 현금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였습니다.
당시 성원건설의 자본금이 3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자본금 300억원도 안 되는 회사가 어떻게 1,500억원짜리 회사를 인수하느냐"며 자금 출처에 대한 엄청난 의혹과 뜬소문이 난무하였습니다.
누군가 뒤를 봐주는 진짜 인수 주체가 따로 있다는 풍문까지 돌았으나, 성원건설은 자신들의 독자적인 M&A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 인수지분 확보 전략과 지배력 강화
초기 M&A 발표 당시, 성원건설이 미원그룹 등으로부터 확보한 대한투자금융의 지분은 약17%에서 20% 남짓이었습니다.
하지만 금융기관의 특성상 이 정도 지분만으로는 완벽한 경영권 방어와 절대적 지배력을 행사하기에 부족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성원건설은 인수 직후부터 그룹의 자금력을 총동원하여 꾸준히 대한투자금융의 주식을 시장에서 매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장내 거래를 통하여 유통 물량을 빨아들이는 한편, 계열사와 친인척 명의를 동원하여 지분율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특히 시간외 대량 매매(자전 거래) 방식을 적극 활용하여 단숨에 140만주 이상을 확보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공격적인 지분 매입 작전을 통하여 성원건설은 1995년 9월 무렵 대한투자금융 지분의 38% 이상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됩니다.
이는 향후 대한투자금융을 완전히 성원그룹의 금고처럼 활용하려 하였던 전윤수 회장의 장기적인 포석이었습니다.
■ M&A 방식 : 논란의 자칭 '한국형 LBO(차입매수)' 기법
이 M&A 사건이 금융 역사상 가장 크게 주목받은 이유는 바로 막대한 자금조달 방식, 즉 자칭 '한국형 LBO(차입인수, Leveraged Buy-Out)'라는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진 전대미문의 기법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LBO란 본래 미국 등 선진 금융 시장에서 발달한 기업 인수 기법으로, 인수할 대상 기업의 자산이나 미래 현금흐름을 담보로 금융기관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빌려(레버리지) 해당 기업을 사들이는 방식입니다.
마치 지렛대(Leverage)를 이용하여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듯, 적은 내 돈으로 큰 기업을 먹는 기법입니다.
미국에서의 전형적인 LBO는 주로 이자율이 높은 정크본드(고수익 비우량 채권)를 발행하거나 깐깐한 금융기관의 심사를 거쳐 자금을 차입하는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인수 이후에는 대상 기업의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거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하여 현금을 창출하여 빚을 갚아나가는 것이 정석입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피인수 회사의 자산을 직접 담보로 제공하여 인수 자금을 빌리는 행위가 상법상 배임죄의 소지가 있어 엄격하게 제한되었습니다.
따라서 성원건설이 활용한 이른바 자칭 '한국형 LBO'는 매우 복잡하고도 위험한 줄타기 자금 조달로 엄밀한 의미의 서구식 LBO와는 본질적으로 달랐습니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대주주가 기업을 사유물로 여기는 한국적 풍토에서 기형적으로 변질된 LBO'라고 꼬집었습니다.
성원건설이 활용한 자칭 '한국형 LBO'의 구체적인 수법은 이렇습니다.
성원건설은 먼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건설 부지, 부동산, 그리고 알짜 계열사들의 주식 등을 담보로 제1금융권 및 제2금융권(다른 종금사, 상호신용금고 등)으로부터 대규모 단기 브릿지론(Bridge Loan)을 끌어모았습니다.
또한, 성원건설 자체의 신용을 바탕으로 거액의 회사채를 무리하게 발행하여 시장에서 자금을 확보하려고 백방으로 뛰었으나 여전히 인수 자금이 부족하였습니다.
이에 성원건설은 자본금이 불과 32억원에 불과하였던 계열사 '모던인스트루먼트'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놀랍게도 모던인스트루먼트는 모기업인 성원건설의 지급보증을 등에 업고, '자신들이 인수하려는 바로 그 대상 기업'인 대한투자금융으로부터 150억원이라는 거액을 대출받아 그 돈으로 대한투자금융의 주식을 매입하였습니다.
쉽게 말하여, 타깃이 된 은행 금고에서 돈을 꿔서 그 은행을 사버린 격입니다.
자금줄을 확보하기 위하여 금융기관을 인수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역설적으로 그 인수를 위해 타깃 금융기관의 자금을 끌어다 쓴 앞뒤가 뒤바뀐 촌극이었습니다.
당시 M&A를 수행하고 있던 국내 투자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맹렬한 도덕적 비난을 쏟아내었습니다.
자본금 32억원짜리 껍데기 회사가 모기업의 보증만으로 150억원을 대출받은 것도 문제였거니와, 피인수 기업의 자금으로 피인수 기업을 매수하는 것은 명백한 윤리적 해이(모럴 해저드)라는 지적이 들끓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의 맹점을 교묘히 파고든 이 자금조달 방식은 당시로서는 M&A 시장에서 누구도 생각지 못한 매우 진일보(?)한 M&A 기법으로 평가받기도 하였습니다.
더욱 치명적이었던 LBO 방식의 연장선은 대한투자금융 인수 이후에 발생하였습니다.
성원건설은 대한투저금융의 경영권을 장악한 직후, 자신이 투자한 인수 대금으로 인하여 발생한 금융 비용(이자)과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 원금을 갚기 위하여, 역으로 자신이 인수한 대한투자금융의 금융 네트워크를 활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엄격한 금산분리 규제가 완벽하게 정착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종금사들은 대주주나 계열사에 대한 신용 공여가 일정 부분 가능하였거나 우회적인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편법들이 존재하였습니다.
성원건설은 외부에서 빌려온 돈으로 대한투자금융을 인수한 뒤, 대한투자금융의 신용도와 자금 동원력을 활용하여 계열사들의 빚을 돌려막거나 그룹의 새로운 건설 프로젝트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극단적인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하였습니다.
이는 경제가 성장하고 자산 가격이 상승할 때는 환상적인 마법처럼 보이지만, 외부 자금줄이 마르거나 금리가 급등할 경우 모기업과 피인수 금융사가 동시에 파산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M&A 방식이었습니다.
■ 공정거래위원회 및 증권관리위원회의 심사와 제재
자본 시장을 뒤흔든 거대한 M&A였던 만큼, 규제 당국의 칼날 역시 성원건설을 향하였습니다.
당시 기업의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를 감시하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와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감시하는 ‘증권관리위원회(現 금융위원회의 전신)’는 이 기이한 M&A의 합법성 여부를 현미경처럼 들여다 보았습니다.
1990년대 중반 공정거래위원회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결합이 발생할 경우, 해당 인수가 시장의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지 여부를 엄격하게 심사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성원건설의 대한투자금융(대한종금) 인수는 산업자본(건설업)이 금융자본(종합금융업)을 인수하는 이른바 '이종 산업 간의 혼합결합(Conglomerate Merger)'에 해당하였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해당 기업결합이 특정 시장에서 독과점을 형성하여 가격을 인상하거나 경쟁 사업자를 배제할 우려가 있는지를 보는 '경쟁제한성 심사'였습니다.
성원건설은 건설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대한투자금융(대한종금)은 금융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기업 간에 직접적인 경쟁 관계(수평적 결합)가 성립하지 않았으며, 부품을 공급받는 관계(수직적 결합)도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혼합결합이 건설 시장이나 금융 시장에서 당장 독과점을 심화시키거나 경쟁을 제한할 우려는 극히 낮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쟁점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였습니다.
당시 공정위는 재벌들이 금융기관을 사금고화하여 문어발식 확장을 거듭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성원건설이 대한투자금융(대한종금)을 인수한 이후, 대한투자금융의 막대한 수신 자금과 여신 능력을 성원건설 계열사들의 건설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는 데 몰아주는 내부거래나 불공정 지원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들여다보았습니다.
당시 법령상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 규정 등이 존재하였지만, 성원건설은 아직 법적으로 강력한 규제를 받는 30대 대규모 기업집단(재벌)의 최상위권에는 속하지 않는 중견그룹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공정위는 형식적인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본 인수가 시장 경쟁을 노골적으로 저해하는 불법적 요소가 없다고 판단하여 기업결합을 최종적으로 승인하게 됩니다.
다만, 공정위와 금융 감독 당국은 인수 이후 대주주에 대한 부당한 신용공여 한도 준수 여부,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 금지 등을 철저히 모니터링하겠다는 단서와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였습니다.
더 큰 암초는 증권관리위원회(증관위)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성원건설은 경영권 장악을 위하여 주식을 쓸어 담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증권거래법에 따르면, 상장 기업의 주식을 일정 비율 이상 대량으로 매집하여 지배구조를 변경하려 할 때는 반드시 금융 당국(증관위)에 사전 보고를 하고 정식 승인을 거쳐야만 하였습니다.
이는 소액주주를 보호하고 시장의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습니다.
그러나 1995년 9월, 성원건설은 이러한 법적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채 몰래 장내에서 대한투자금융 주식 45만주를 불법적으로 매입한 사실이 증관위 조사 결과 뒤늦게 적발되었습니다.
증관위의 승인 없이 우회적으로 대량의 주식을 매집한 이 행위는 명백한 증권거래법 위반이었습니다.
당국은 성원건설의 탈법적 주식 매입 행위에 대하여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하였고, 이 불법 매입 사건은 성원건설의 기업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며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 M&A 이후의 씁쓸한 결말과 기이한 역설
성원건설의 대한투자금융(인수 이후 1996년 7월 '대한종합금융'으로 사명 변경) 인수는 단기적으로는 전윤수 회장의 웅장한 꿈을 실현시켜 준 듯 보였습니다.
든든한 종합금융사를 자회사로 둔 성원건설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미도파 등 타 기업의 적대적 M&A에까지 뛰어들며 13개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 재벌 그룹으로 비상하였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차입 경영과 편법적인 LBO의 결말은 파국이었습니다.
1997년 대한민국을 덮친 IMF 외환위기 사태는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외환 위기 속에서 단기 외채에 의존하던 종금사들이 직격탄을 맞았고, 고객들이 앞다투어 돈을 빼가는 뱅크런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성원건설은 자회사인 대한종합금융의 연쇄 부도를 막기 위하여 900억원에 가까운 피 같은 성원그룹 자금을 수혈하였으나 밑빠진 독에 물 붓기였습니다.
결국 대한종합금융은 파산의 운명을 맞이하였고, 그 여파로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모기업 성원건설마저 1999년 1차 부도를 맞으며 화의 절차에 들어가는 치명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가장 극적이고 씁쓸한 역설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뒤에 발생하였습니다.
2000년대 후반, 상떼빌 아파트의 성공으로 잠시 재기했던 성원건설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시 몰락의 길을 걷던 무렵이었습니다.
오너 일가의 주식이 담보로 잡혀 반대매매를 당하는 등 지분율이 급락하자, 성원건설의 지배구조 최상단에 믿기 힘든 이름이 등장하였습니다.
바로 10년 전 자신들이 무리하게 LBO 방식으로 인수하였다가 파산시켜 버린 구(舊) 자회사, '파산법인 대한종합금융(당시 관재인 예금보험공사)'이 2007년 성원건설의 최대주주(지분율 약 23~34%)로 등극한 것입니다.
과거 모기업의 빚보증과 차입매수의 희생양이었던 죽은 자회사(대한종합금융)가, 세월이 흘러 복잡하게 얽힌 담보 관계의 청산 과정을 통하여 오히려 쓰러져가는 모기업(성원건설)의 목줄을 쥐게 된 이 기막힌 상황은 한국 M&A 역사상 전무후무한 블랙 코미디로 남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성원건설의 대한투자금융 LBO 인수는 기업의 덩치를 한순간에 키워준 달콤한 독배였으며, 금융 당국의 허술한 규제를 파고든 탐욕스러운 차입 경영이 결국 기업의 명운을 어떻게 파멸로 이끄는지를 뼛속 깊이 각인시킨 대한민국 경제사의 쓰라린 반면교사라 할 수 있습니다.
■ <김영진M&A연구소>의 평가 : ‘독이 든 성배’를 마신 M&A
결과적으로, 성원건설의 ‘대한투자금융(이후 대한종금)’ LBO 인수는 성공한 순간 가장 끔찍한 독배로 변하였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당시 상황을 묘사하자면, 성원건설이 이사회를 장악한 이후 대한종금은 본연의 금융업 경쟁력 강화보다는 '모기업(성원건설)을 위한 자금조달 창구'로 전락하였습니다.
경영권 인수 후, 전윤수 성원그룹 회장은 대한종금의 의사결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전문경영인(CEO) 타이틀을 단 대표이사가 선임되긴 하였으나, 실질적인 대출 심사와 자금 집행의 최종 권한은 성원그룹 구조조정본부와 전 회장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이사회는 성원건설이 추진하는 아파트 건설 사업이나 무리한 확장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는 거수기 역할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대한종금은 해외에서 값싼 단기 외채를 빌려와 성원건설 등 국내 기업에 장기로 빌려주는 위험한 영업을 지속하였습니다.
대한종금을 중심으로 든든한 금융 '자금줄'을 확보한 성원그룹은 공격적인 M&A 시장에도 뛰어들었습니다,
대표적으로 1997년에 대한종금 등 계열사들과 함께 미도파 주식 약186만여주(지분율 12.63%)를 확보하며 대농그룹을 상대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적대적 M&A 분쟁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해당 주식 전량을 대농그룹에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철수하는 등 무모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무리한 차입을 통하여 대한종금을 인수한 지 2년 남짓 지난 1997년 말, 대한민국은 초유의 IMF 외환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국가 신용도가 추락하면서 단기 외화를 빌려 장기로 대출해주던 종금사들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외국계 은행들이 일제히 달러 상환을 요구하자 대한종금은 극심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모기업인 성원건설 역시 LBO 인수를 위하여 빌렸던 천문학적인 차입금의 만기 연장이 거절되면서 성원그룹 전체가 치명적인 자금 경색에 직면하였습니다.
대한종금을 살리기 위하여 성원건설이 자금을 쏟아붓고, 성원건설을 살리기 위하여 대한종금이 무리하게 자금을 동원하는 악순환이 벌어졌으나, 거대한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결국 대한종합금융은 부실 종금사로 지정되어 인가 취소 및 퇴출의 수순을 밟게 되었고, 막대한 인수 부채를 떠안고 캐시카우마저 상실한 성원건설 역시 연쇄 부도를 맞으며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성원건설의 대한종금 인수는 자칭 ‘한국형 LBO 방식’으로 30%대의 지분을 확보하여 단숨에 최대주주에 오르고, 경영권을 장악하여 이사회를 성원그룹 측근들로 100% 물갈이하며 성원그룹의 사금고화하였던 무모한 M&A였습니다.
하지만 그 무리한 경영권 장악이 결국 IMF라는 파도를 만나 성원그룹 전체를 침몰시킨 뼈아픈 역사적 사례로 남아있습니다.
이 사건은 자기 자본 없이 타인의 돈을 극단적으로 끌어다 쓰는 무자본 LBO 방식의 M&A가, 산업자본이 금융기관을 소유하려는 탐욕과 만났을 때, 그리고 거시경제의 충격이 가해졌을 때 한 기업을 얼마나 철저하게 파멸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국 경제사의 가장 뼈아프고 드라마틱한 반면교사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진M&A연구소(SINCE 2000) 대표 김영진(이메일 : yjk21c@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