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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6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용서해 주십시오.
몇 년 전에 즐겨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믿거나 말거나’를 시청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신기한 모습도 보이고,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정말로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2지창(枝槍)을 보여주는데 그 창의 용도가 종교재판을 할 때 이단자나 마녀로 판결된 사람들을 빨갛게 불에 달군 2지창으로 눈을 지져 뽑아내는 도구라고 하였습니다. 공상 영화나 악마가 출현하는 영화에 보면, 악마의 눈이 독기를 품거나 빨갛게 혹은 파랗게 변하는 것을 보면 악마를 죽이기 위해서는 눈을 도려내고, 불로 달군 2지창으로 찌르려고 만들었던 도구 같습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 가슴이 섬뜩하고 소름이 끼치고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는데 2지창은 범죄 집단에서 사건의 목격자에게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서 똑같은 방법으로 살인하고, 고발을 방지하는 방법으로 폭력을 행사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일제시대 때 사람들을 고문하면서 손으로 눈을 찔렀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중국영화 ‘붉은 수수밭’이라는 영화에서 사람의 껍질을 벗기게 하고, 마루타로 실험대상을 삼아 처참하게 사람을 죽인 것을 생각하면서 잔인하게 만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요즘도 다시 미화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울분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버드 대학교 램지 교수는 위안부들을 매춘부라고 그들의 역사를 다시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잔인한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지 새삼 묵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악령이 들린 사람을 구하시고, 악령을 쫓아내시며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데 그렇게 온 힘을 다 기울이셨는데 중세에서는 왜 주님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종교재판을 해서 악령을 쫓아내지 못하고, 악령 들린 불쌍한 사람을 죽이고, 눈을 뽑는 잔인한 형벌을 행하였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인 교황 요한바오로 2세 성하가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여 모든 교회의 잘못을 용서 청한 것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되었고 우리 각자도 교황님과 같이 세상을 향하여 용서를 청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억울하게 희생된 정말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교리와 성경을 인용해서 주님을 모독하고, 하느님을 함부로 말하고, 말씀을 빙자하여 이단으로 몰고, 인터넷에서 보이지 않는 공간이라고 함부로 아프게 말을 하고, 사랑이 아닌 말로 상처를 입히고 있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특히 교리를 이유로 벌어지는 종교전쟁은 폭력과 테러로 확대되고, 죄 없는 어린이와 힘없는 노약자들이 죽어 가는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독설로 벙어리와 귀머거리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잔인해졌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저토록 모질게 변했는지 생각하면서 현세의 전쟁과 형벌과 고문, 그리고 살인과 상해를 입히는 모든 잔학한 행위에 대해서 정말 많은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IS이스람 집단들과 같이 비정상적인 종교집단들이 살인을 종교의 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그런 일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말이 비수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 박히고 있을 것입니다. 내 편견과 아집으로 보는 시각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벙어리를 만들고, 아집과 고집으로 지금도 매일 살인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자신이 원망스럽고, 자신의 위선과 허식과 거짓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것 같아 부끄러워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비와 동떨어진 모든 행동들을 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 생각해 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남을 심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함부로 심판하고, 판단하며, 단죄한 모든 잘못을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되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마녀 재판을 하거나 과학자들을 종교재판으로 몰아간 것처럼 우리가 판단하고 단죄한 대로 다시 판단되고, 단죄될 것입니다. 매 순간 2지창이 아니라 다지창(多枝槍)으로 찔릴 것이며, 매 순간 눈을 멀게 하는 아픔과 귀를 먹게 하고 혀가 잘리며, 손이 잘리고,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내 독설로 상처 입은 사람들이 지금 다시 독설로 나의 말을 되받을 것은 내가 되질한 그 되로 다시 받을 것이라는 주님의 살벌한 말씀이 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행운마저도 바랄 수 없기에 아득하기만 합니다.
곡식이 부족할 때 양식을 많이 꾸어본 사람들은 후하게 되질하고 말질하는 사람을 보았을 것이고, 야박하게 되질하는 사람을 보았을 것입니다. 곡식은 누르고 두드리며 흔들고 넘치도록 담아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밑지지 않는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야박하게 담아주고, 홍두깨로 위를 자르고, 흔들거나 두드리지도 않게 주어야 합니다. 그게 일명 ‘장사 속’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손해나는 일을 주님은 하라고 하십니다. 손해 보는 짓은 정말 하기 싫어도 그게 진정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고 마음이라면 그래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9,4ㄴ-10
4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5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당신의 계명과 법규에서 벗어났습니다.
6 저희는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과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7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유다 사람, 예루살렘 주민들, 그리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당신께 저지른 배신 때문에 당신께서 내쫓으신
그 모든 나라에 사는 이스라엘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8 주님,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을 비롯하여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9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10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축일2월 26일 성녀 바울라 몬탈 포르네스(성 요셉 데 갈라산즈의) (Paula Montal Fornes of St. Joseph de Calasanz)
신분 : 설립자, 수녀
활동 연도 : 1799-1889년
같은 이름 : 갈라산스, 갈라상스, 몬딸, 빠올라, 빠울라, 칼라산스, 칼라산즈, 파올라, 파울라
성 요셉 데 갈라산즈의 성녀 바울라 몬탈 포르네스(Paula Montal Fornes de San Josephus de Calasanz)는 1799년 10월 11일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Barcelona) 부근 해안도시인 아레니스 데 마르(Arenys de Mar)에서 태어나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녀는 겸손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성장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냈다(1799-1829년). 1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녀는 홀로 다섯 자녀를 기르는 어머니를 위해 장녀로서 고된 일을 하며 가사를 도왔다. 동정 마리아께 대한 사랑과 본당에서의 영성생활을 통해 많은 어려움을 이겨냈는데, 이런 경험을 통해 그녀는 그 시대에 소녀와 젊은 여성 그리고 부인들이 교육과 문화를 접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자신을 부르고 계심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국경도시이자 군사 요새인 헤로나(Gerona) 인근의 피게라스(Fiqueras)에 눈길을 두었다. 1829년 나이 서른에 그녀는 절친한 친구인 이네스 부스케츠(Ines Busquets)와 함께 그 지역의 중심지로 이주하여 소녀들을 위한 첫 번째 학교를 열었다. 이 학교는 기존의 소년들 중심의 학교와는 전혀 다른 학교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통해 교회 안에서 소녀와 젊은 여성들의 전인적 그리스도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카리스마의 사도직이 탄생하였다. 이 사도직은 여성들이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 사회를 변혁하는 것을 지향하였다. 그래서 그녀를 따르는 이들은 교육이라는 네 번째 서원을 발함으로써 다른 이들과 구분되고 있다.
1837년 이후 그녀와 그녀의 공동체는 성 요셉 데 갈라산즈(8월 25일)의 정신을 온전히 따르며 그의 영성과 규칙에 따라 살고자 했다. 그런 목적으로 자신의 고향인 아레니스 데 마르에 1842년 두 번째 학교를 설립한 이후 그녀는 바르셀로나 인근의 해안도시인 마타로(Mataro)에서 성 요셉 데 갈라산즈가 설립한 그리스도교 교리 형제회(일명 Piarist)의 신부들을 직접 만났다. 그리고 1846년 바르셀로나 북쪽의 사바델(Sabadell)에 세 번째 학교를 개교했는데, 이 학교는 그녀가 교육을 통해 이루고자 한 사도직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바델의 학교에서 그녀가 그리스도교 교리 형제회 신부인 야신토 펠리우(Jacinto Feliu)와 아구스틴 카사노바스(Agustin Casanovas)와 함께 하게 된 것은 하느님의 섭리였다. 그들의 도움과 지도를 받아 그녀는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형식의 수도회에 대한 교회법적 틀을 갖추게 되었다. 1847년 2월 2일 그녀는 마리아 수녀회(Daughter of Mary, 또는 경건한 학교 수녀회 Pious School Sisters)의 일원으로서 처음부터 함께한 동료인 이네스 부스케츠, 펠리치아 클라벨(Felicia Clavell), 프란치스카 데 도밍고(Francisca de Domingo)와 함께 서원을 하며 성 요셉 데 갈라산즈의 바울라라는 수도명을 택했다. 1847년 3월 14일 사바델에서 열린 총회에서 그녀는 총장이나 부총장의 직책을 맡지는 않았지만 일생을 통해 수녀회를 이끌었다. 그녀가 설립한 수녀회는 1860년 교황 비오 9세(Pius IX)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다.
1829년부터 1859년까지 그녀는 열정적으로 활동했고 개인적으로 7개의 학교를 개교하였다. 1829년 피게라스의 학교를 시작으로 해서 1842년 아레니스 데 마르, 1846년 사바델, 1849년 이구알라다(Igualada), 1850년 벤드렐(Vendrell), 1852년 마즈노우(Masnou), 1859년 올레사 데 몬세라트(Olesa de Montserrat)에 학교를 열었다. 그리고 다른 4개의 학교, 즉 헤로나(1853년), 블라네스(Blanes, 1854년), 바르셀로나(1857년), 소예르(Soller, 1857년)의 학교를 설립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수녀들의 교육에 힘썼고, 자신의 일생에서 매우 역동적이며 예언적인 시기를 살았다.
1859년 개교한 바르셀로나 인근 올레사 데 몬세라트(Olesa de Montserrat)의 학교는 그녀가 개인적으로 설립한 마지막 학교로, 가장 좋아하던 곳이었다. 가난하고 작은 이 마을의 수녀원에서 그녀는 종신서원을 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물렀다(1859-1889년). 이 30년의 시간은 그녀의 값진 증거와 관대하고 거룩한 삶의 모범으로 혜택을 받은 올레사의 소녀와 젊은 여성들에게 은총의 시기였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사랑하고 존경했고, 그녀는 수녀회를 위해 전적으로 하느님께 순명하였다. 그녀의 교육 방법은 그녀가 설립한 학교의 교육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녀의 영성은 성 요셉 데 갈라산즈의 모범을 따르는 것과 자신들의 고유한 카리스마를 통해 여성들의 전인적인 그리스도교 교육을 완성하도록 돕는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었다. 1889년 2월 26일 올레사 데 몬세라트에서 그녀가 선종했을 때 이미 그녀가 설립한 수녀회는 3백 명이 넘는 회원들이 에스파냐 전역에 걸쳐 19개의 학교를 운영하며 설립자의 유산인 교육 이념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녀는 1993년 4월 18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1년 11월 25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는 특별히 19세기의 여성들에게 교육 사도직을 통해 사랑과 희망의 새로운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그녀가 자신의 생애를 통해 이룬 이 교육 활동은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그녀의 정신을 따르는 수녀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바울라 몬탈 포르네스(성 요셉 데 갈라산즈의) (Paula Montal Fornes of St. Joseph de Calasanz)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