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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정보 스크랩 양평 세심정 (洗心亭)
삼천지 추천 0 조회 55 14.02.20 13:4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양평 세심정 (洗心亭)

문 의 처  :  031-770-2897
소 재 지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소 유 주  :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23호
시대구분 :  조선시대

 

세심정은 중종, 명종 때의 학자이자, 조광조(趙光祖)와 김식(金湜)의 수제자였던 조욱(趙昱, 1498~1557)이 기묘사화를 피해 은거하며 제자들과 더불어 도학을 강론하던 곳이 기원이 된다. 그가 이곳 덕촌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천하 명산을 유람하던 48세 되던 1546년으로 『용문록』「둔촌록(遯村錄)」에 「산이 감아돌고 기름진 곳이라 살기를 결심했다」는 구절이 있어 이때 그가 용문산 기슭의 덕촌에 은거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이곳에 은거하며 그 마을을 둔촌(遯村)이라 이름하고 집 이름을 세심당(洗心堂)이라 하였으며 사람들은 그를 용문선생이라 불렀다. 이후 잠시 관직생활을 하다가 명종 10년(1555)에 은퇴하여 다시 지평 둔촌의 옛 집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현재의 정자가 건립된 것은 명종 16년(1561)으로 조욱이 1557년 세상을 떠나자 조욱의 뜻을 사모하여 후학들이 정자를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운계서원지』를 보면 세심정은 조욱이 죽은 후 그를 회고하며 지은 시에 등장한다. 세심정은 보진암(?眞菴)이라고도 불렸는데 이근원(李根元)이 지은 「등세심정차판상운(登洗心亭次板上韻)」의 시에 '조용문(조욱)이 여기에 은거하였기 때문에 정자의 이름을 세심이라 하고 또는 보진암이라고도 한다'는 구절이 있어 참고가 된다.

현재 건물은 1940년 경에 중수한 것이다. 세심정은 6각 원당형을 가미한 66㎡의 아담한 목조건물로 팔작지붕에 한식 골기와를 얹었다. 7개의 주초석 위에는 6각의 기둥을 세웠고, 2.5m 길이 6개의 툇마루가 부착되어 있으며, 내부는 우물 정마루를 깔았다.

정자에서 남쪽으로 10m 떨어진 곳에는 66㎡ 되는 연당이 있다. 이 연못 역시 조욱이 만들었다고 전하는데 석축으로 주위를 돌렸으며 한가운데는 관상 노송이 운치있게 식수되어 있다.

 

세심정과 조욱이 관련된 평양 조씨의 유적으로 조욱이 제향된 운계서원과 조욱묘가 있다. 조욱묘는 세심정에서 800m 정도 떨어진 덕촌리 퇴촌 마을 야산에, 운계서원은 세심정에서 1㎞정도 떨어진 덕촌리 서원말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 - 인터넷에서

 

세심정은 놀랍게도 문화재청에 등록이 안돼있었다. 이것만이 아니라 양평의 정자는 모두 문화재청에 등록안되어있던데. 이유가 뭘까?

세심정과 연못이다 

 

1940년에 중수한 모습그대로인데 화려하지않고 소박한 모습을 하고있다

 

 

연못을 들어갈수있는 돌다리

 

들어가본다

 

연못안에서 바라본 세심정

 

 

올라가보자...

 

 

전서체(篆書體)로쓴 세심정글자가 참 예뻐보인다

 

 

소박한 모습이다

 

옆모습

 

 

 

세심정에서 바라본 연못

 

 

세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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