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관! 나는 지휘통제실장이다. 의장님 어디 계시는가?”
북한의 전면 공격을 보고 받은 합참의 지휘통제실장이 전화로 합참의장을 찾았다.
“의장님께서는 라운딩을 중단하시고 락커에 계십니다.”
합참의장은 10시부터 일어난 서해 교전으로 인해 골프를 중단하고 옷을 갈아입던 중이었다.
“그러면 빨리 가서 전쟁이 발발했다고 말씀드리게.”
“전쟁이라고 하셨습니까?”
“전쟁이네.”
“알겠습니다.”
지휘통제실장에게 대답한 후 대기실에 있던 부관이 락커 안으로 다급하게 뛰어 들어갔다. 이런 광경에 합참의장이 의아한 광경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
“의, 의장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쟁? 그게 정말인가?”
합참의장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고 표정과 말투에서 그것이 드러났다.
“예. 그렇습니다. 조금 전 지통실장이 알려왔습니다. 여기 지통실장 나와 있습니다.”
부관이 말하면서 휴대전화기를 합참의장에게 전달했다.
“지통실장, 의장이네.”
“의장님, 정확히 10시 15분에 북한이 휴전선 전역에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현재 상황은?”
순간 합참의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북한에게 완벽하게 기습당한 사실과 그로 인한 큰 피해를 떠올리자 합참의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책임감을 느꼈다.
“지금까지는 북한이 야포 공격만 하고 있습니다. 포탄이 서울 서북부지역에도 떨어지고 있 습니
다.”
“알겠네. 일단 장관님께 보고 드리고 다시 전화하겠네.”
합참의장은 전화를 끊고 옆에 있던 국방부장관을 바라봤다. 국방부장관도 합참의장과 같이 골프장의 락커에 있었다. 장관도 전쟁이 발발했다는 통화를 옆에서 듣고 이미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장관님, 전쟁입니다. 북한이 10시 15분에 전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역시 그랬었군.”
국방부 장관은 옆에서 이미 전쟁 상황을 들었지만 여전히 믿지 못한다는 표정이었다.
“저는 곧 합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현황 파악 후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나는 청와대로 보고하겠네.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게.”
“알겠습니다.”
이날은 일요일이었기에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한국군 수뇌부들은 골프를 치고 있던 중 교전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북한군은 한국군의 주요 지휘관이 일요일만 되면 골프를 치거나 종교 활동을 위해 부대를 떠나 원거리로 간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북한은 의도적으로 이 시간을 노렸다. 이런 점에서 남한은 북한에 비해서 불리한 점이 많았다. 남한의 주요 군사 시설과 중요 군사 정보들은 북한군에 의해서 샅샅이 파악되고 있었지만 남한은 북한군의 사정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북한의 폐쇄적인 정치 체제는 비밀을 유지해주었지만 한국군은 정보의 획득이라는 측면에서 북한에 비해 상당부분 열세였다. 한국군의 주요 수뇌부들이 서둘러 부대로 복귀할 동안 작전은 합참의 지휘통제실과 각군의 작전사령부에서 지휘하고 있었다. 한국군의 명령 체계는 복잡했다. 교전이 벌어지면 현지 지휘관이 대응 범위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국방부장관까지 보고가 되어야 가능했다. 현지 함정은 전대장에게 전대장은 함대사령부에 함대사령부는 작전사령부를 거쳐 합참의장과 국방부장관에게 보고되었다. 자칫 잘못하면 큰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기는 하지만 분초를 다투는 전투현장에서는 한국군의 큰 약점이었다. 현장 지휘관의 재량이 적은 지휘 체계는 군 수뇌부가 유고 상태가 되거나 통신이 두절되면 뇌를 잃어버린 생명체나 마찬가지의 결과를 초래했다. 해군과 공군의 합동작전도 유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각각의 작전 사령부에서 별도로 작전을 실행하고 전상자가 발생했을 겨우 신속한 구조도 쉽지 않았다. 한국군은 외적으로는 강군이었지만 내적으로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북한의 전면적인 무력 도발이 확실하자 한미연합사령부는 비상 경계령을 발동한데 이어 데프콘 2를 발령했다. 평소 한미연합군은 데프콘 4를 유지하고 있었다. 데프콘 3이 발령되면 전시로 전환되어 한국군의 작전권이 미군에게 넘어가게 되고 그보다 한 단계 위인 데프콘 2는 군인들이 전쟁준비 상태에 들어가 실탄이 지급되는 전쟁 직전 상황을 의미했다. 또한 경기 북부 지역의 주민들을 대피시켜야하는 위급 상황이었다. 한미연합군은 데프콘 1 발령을 검토했으나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줄 우려가 있어 일단 데프콘 2를 발령했지만 데프콘 1 발령은 시간문제였다. 이와 동시에 한미연합군의 공군기지가 제일 먼저 전쟁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다. 공군기지의 기동타격대가 이륙하고 영외에 머물고 있던 부대원들이 신속히 기지로 들어왔다. 해군과 육군도 상황이 마찬가지였다. 이미 15분전부터 비상경계령이 발동되었기에 외출과 외박을 나갔던 장병들이 복귀하던 중이었고 육군은 포병 화력을 작전 지역으로 전개하고 있었다. 한국군이 뒤늦게 전시태세를 준비하고 있을 동안 북한의 야포가 포격을 시작했다. 북한 야포의 대부분은 전방의 한국군 주요 거점을 향해 발포되었다. 한국군의 포병부대와 기갑부대, 탄약고와 지휘부, 유류 저장고와 막사를 향해 장거리 포격이 이루어질 동안 철책선 인근의 한국군 경계 부대를 향해서 단거리 직사화기와 박격포가 집중되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을 당한 한국군 진영은 아비규환 상태가 되었다. 한국군은 최전방 인근에도 지하 벙커가 아닌 지상 구조물이 많았다. 이는 평상시에도 지하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장병의 근무 여건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지상 근무가 필수적이었고 이런 점에서 기습 공격을 당하게 되면 큰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북한군의 포탄이 막사에 정확히 떨어지자 막사 내에서 휴식을 하고 있던 병사들이 다급하게 대피하기 시작했다. 일부 병사들은 야간 근무 후 취침 중에 공격을 받아 미처 피하지 못한 채 막사 안에서 전사했다. 한국군 막사가 위치해 있던 수천 곳이 이런 식으로 피격 받았고 포격 10분 만에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기상! 지금 즉시 뛰어나가 1분 내로 진지로 간다. 빨리 빨리 서둘러.”
“전쟁 났습니까?”
“보면 몰라? 묻지 말고 빨리 나가!”
살아남은 병사들은 행보관의 지시에 따라 완전군장을 한 채 전시 집결지로 이동을 서둘렀고 사단 예하 포병은 북한 진지를 향해 대응 포격을 개시했다. 군단 예하의 각 포병 여단은 적의 포병 거점을 향해 대응탄을 날리기 시작하면서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 공군은 지상전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군의 기동 타격대는 북한 공군의 도발을 경계하고 있었고 본격적인 전투는 후속 공군기의 지원이 있어야 가능했다. 그전까지는 전방의 육군이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줘야 했다. 남한이 제일 두려워했던 기습 무기는 장거리 투사가 가능한 240밀리 방사포와 170밀리 자행포였다. 이들 야포의 사정거리는 약 40킬로미터에서 60킬로미터까지로 다양했다. 휴전선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약 40여 킬로미터로 서울은 이들 야포의 사정거리 내에 있었다. 서울을 겨냥한 약 300문의 장거리 야포에서 발사된 수백 발의 포탄이 40도의 고각을 이루어 상공을 날았다. 이들 포탄은 정해진 타격지점 없이 무차별적으로 난사되어 그 대부분이 서울 서북부 인접 지역에 낙하되었다. 북한이 기습적으로 포를 쏠 동안 서울과 경기 북부의 주민들은 일요일 오전의 한가로움 속에 있었다. 사람들은 일요일을 맞아 여가 생활을 즐기거나 종교 활동을 하고 있었고 일부는 집에서 휴식 중이었다.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서해의 교전 사실을 들은 주민들도 더러 있었지만 이들은 북한이 본토를 향해 포를 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포탄이 곳곳에 내려치면서 짧은 순간에 하늘이 터질 듯한 큰 폭발음과 함께 파편과 화염으로 뒤덮였다. 직격탄을 맞은 건물은 부서졌고 화염은 큰불을 내면서 2차 피해를 일으켰다. 놀란 주민들이 뛰쳐나와 대피소를 찾을 동안 2차 포격이 이루어졌다. 다시 수백 발의 포탄이 낙하하면서 엄청난 폭음과 함께 포탄이 터지고 화염이 크게 일었다. 포탄은 사람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병원, 마트, 공원, 도로, 주택가, 관공서, 비행장 등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떨어졌고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목숨을 건졌지만 일부는 신체를 손상당해 꼼짝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살아남거나 부상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다행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바로 옆에서 사람이 죽거나 비명을 지르는 현장을 본 사람들은 마치 지옥에 있는 것과 같은 공포를 느껴야 했고 이런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포격 소리가 들릴 때마다 가슴을 졸여야 했다. 북한군의 공습을 알리는 경보 사이렌이 뒤늦게 울리자 차를 버린 채 대피하는 운전자로 인해 도로가 순식간에 마비되었고 지하철역은 대피소로 피난하는 사람들이 일시에 몰렸다. 지하도로 먼저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서로 밀치고 잡아당기자 서로 발이 걸리고 몸이 넘어지면서 인파에 의해 깔려 죽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런 모습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고 생지옥의 현장이었다. 북한군이 서울과 수도권을 향해 무차별 포격을 감행했을 때는 이미 이러한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자비나 인정이란 있을 수 없었다. 북한 지도부는 남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죽여야 할 대상이었고 이를 통해 남한에게 철저하게 복수를 하는 것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비명을 지르고 건물이 불타올라 시내가 화염으로 뒤덮일 동안에도 북한의 포격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한국 공군의 기동 타격대가 북한의 장사정포 기지를 향해 이동하는 시간은 10분이 필요했고 이 동안 북한군은 마음껏 포격을 했다. 이렇게 북한군의 장사정포는 10분 동안 수 천 발의 포격을 한 후 갱도내로 사라져 버렸다.
한국군 전투기가 서울 상공에 왔을 때는 타격 목표물이 사라졌고 대신 북한 전투기가 전방 상공에 나타났다. 북한 전투기의 주력은 소련제 미그기로 대부분 구세대 전투기였다. 적을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의 성능은 크게 떨어졌고 무장력도 빈약했다. 더욱이 제대로 훈련도 하지 못해 조종사의 능력도 떨어졌다. 공중전에서의 우열은 레이더와 공대공 미사일의 성능에 크게 좌우되었다. 근접전이 일어나게 되면 조종사의 개인 전투 능력에 크게 좌우되겠지만 레이더와 공대공 미사일의 발전으로 근접전이 일어날 확률은 많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북한 공군은 한미연합군의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저공으로 비행하면서 남하했다. 그러나 이는 한국 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이지스함과 지상에 촘촘하게 설치된 한국 방공망의 레이더를 피할 수 없었다. 한국 공군의 KF16 전투기 편대를 향해 다가온 북한 전투기는 미그 23기 네 대였다. 이는 구세대 전투기지만 실질적으로 북한 공군의 주력이었다. 미그 23이 장착한 공대공 미사일은 AA7로 항속 거리는 KF16이 탑재하고 있는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암람과 유사했다. 그러나 성능에서는 차이가 많이 났다. 한국 공군의 암람 미사일은 능동형 추적 장치가 있어 발사한 후 다른 작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미그 23은 그럴 수 없었다. 또한 레이더의 탐지거리는 KF16이 170킬로미터 이상인데 비해 미그 23의 레이더는 그 반인 80킬로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러한 차이는 공중전에서는 천지차이였다. 둘 사이에 공중전이 일어나면 미그기는 한국 공군기를 발견도 못하고 일방적인 공격을 당해야 했다. KF16 전투기 편대는 미그기를 100킬로미터 전방에서부터 파악하여 미그기와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미그기는 열악한 레이더 성능으로 인해 KF16 전투기의 행방도 알지 못한 상태였다. KF16 전투기는 미그기를 충분히 요격할 수 있었지만 상공에서 상부의 공격 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