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사초등학교 12동우회
6월 20일 초등학교 동기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은 부부 동반이다.
과거에는 참여 인원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 회를 떠난 회원들이 많아졌다. 현재 회에 참여 인원은 여섯 쌍에 불과하다. 그 중 한 회원은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살고 있다.
홀로된 그 친구가 어제 저녁에 심중의 이야기를 했다.
부부가 함께 지낼 때는 아내의 자리가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는데 막상 혼자서 1년을 지내보니 그 빈자리가 너무 크더란다.
집에서도 말할 대상이 없다 보니 자연적으로 텔레비전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데 텔레비전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을 뿐 자기가 말할 기회는 없다고 했다. 교감이 없으니 외로움이 가중되더라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의사를 주고받으면서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고, 시선을 주고받으면서 영감을 공유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스스로 존재의 가치와 자존감을 갖게 된다. 이런 교감의 중심이 부부인 것이다.
부부가 살다가 한 쪽을 잃는다는 것은 신발 두 짝 중에서 한 짝을 잃는 것이나, 젓가락 두 짝 중에서 한 짝을 잃는 것이나, 자전거 두 바퀴 중에서 하나가 펑크 난 것에 비유될 만큼 상실감이 크다.
그런 상실감에 젖은 사람의 말에는 절절한 진심이 깃들어 있고, 작은 감정의 변화에도 자신이 체감하는 강도는 곱절로 커지는 법이다.
부부의 존재가 살아 있을 때는 하찮게 여겨지지만 잃었을 때는 그 누구도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자리가 분명하다.
사람의 뇌에는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 법칙이 존재한다.
아무리 깊었던 인연도 끈이 끊어지고 난 후 시간이 흐르면 절실했던 감정도 서서히 옅게 만든다.
이른바 싱그러웠던 첫 사랑도, 무르익었던 청춘도, 자녀를 기를 때 쏟았던 정열도, 내상을 입을 만큼 다투었던 의견차도, 영원할 것만 같았던 푸르렀던 꿈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지게 된다.
망각은 남은자의 재생을 위한 명약인 셈이다.
과거에 집착하다 보면 현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회의 중간에 혼자 된 친구가 나에게 이야기하기를 ‘자기 아내가 생존해 있을 때 자기 부부와 우리 내외가 함께 자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는데 그것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내의 유언이 되어 버린 그 약속을 지금 실행하려 하니 우리 내외가 시간을 내 주었으면 좋겠다. 고 했다.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사람이 산다는 것 별것 아니다.
어제 만난 친구들 역시 노화현상이 뚜렷하다.
청력이 약해진 친구, 시력이 약해진 친구, 보행이 불편한 친구, 건강을 해친 친구 등 다양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 다.
사람의 일생중에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여기의 현 시점이다.
과거 화려했음도, 영광도, 부(富)도 서산대사의 게송(偈頌)을 인용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서산대사의 게송(偈頌)을 인용 소개하는 것으로 동병상련의 마음을 위무해 보고 싶다.
千計萬思量(천계만사량) :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紅爐一點雪(홍로일점설) : 붉은 화로 속에 떨어진 한 점의 눈송이로다
泥牛水上行(니우수상행) : 진흙 소가 물 위를 쟁기질 하니
大地虛空烈(대지허공열) : 대지는 허공중으로 갈라지도다.
生從何處來(생종하처래) : 생은 어디에서 왔으며
死向何處去(사향하처거) :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가?
生也一片浮雲起(새야일편부운기) : 생은 한 조각 뜬 구름 일어남이요.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의 없어짐이다.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 뜬 구름은 원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 나고 죽은 것 또한 이와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