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대게 다리를 먹기 위해서는 마디 윗부분을 잘 꺾고, 안에 차 있는 살을 조심조심 빼내야 한다. 어려움보다 귀찮음이 더 크게 느껴지는 작업이지만, 맛있는 살을 버리는 부분 없이 먹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처음으로 본 것은 자동차 안에서였다.
나는 아빠의 손에 들린 대게 다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차창 밖에는 눈송이가 조금씩 떨어져 보닛 위에 톡톡 내려앉고 있었다. 차 안은 히터가 내뿜는 열기로 따듯했고, 모두 점퍼를 벗어두거나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아빠는 몇 차례고 몸통에 붙은 다리를 떼어 윗부분의 껍데기를 벗겨낸 후에 조수석에 앉은 엄마에게 건네주었고, 엄마는 팔을 뻗어 뒷좌석에 앉은 나와 동생들에게 다리째 혹은 살만 떼어 입어 넣어주기를 반복했다. 셋이서 손에 꽉 차는 다리 하나씩을 움켜쥐고 먹고 있으면 아빠도 엄마도 그제야 스티로폼 접시 위에 있는 대게를 발라 먹었다. 뒷좌석 바닥에는 넓게 펼쳐둔 신문지 위로 게 껍데기가 쌓여 가고 있었다.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냄새 속에서 우리는 돌아가며 “맛있네”, “맛있다!”, “맛있어?”라고 말하기 바빴다. 말 사이사이로 차분한 DJ의 목소리와 잘 모르는 음악들, 날씨와 교통 상황에 대한 안내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나는 밖에 쌓이는 눈송이처럼 뽀얀 살을 삼키며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와 아빠를 쳐다보고, 내 옷에 대게 살 부스러기를 흘리는 여동생과 인형처럼 오도카니 앉아 입만 오물거리는 남동생을 보았다. 차 밖에는 멀리서 겨울바람에 일렁이는 바다가 있었고, 차 안에는 우리 다섯 명이 함께 있었다. 난생처음 영덕 대게를 먹었던 순간은 여덟 살 겨울, 자동차 안에서였다.
그때는 울산에 계신 친척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커다란 전국 지도를 펴 들고 서울에서 울산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보던 아빠의 머릿속에는 한창 제철이었던 대게가 떠올랐을 것이다.
아빠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대게는 물론이고 새우,굴, 조개, 해삼, 멍게, 산낙지 등등 다양한 해산물을 사랑해 마지 않았다. 물론 그런 사실을 안 것은 고향에서 상경해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스스로 음식을 사 먹기 시작하면서였다고 했다. 먹고 싶은 걸 자주 참아야 했던 어린 시절 때문에 아빠는 “내 자식들만큼은 먹는 일로 서럽게 하지 않겠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장난감이 갖고 싶다는 말은 흘려들어도 뭔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는 법 없이 최대한 사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 세 남매는 그런 아빠의 신념 아래 다양한 음식을 먹고 자랐다. 크게 가리는 것 없이 굶주린 아기 새들처럼 바다 냄새 가득한 해산물도 잘 받아먹던 자식들을 봐왔던 아빠는 그때도 길을 돌아가는 것을 감수하고 포구가 가까운 영덕의 시장에 들러 바로 쪄낸 대게를 샀던 것이다.
대게 향으로 꽉 차 있던 은색 자동차 안에서의 기억은 여러 가지가 조화롭게 묶여 있다. 촉촉했던 촉감과 오래 씹으면 달기까지 한 대게의 맛, 맛있냐는 물음과 감탄을 주고받으며 배어 나왔던 웃음, 찬 겨울바람을 막아주는 히터의 온기, 통통하고 자그맣던 나와 동생들의 손 그리고 주름살 하나 없이 매끈했던 엄마 아빠의 옆얼굴. 자동차의 이름과도 같았던 그 겨울의 짧은 소나타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따금씩 재생되곤 한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는 봄에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주꾸미 볶음을, 여름에 탱글탱글하게 삶아낸 소라를 떠올리고 가을에 전어의 차진 살과 꼬득꼬득 씹히는 뼈의맛을 찾는다. 광어도 연어도 담백하고 녹진한 맛을 좋아해 때 없이 찾지만 그토록 풍성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겨울의 대게뿐이다.
은색 자동차는 이제 기억 속에만 존재하고 부모님과 우리 남매들에게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천천히 오는 가을마저 지나고 나면 영덕에서 올라온 대게를 구해볼 심산이다. 집에 온 가족을 모아놓고 진한 냄새가 퍼지도록 대게를 삶아낼 테다. 스티로폼 접시 대신 커다란 쟁반과 접시에 대게를 놓고, 차 안에서처럼 각자의 자리에 옹기종기 앉는 대신에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조금은 더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가위도 하나 가져다 놓고 말이다. 그래도 먹을 때는 아빠에게 다리 하나 정도는 떼어서 발라달라고 해볼까 싶다. 그 겨울의 풍경을 여전히 기억한다는 핑계로, 내가 사랑하는 우리 가족만의 겨울 대게 소나타가 있다는 핑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