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전에 구입해서 나의 보물 3호가 된 야나시가와 알토 색소폰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의 문제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드디어 지난 월요일부터 우리 동네에서도 심각한 사태로 전환되었다. 따라서 일제히 월요일부터 거의 대부분의 행사, 모임, 공연, 미사나 예배, 심지어는 장례식, 결혼식도 취소되고, 당장 딸 아들 모두 재택 근무를 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도 수업을 중단하고, 앞으로 3개월간 남은 세번의 공연이 취소되는 바람에 합창연습도 참가하지 않게 되었고, 일주일에 4번 성당과 양노원 성가 봉사도 가지 않게 되면서, 그야말로 실직적인 자가격리 내지는 self-quarantine 에 들어갔다. 4-5년 전에 색칠하기가 유행하면서 사 두었던 100여개의 색연필과 스케치 북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실로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장기 휴직 내지는 휴가가 갑자기 내게 생겼다. 10대부터 거의 50년간 하루의 5분도 대충 보내지 않던 생활을 해 오던 터라 이왕에 생긴 이 선물같은 시간의 대부분을 나를 위해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초반에 엄습했던 불안과 걱정에서 조금씩 해방되기 시작했고, 모처럼 선물처럼 갑자기 생긴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행복한 궁리에 들어갔다. 나의 보물 2호 셀머 리사이틀 시리즈 클라리넷 4년 전부터 4개의 성당에 성가 봉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자연히 노래와 피아노, 오르갠은 거의 매일 연습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노래 다음으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악기인 클라리넷과 그리고 섹소폰과 접하는 시간은 따라서 줄게 되어서, 클라리넷과 섹소폰은 레슨을 할 때 외에는, 주로 케이스 안에서 편히 쉬고 있을 때가 많게 되었다. 그래서 바빠서 늘 생각만 하다가 뒷전으로 밀려났던 클라리넷부터 꺼내서 정성스럽게 나무 파트를 오일로 닦아주고, mouthpieces 도 물로 깨끗이 씻어서 그동안 연습하려고 스탠드에서 놓아 두었던 악보에서 먼지를 털고 큰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쉬자, 클라리넷의 청아한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해 준다. 왜 진작 이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들 정도다. 우리동네의 겨울은 추울 뿐 아니라 기간도 길다보니, 자연히 집 밖에서 운동을 하기가 쉽지 않아서, 운동부족이 늘 맘에 걸렸는데, 집 밖은 지난 주에 며칠간에 걸쳐서 내린 눈으로 여전히 덮여 있었지만 그나마 기온이 영하 8도 정도라서 쌀쌀하지 않은 편이라서 아무도 없는 조용한 동네길을 홀로 산책길에 나섰다. 그동안 집에만 박혀있다가, 차겁지만 청정한 공기를 들여 마시기도 하고, 눈부신 햇살을 쪼일 수 있어서, 아주 상쾌 그 자체였다. 뉴질랜드 여행 중에 날씬해졌던(?) 몸이 조금씩 두리뭉실해지고 무겁던 차에 집만 나가면, 이렇게 아름다운 숲과 산책길이 널려 있는 것을 감사하면서 자주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일주일에 한번 꼴로 들리는 서점에 가게 되면, 그러지 말아야하는 것을 머리로는 너무도 잘 아는데도 불구하고, 읽고 싶은 책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사게 되는 고약한 버릇 탓에 소파 테이블 위에나 책꽂이에 점점 높게 쌓여 가는 책도 이 기회에 현실적으로 한 두권이라도 읽어 볼 참이다. 그러다가 눈이 피곤하면, 색연필을 꺼내서 멍때리기에 가장 쉽고 좋은 색칠하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이유없이 행복해진다. 바흐의 영국 조곡을 연습하는 20년 된 나의 보물 1호 피아노 바흐 작곡의 프랑스 조곡 6 작품은 그동안 다 연습을 해 보았지만, 영국 조곡은 일단 곡의 길이가 길어서, 엄두를 내지 않다가 이번에 조곡 3번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해 온 오래된 나의 파트너 뜨개질 뜨개질은 길고 추운 겨울을 날 때나, 일 중간 중간에 종종 생기는 짜투리 시간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참 유익하고 실용적인 취미생활이자 창작활동인데, 일찌감치 손재주가 좋은 이모한테 제대로 잘 배워서 내 자신은 물론 뜨개질 소품을 받은 많은 이들을 지금까지 행복하게 해 주고 있다. 스웨터를 완성한 후,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새 패턴으로 숄을 하나 완성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서 피아노 연습과 클라리넷 연습 사이에 실로 오랫만에 티비를 보면서 지금 세개째를 뜨고 있는 중이다. Netflix 에 오른 영상물을 'binge-watching' 하기 우리집은 수년 전부터 넷플릭스를 깔아 두었지만, 정작, 나는 1년에 너댓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 고작이다. 그것도 딸들이 휴가때에 집에 오면 같이 앉아서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휴가중에 매스컴에서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평을 받은 작품들을 맘잡고 팝콘도 먹고, 밤 늦도록 뜨게질도 하면서 죄의식이나 조바심없이 남들처럼 느긋하게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나도 유행을 따라서 binge-watching 에 들어갔다. (Note: binge-watching은 연속극처럼 계속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전체를 쉬지않고 보는 행위) 그리고, 어제 합창단 지휘자가 연습은 물론이고 올 시즌 남은 3번의 공연이 공식적으로 취소가 되었음을 알리면서 이 어려운 난국에 잘 맞는 좋은 글을 합창단 전원에서 보내주셨다.
이 글은 요즘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등 다양한 소샬미디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글로 코로나 바이러스 pandemic 이 가운데에 있는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에게 큰 희망과 치유가 되어주고 있다. 코로나의 위력에서 벗어나는 데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지만, 블친님들도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바흐의 영국조곡과 칼 마리아 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도 감상하시면서... Bach - English Suites (Andras Schiff) Weber: Clarinet Concerto No.1 / Steffens Maazel BRSO |
첫댓글 헬렌님 클라리넷과 섹스폰은 사진만 봐도
정말 아주 좋은 악기들인것 같습니다
재주가 많으시고 부지런 하시니
정말 시간을 알차게 보내시네요
우리집에도
큰아들이 쓰던 클라리넷,
그리고 작은 아들이 불던 섹스폰이 있지만
저렇게 좋은 것은 아니지요.
여기 음악은 하고싶은데 돈이 없는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위해 기부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키티오미라의 글은
요즈음 세태에 꼭 맞는 좋은 글입니다
모두 집에 머물면서
자기를 되돌아 보고 각자 치유하고
다시 세상에 나와서
세상을 힐링하면 좋겠다
꿈꾸어 봅니다
방송에서 기타도 가르쳐주고 하던데 워낙 음악엔 젬병이다보니 배워 볼 엄두를 못내네요
어쩌면 우리를 되돌아볼 기회겠지요
암튼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요즘은 없어요
평소 헬렌님의 글을 읽을때면 헬렌님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36시간인것 같았는데,
5분이라도 가만있지 않으셨다니, 제 게으럼이 부끄럽습니다.
악기를 한개도 아닌 3개씩이나, 재주와 열정에 고개숙입니다.
집콕으로 힘들어하는분들이 많은데, 헬렌님에겐 선물같은 시간이겠어요.
휴식도 하시고, 좋은 시간 되시길!!!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처럼
사람들과 지구가 치유가 되고,
또 새로운 방법으로 사는것도 발견하고,
공존하게 되길 희망해봅니다.
인긴은 사회작 동물이라 모두 서로 엮여서 사는것인데
이렇게 갑자기 속수 무책으로 생명을 앗아가니
정말 패닉입니다
그런 혼돈을 슬기롭게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 충전과 힐링의 시간을 보내시니 본받고 싶습니다
어쩌면 악기를 3가지 씩이나 다루고 성당반주를 여러군데 봉사하니 달인급 입니다
지구를 치유해주고있다는 싯귀에 공감합니다
저도 실은 예전 보다 더 평화스런 시간으로 행복을 찾으려 노력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