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내가 나비잡기를 시작한 것은 여덟 살인가 아홉 살 때의 일이다. 처음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는데, 열 살쯤 된 해부터 나는 완전히 이 유희에 취미가 생겨서, 이 일 때문에 다른 일은 전혀 돌보지 않았다. 나는 나비를 잡을 때면 마치 숨이 막히는 것과도 같은 기쁨을 느꼈다.
부모님께서는 훌륭한 도구를 하나도 마련해 주시지 않아서 나는 내가 잡은 나비들을 낡은 종이상자에다 간추려 두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들은 다른 아이들의 사치스러운 물건들에 비하면 아주 낡은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내가 잡은 나비들을 누이들에게만 보여 주었다.
어느 날, 나는 우리고장에서 보기 드문 푸른 날개의 나비를 잡았었다. 나는 하도 마음이 흡족해서 꼭 이웃집 아이에게만은 보여주리라고 생각했다. 이웃집 아이란, 뜰 건너편 집에 사는 교원의 아들이다. 이 소년은 흠을 잡을 수 없을 만큼 깜찍한 녀석 이었다. 그의 수집물은 대단하지 않았으나, 그에게는 찢긴 헌 나비의 날개를 풀로 이어 맞추는 어려운 기술이 있었다. 나의 나비를 본 교원의 아들은 이 나비가 신기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날개를 붙인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여 나의 기분은 상하게 한다.
이때가 지나서 나는 꽤 머리가 굵은 소년이 되었는데, 그때도 나는 나비 잡기에 대한 열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때, 이웃집 에미일이 점박이를 번데기에서 걸러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름을 알면서도 아직 잡아보지 못한 것 중에서 나는 점박이를 어느 것 보다도 가지고 싶어 하였다. 에미일이 이 이상한 나비를 가졌다는 소문을 들고부터 나의 흥분은 절정에 이르러, 그것을 꼭 한번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식사를 마친 후, 교원의 아들인 에미일의 4층 방으로 올라갔다. 에미일의 방으로 가는 도중 나는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다. 나는 에미일의 방에서 견딜 수 없는 욕망에 난생 처음 도둑질을 하였다.
나비를 오른손에 감추고 층층대를 내려섰을 때, 나는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이 순간 나는 내가 도둑질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능적으로 나비를 감추었던 손을 그대로 호주머니 속에 우겨 박았다. 나는 이 나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그것을 에미일의 방에 갖다 놓았지만, 이미 나비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부서져 있었다.
슬픈 생각으로 나는 집에 돌아와, 하루 종일 좁은 뜰 안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에게 모든 일을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당장 에미일에게 가서 용서를 빌 것을 당부했다. 나는 에미일을 찾아가 점박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의 이야기를 들은 에미일은 격분한다거나, 큰소리로 꾸짖는 대신에 ‘말하자면 너는 그런 자식 이란 말이지’라는 한마디를 한다. 나는 그에게 내 장난감을 모두 주겠다고 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나를 비웃는 눈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나는 한없이 나를 경멸하고 있는 에미일의 눈을 뒤로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커다란 종이상자를 찾아가지고 와서 침대위에 올려놓고, 어둠 속에서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그 속에 든 나비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손끝으로 비벼서 못쓰게 가루를 내어 버렸다.
♣느낀점
헤르만 헤세의 ‘나비’는 유년기의 소년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한 유년기 소년이 나비잡기에 몰두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도둑질까지 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이 되고 있는 ‘나비’는 단순히 아이가 바라는 대상일수도 있지만, 유년기 어린아이가 가지는 자연 친화적인 성격을 나다낸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세상이라는 궁극적인 실체를 알지 못하는 아이가 집착하는 하나의 대상물이다.
‘나’는 유년기에서부터 시작된 나비잡기라는 구체적인 행위에서 벗어나야한다. 왜냐하면 유아기적인 자기집착에 몰두해 있는 어린아이들은 사회라는 큰 pt상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그것에 도피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잇게 때문이다. 그래서 유아기적인 유희를 종결시키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으로 에미일이 ‘나’에세 보내는 냉소는 어떤 허물도 용납하지 않는 사회의 한 모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나’는 나비잡기라는 유아기 적인 집착에서 벗어나 좀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즉, 유년기에 집착했던 나비잡기를 벗어남으로써 그만큼 ‘나’는 성숙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