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10)
은성아, 주일 오후에 삭개오의 구원을 배우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을 만나려면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는데 삭개오는 자신이 세리장이요, 부자라는 자기의 신분이나, ‘죄인’이라고 비난하는 다른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뛰어넘어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것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그동안의 공생애를 마치시고 구원 사역을 완성하실 때가 찼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이었다. 물론 사흗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영원히 살아계실 것이지만, 육신으로는 사람들을 떠나실 것이었으니 삭개오로서는 지금이 예수님을 만나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께서 쳐다 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하시는 축복을 받았다. 그가 누리는 기쁨과 예수님에 대한 영접, 그리고 자기의 것을 나눠주는 회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의 증거를 드러내었다. 그가 이전에는 잃어버린 자였지만 이제는 구원을 받은 자가 되었으니 앞으로도 변함없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은성아,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하늘 보좌를 떠나 땅으로 오셨을 때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와 예물을 드리고 경배한 것을 알고 있지? 학자들은 그들이 멀리 떨어진 바벨론 지역에서 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먼 길을 오는 동안 어려움이 아주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늘에 별을 보여주심으로 그들을 인도해 주셨지. 그런데 그들은 아기 예수님을 만나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고 난 후에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후에 그들이 다시 예수님을 찾아왔을까? 아마도 그럴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초대교회가 전도를 계속할 때에 그들이 예수님을 믿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전에 죽었을 수도 있지 않겠니? 그렇다고 하면 그들은 평생 이 한 번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그 먼 길을 찾아와서 예배하고 죽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마 2:9-12)
은성아,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거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시간이 항상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그것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기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눅 2:25-35)과 안나(눅 2:26-38)는 다음에도 자주 그 예수님을 만났을까 궁금하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은 애굽으로 피난을 가셔야 했고, 애굽에서 돌아온 후에는 갈릴리로 가셔서 사셔야 했지 않니?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에는 그들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이미 죽었을 것이 분명하다.
은성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는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불러 구원을 받았지? 이 시간이 지나면 그에게 다시는 기회가 없었는데 한 행악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심지어 처음에는 그도 예수님을 욕하였는데(막 15:32) 잠시 후에 그의 마음은 완전히 달라져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예수님께 자기를 기억해 주시기를 구하였다. 그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새 마음을 주신 것이 분명하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39-43)
은성아,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한 번의 예배를 드릴 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이것이 마지막 예배가 될지도 모른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을 때도 있다. 학생 때에는 공부할 것이 많아서 토요일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주일엔 늦잠을 자기도 하고, 예배에 참석은 했지만 졸음이나 피곤에 시달리기도 하며, 직장에서 일이 많은 경우엔 예배 시간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직장 일을 생각하기도 쉽다.
성경에서도 졸다가 떨어져 죽었던 청년 이야기가 있지 않니? 바울 사도가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도착한 것을 보면 바다를 지나오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래도 이레를 머물면서 열심히 가르치고 이튿날 떠나려는 계획이 있어서 힘든 상황임에도 밤중까지 가르치고 있는데 유두고는 창에 걸터 앉아 졸다가 결국 떨어져 죽었다. 물론 바울이 살려 내었지만 그는 바울의 중요한 가르침을 제대로 배울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행 20:6-12)
(어느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 목사님이 설교하시는데 앞자리에서 어느 집사님이 졸고 있기에 목사님이 그 옆에 앉은 집사님에게 “집사님, 저 집사님 좀 빨리 깨우세요.”라고 하니까, 그 집사님이 화를 내면서 “자기가 재워놓고 왜 나보고 깨우래?”라고 했다는 농담이 있더구나. 설교자가 졸음이 오지 않게 설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 그래도 예배 시간에 졸면 안 된다.)
초대교회를 생각해 보자. 많은 교인들이 노예 신분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더구나 박해를 받을 때는 그것이 죽고사는 문제였으며, 나중에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도 자기가 믿는 대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목숨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제대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배를 타고 바다에 가서 드리기도 하고, 깊은 산 속에 파놓은 굴속에 모여서 드리기도 했다. 박해가 없는 지금도 자기가 바르다고 믿는 교회에서 하루의 예배를 드리고자 3시간이나 4시간씩 운전하여 예배당을 찾아가는 분들도 있다. 모두가 한 번 드리는 예배가 너무나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은성아, 삭개오만 아니라 우리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하면서 예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 없다. 어떤 사고가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질병이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박해가 기다리고 있는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 예배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요, 잊어서는 안 될 기적의 연속이다. 오늘 하루도 예배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주일이면 오전과 오후의 예배마다, 그리고 수요일이나 금요일의 기도회마다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마음으로 예배하고 기도하기를 바란다. 이번 예배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와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예의를 갖추어서 예물도 드리고 경배도 드리자. 몸과 마음을 드리고 기도와 찬송과 경배를 드리자. 지금이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을 때요, 구원을 받아 기쁨을 누릴 때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