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3일 부활 제2주간 토요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21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의 16 제자들은 호수로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떠났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다.
18 그때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다.
19 그들이 배를 스물다섯이나 서른 스타디온쯤 저어 갔을 때,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2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1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주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계신 듯 그렇게 지내고 있는 데 세월은 빨리도 흘러 십일년이나 되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허전함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동안 쉬고 있던 매일 묵상을 다시 쓰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고통이 심하게 나를 괴롭히거나, 마음이 심하게 허전하거나, 외로움을 느끼면 그 것을 이겨내려고 무엇인가를 쓰거나 골몰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4월 15일이 되면 묵상을 다시 시작한지 만 11년이 되는 날입니다. 묵상은 버릇처럼 그렇게 시작합니다. 10-17년 전에 쓴 것을 읽어보고 그 묵상을 다시 묵상하기도 하고, 갑자기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는 것이 있으면 그 것을 따라서 묵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날의 복음을 읽고, 읽은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몇 시간씩 묵상하다보면 그날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매달립니다. 그렇게 묵상은 시작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합니다. 뭍에서 스물다섯이나 서른 스타디온 쯤 떨어진 거리이니 대략 5km 정도 떨어진 거리를 예수님께서는 호수 위를 걸어오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왜 예수님을 보고 두려워하였을까요? 다른 복음에서는 이 사건을 본 제자들의 반응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유령이다”(마태오 14, 26) 그리고 예수님이심을 알아 본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하고 물위를 걷다가 빠지는 사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마태오 14, 28-32) 또한 마르코 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두려워하여 소리를 질렀다.’(마르 6, 49)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두려워하였다.’라고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가 두려워한 것은 무엇인가 생각이 머물게 됩니다.
아직 동이 트기 전 새벽에 벌어진 일이니 유령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유령은 초자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지금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느님을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합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는 초자연적이시며 완전하시고 유일하신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초월적으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 때문에 초자연적이며 초월적인 존재이심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생각하는 유령이란 ‘죽은 사람의 혼령’이거나 ‘죽은 사람의 혼령이 생전의 모습으로 나타난 환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령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말하는 대로 물위를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유령만이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 많은 기적과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가르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빵으로 많은 사람을 먹게 하신 분이라는 그 기적을 방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령이라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유령이 아니면 물위를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고 알고 있는 제자들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 사도는 다른 측면에서 두려워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라기보다는 초자연적이며 초월적인 하느님이시라는 것이 정말 두려운 사실입니다. 우리가 그 두려움을 경외(敬畏 : 공경하면서 두려워함)함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은총을 받으면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은총을 받게 됩니다. 하느님을 섬기면서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느님을 흠숭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유령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와 태도는 마땅한 것입니다. 유령으로 알아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알아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느님이시지만 초월적으로 사람이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이 신비를 성령을 받은 다음에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순교 선열들은 ‘서양귀신’을 믿은 죄목으로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예수님을 ‘서양귀신’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일종의 유령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느님과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예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물위를 걷는 예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분은 자연적인 존재를 초월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초자연적이며 초월적인 그분은 하느님이실 수 밖에 없습니다. 유령은 실제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환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예수님이 물위를 걷는다는 것은 그것도 5km나 걸어서 호수를 횡단하신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경외(敬畏)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도 성령의 은총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태도와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다만 유령으로 알고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흠숭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경외하는 것입니다. 아주 친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연인을 대할 때 조심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았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6,1-7
1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4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5 이 말에 온 공동체가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테파노, 그리고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또 유다교로 개종한 안티오키아 출신 니콜라오스를 뽑아,
6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7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다.
축일4월 13일 성 마르티노 1세 (Martin I)
신분 : 교황, 순교자
활동 연도 : +655년
같은 이름 : 마르띠노, 마르띠누스, 마르티누스, 마틴, 말딩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의 토디(Todi)에서 태어난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로마로 온 뒤부터 그의 학덕과 신심이 널리 알려졌다. 부제 때 그는 교황 테오도루스 1세(Theodorus I)의 대사 자격으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갔었고, 649년 5월 14일 교황이 선종한 후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당시 교황 선출 후 황제에게 승인받던 관행을 지키지 않고 같은 해 7월 5일 교황좌에 올랐다. 그럼으로써 종교 문제에 관한 한 황제로부터 독립하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황제가 그를 합법적인 교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교황이 된 후 가장 먼저 단의설(單意說, monotheletismus) 이단에 대한 교회의 정통 교의를 확고히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즉위한 해에 바로 라테라노(Laterano)에서 교회회의를 소집해 단의설 이단을 단죄하고, 단의설 이단에 대한 언급을 금지하고 교회 문제에 직접 관여하고자 한 헤라클리우스 황제의 칙령 엑테시스(Ecthesis)와 콘스탄스 2세 황제의 칙령 티포스(Typos)를 거부했다. 아울러 교회회의를 통해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바오로(Paulus)와 그의 선임자들을 파문했다. 그리고 정통 교의를 담은 20개의 규정을 발표했다.
성 마르티누스 1세 교황의 결정은 아프리카와 영국 그리고 에스파냐의 주교들에게 지지를 받았지만, 테살로니카의 주교나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부터는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미 파문 받은 콘스탄티노플의 바오로 총대주교는 콘스탄스 2세 황제의 티포스 칙령에 서명하도록 더욱 강력한 정책을 사용할 것을 황제에게 요구했고, 황제 또한 자신의 종교 정책에 도전한다고 생각해 즉시 교황을 체포해 콘스탄티노플로 압송하도록 라벤나의 총독인 올림피우스(Olympius)를 파견했다. 하지만 올림피우스는 교황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황제의 명을 실행하지 않았다. 이에 황제는 신임 총독 테오도루스 칼리오파스(Theodorus Calliopas)를 군대와 함께 로마로 파견하며, 교황이 비합법적으로 선출되었기에 파문되어야 한다며 그를 콘스탄티노플로 압송해 오도록 했다.
당시 병중에 있던 교황은 라테라노 대성당에 은신했으나, 653년 6월 17일 총독과 군인들이 대성당까지 들어오자, 자신 때문에 로마의 대중들이 피해를 받을까 두려워 항거하지 않고 황제에게 간다고 선포했다. 그는 6월 19일 병든 고령의 몸을 이끌고 에게해를 출발해 길고도 고통스러운 여정을 시작했다. 낙소스(Naxos)에서 거의 1년 정도 머물렀지만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었다. 654년 9월 17일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한 그는 오랫동안 대중의 조롱과 모욕을 받았다. 감옥으로 이송된 후에도 거의 3개월 정도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며 잔혹한 대우를 받았다. 그해 12월 19일에는 정통 교의에 대한 심문이 아닌 올림피우스의 반역에 동조했다는 반역죄 혐의로 심문을 받고, 갖가지 정치적 죄목들을 부과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 후 감옥에서 다시 3개월 정도 지낸 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간청으로 황제에 의해 유배형을 받고 크림(Kyrm) 반도에 있는 케르소네수스(Chersonesus)로 유배를 떠났다.
유배지에 도착한 그는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잔혹한 대우와 고문의 후유증으로 655년 9월 16일 하느님의 품으로 떠났다. 그의 시신은 유배지 인근 성모 성당에 매장되었다가 후에 로마의 성 마르티노 성당(San Martino ai Monti)으로 이장해 모셨다. 로마 교회는 정통 교의를 지키다가 유배지에서 온갖 수난을 겪고 삶을 마감한 그를 순교자로서 공경했는데, 그는 교황 중에서 순교자로 공경 되는 마지막 인물이다. 그의 축일은 과거 11월 12일에 기념했으나, 1969년 이후 동방 교회와 함께 4월 13일에 기념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르티노 1세 (Martin I)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을 가득히 받으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