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12
5. 무녀도(김동리) 줄거리
우리집에 있는 무녀도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경주읍에서 십여 리 떨어진 집성촌 마을 의 퇴락한 집에 사는 모화는 무녀였다. 그녀는 세상 만물에 귀신이 들어앉아 있다고 믿었으며, 그녀의 생활은 굿이 그 전부였다. 그녀의 식구는 넷이었는데, 남편은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 해변가로 나가 혼자 해물 장수를 하고 있었고, 아들 욱이는 무당의 사생아로서 동 네에서 배겨나기가 힘겨워, 몇 해 전에 마을을 나가고 없었으므로, 집에는 그녀와 고명딸 낭이 의 두 모녀가 앙상히 살아가고 있었다. 낭이는 귀머거리 소녀였다. 그러나 그녀는 대단한 화제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아버지의 끔찍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방에 들어앉아 그림만 그렸다.
한편 모화는 매일 술만 마셨다. 그러나 그녀 역시 낭이를 소중히 했다. 모화는 낭이를 낳을 때의 태동으로 짐작해서 낭이를 용신(龍神- 용왕)의 딸의 화신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몇 해 두고 소식이 없던 욱이가 돌아왔다. 모화는 기뻐서 안고 울었다.그러나 이윽고 욱이가 예수교에 귀의했다는 것을 알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 때부터 그녀 는 욱이에게 귀신이 붙었다고 아들을 위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데, 욱이는 욱이대로 어 머니에게 마귀가 붙었다고 걱정했으며, 마태복음에 적혀 있듯이 낭이가 귀머거리가 된 것도 그 탓으로 알았다. 그는 하느님께 어머니와 누이를 구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잘 때도 언제나 성경을 가슴에 품고 잤다. 어떤 날 밤, 욱이는 잠결에 가슴이 허전함을 느꼈다. 깨어보니 성경이 없었다. 때마침 부엌에 불이 밝혀져 있는데, 어머니가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녀는 벌써 성경 첫 장을 불에 태우고 있었다. 그는 부리나케 뛰어 나가 성경을 뺏으려 했다. 그 때 머리 위로 식칼이 날았다. 그녀의 눈에는 욱이가 예수 귀신으로 보였다. 그는 기어코 세 곳 에 칼을 맞고 넘어졌다. 그녀는 그로부터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아들의 병을 간호했다. 그 사이 이 마을에도 교회가 서고 예수교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도들은 무속을 비방하며 돌아다녔다. 교회는 욱이의 청으로 목사가 주선해서 세웠던 것이다. 욱이는 기어코 소생하지 못 하고 말았다. 그녀는 예수 귀신이 욱이를 잡아갔다고 말했으며, 매일 같이 귀신 쫓는 주문을 외었다.
달포가 지났을 때, 그녀는 물에 빠져 죽은 젊은 여인의 혼백을 건지는 굿을 맡게 되었다. 그녀는 그날따라 어느 때보다 정숙했다. 외아들을 잃은데다가 예수교도로부터 박해까지 받고 사는 모화로는 느껴지지 않았다.그녀는 정말 예쁘게 보였다. 그녀는 신나게 굿을 했다. 그것은 그 녀는 이제 이 괴로운 세상을 떠나 용신에게 귀의할 결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여인의 혼백을 건지기 위해 여인이 죽은 못 속으로 넋대를 쥐고 하염없이 들어갔다. 그녀는 마침내 꼭지물이 가까운 곳까지 가서는 구슬픈 노래를 불렀다. 봄철에 꽃 피거든 낭이 더러 찾아 달라는 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는 기어코 물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모화가 죽은 지 열흘이 지난 어떤 날, 낭이의 아버지는 나귀 한 마리를 몰고 모화의 집으로 왔다. 그는 낭이를 나귀에 태우고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그들은 곳곳으로 귀한 집을 찾아다니며, 그녀는 무녀의 그림을 그려주고, 아버지는 낭이에 대한 내력을 애기하고는 댓가를 받으면서 정처없이 또 돌아다녔다.
핵심정리
배경 : 개화기의 경주읍 부근
구성 : 액자식 구성
성격 : 토속적. 신비적. 무속적
경향 : 순수 문학
제재 : 전통 신앙과 외래 종교의 대립
주제 : 토속 문화와 외래 문화
등장 인물
모화 :신령님만 믿고 의지하는 무녀. 기독교 수용(受容)을 반대하는 무속적, 신령적 세계관의 소유자.
욱이 : 모화의 외아들. 아비가 분명치 않은 사생아. 일찍이 모화가 절간으로 보냈으나 소식이 없다가 기독교인이 되어 돌아와 모화와 대립하는 인물.
낭이: 모화의 딸. 욱이와 의붓남매간이자 근친상간의 기미가 있는 인물. 그림 에 능하며 언어 장애자.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무당 또는 무속의 형이상학적인 세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나타냈는데. 토속 신앙과 외래 신앙을 받드는 두 인물의 충돌을 다루고 있다. 즉 개화기의 한 단면을 종교적인 대립 현상에서 찾아보려고 하였다.
무녀도의 신비스런 그림을 바깥 틀로 삼고 완벽한 액자소설 형태를 취하고 있는 작품은,내부 이야기에서, 핏줄로 이어진 모자(母子)가 그들이 받드는 신관(神觀)의 차이로 상호 거부적인 충돌의 관계에 놓인 것을 그리며, 핏줄로 이어진 인간으로서 서로가 어떤 내면적 갈등을 가지게 되는가를 다루었다.
서로가 각각 받드는 신의 존재를 배제했을 때에는 모화와 욱이는 아무런 갈등도 있을 수 없는 모자 관계의 자연스런 인간이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의 정신세계를 부정하고 자신의 세계로 상대를 끌여들이려 함으로써 대립의 상호 관계는 필연적으로 폭력과 피의 희생을 부른다.
상호를 배제하는 대결에서 아들의 피의 희생과 죽음까지 야기한 모화는, 마침내 예기소에 몸을 던진 어느 부잣집 며느리 김씨 부인의 초혼굿을 하는 중에 넋두리를 하면서 새로운 접신(接神)의 신열(神悅) 상태에 빠져 물에 잠겨 버린다. 모화의 죽음은 필연적이다. 아들 욱이의 죽음에 의해서, 모화의 영험을 믿었던 마을에도 크리스트교가 점점 전파되는 반면, 모화의 영험은 크리스트교부터의 비방과 구박으로 점차 소멸의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모화의 죽음은 패배의 비극 원리에 근거하고 있으며, 작자는 ‘미래적인 세계를 전제하는 새로운 신의 탄생’이라 했지만, 그런 조짐보다는 패배의 미학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재선의 <한국현대소설사>에서)
이 작품의 큰 줄거리를 이루는, 이름난 무당인 모화(毛火)와 기독교도가 된 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애증은 곧 토속적, 전래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의 충돌이자 갈등이다. 이러한 갈등은 어느 한 쪽의 승리나 패배로 해결될 수 없다. 이것은 가치의 우열에 의해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환경적 요구에 의해 생긴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은이는 액자 구성이라는 방법을 통해 1인칭 주인공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을 동시에 사용한다. 또, 건조체 문장으로 객관적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두 갈등의 중립에 선다. 이는 운명과 구원이란 문제는 인간의 의지로 좌우될 수 없다는 지은이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