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젓갈 외 2편
이명희
대명항 젓갈 판매소 씨앗젓갈 글자가 나를 끌어당겼다 어떤 씨앗으로 담은 젓갈일까 궁금해 사 온 씨앗젓갈 날치알 청어알 명태알, 호박씨 해바라기씨가 섞여 있다
바다에 알을 뿌리지 못하고 들로 나가 싹을 틔우지 못하고 짜디짠 젓갈이 되어 씨앗인 척 이름만 지닌 저것들 사람의 몸에 씨를 뿌린다
나는 이미 죽은 씨앗을 삼킨다 헤엄치지 못한 수많은 명태가 내 몸에서 아우성친다 한때 씨앗 창고였지만 씨앗을 뿌릴 수 없는 몸 그들이 힘을 주며 일으켜 세운다
저 죽은 씨앗을 먹고도 우리는 살아간다 씨앗은 죽어서도 산다
시차의 설계
전염병이 지닌 시차 무섭다 코로나 19가 만들어낸 거리 두기, 지구 반대편도 다른 나라도 아닌 한 공간에서 시차가 생겨났다 평상시 지켜온 시간 뒤뚱거린다
시차視差가 시차時差를 잘못 운행해 먼지 낀 시간, 교사는 의무를 가르치고 학생은 자유를 주장하고 나이 든 사람은 전통을 지키려 하고 젊은 사람은 개방을 외친다 아들은 햄버거를 좋아하고 나는 밥을 먹는다
본초자오선이 바로잡지 못한 자기 잣대로 재는 요란한 세상 시차 감정이 살아있어 기준을 정할 수 없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싣고 분열하는 시차 내 앞의 시간도 코로나 시차視差와 관계있을까 정신 가다듬어 침묵하며 별자리 설계를 한다 마음의 설계가 시차를 건축하고 있다
어떤 호사
정육점 골목 오십 대 초반의 건장한 사내가 큰 소 반 마리 들쳐 메고 있다 겨우 한 발 떼고 또 한 발 떼려 한다
어깨에 멘 반쪽 소 놓치지 않으려 목 부위에 박힌 갈고리 꽉 움켜쥐고 발을 옮기려 애를 쓴다 그 소, 한 몸이 서로 헤어지던 시간 떠올리며 버티는지 꼼짝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안타깝게 바라만 본다 뻘건 살점에 힘을 모으는 소, 기를 쓰며 세상 짐 완수하려는 사내 놓으면 안 되는 삶의 무게가 어깨 위에서 사투를 벌인다 살아간다는 애착이 끓는 시간 사내의 근육에 기합 넣는 소리 들린다
요양병원에 있는 늙으신 어머니의 숨소리, 아내의 도마 소리, 아이들의 조잘거림일까 사내는 반쪽 소의 등에 생을 밀착시킨다 평생 채찍을 맞으며 밭을 갈아야 할 운명의 소
죽어서야 사람에게 업혀 가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명희 시인
1959년 강원도 양구 출생 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기독음대 피아노과 졸업. 명지대 콘서바토리 수료 201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 동시 당선 동시집 『노래연습 꼬끼오!』 『웃는 샘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