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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4일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4-50
그때에 44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45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46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7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48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49 내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친히 나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50 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
잘 한 것이 있어야 내세울 것도 있는 법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참으로 표현할 수 없이 오묘한 존재입니다. 어느 때 갑자기 내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신비스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은 내가 하느님의 지으심으로 연유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 손톱과 발톱까지도, 내 머리카락과 모든 터럭 하나하나까지도 전부 지어내시고, 내 손가락도, 그 손가락 속에 지문까지도 다른 사람과 다르게 독특하고 유일하게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내가 지금 존재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인연으로 하여 내가 세상에 태어났고, 형제들과 더불어 세상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다시 내 아내와 아이들과 인연을 맺어 가족을 이루고, 교회 안에서 사람들과 형제자매들과 인연을 맺어 공동체를 이루며 살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공간도 허락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두뇌도 오묘하게 창조하시어 과학과 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우리가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성야를 보낼 때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합니다. 부활초에서 신자들이 촛불을 옮겨 붙입니다. 그때 한 신자가 촛불을 붙이면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이 비칠 뿐입니다. 어둠의 세력이 훨씬 큽니다. 그러나 신자 둘이 붙이고, 세 명이 불을 붙이고, 여러 명이 불을 붙이면 성당이 밝아집니다. 주님의 빛은 그렇게 세상을 밝히고, 세상의 어둠을 밀어내는 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음에 주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는 몇 명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온 세상 모든 곳에 복음이 선포되어 전 세계 신자들이 13억 명이 넘고 있습니다. 한국의 신자들도 2018년도 말 586만 6,519명으로 복음화율이 11.%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복음화율이 많이 낮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빛의 자녀가 되고, 빛의 하느님 품안에 있을 때까지 복음은 선포되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사랑해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고, 당신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당신의 품으로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 수고수난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셨다고 하셔도 할 말이 없는 것이 우리들의 신세입니다. 잘 한 것이 있어야 심판을 잘 받을 것입니다. 잘 한 것이 있어야 내 세울 것도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잘 한 것이 없는 내 삶을 주님 앞에서 낱낱이 셈을 바칠 것인데 어떻게 심판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그 심판을 모면할 좋은 방법을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 받을 수 있는 방안인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보면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예수님을 보고, 만지고, 영성체함으로써 예수님과 하나 됩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구원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입니다. 어떻게 믿느냐는 것은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열심히 믿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생명을 다하고 열정을 다해서 믿어야 하며 우리의 정성을 다해서 믿어야 할 뿐입니다. 심판은 그분의 몫입니다.
<나를 위하여 바르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2,24―13,5ㄱ
그 무렵 24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
25 바르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사명을 수행한 다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돌아갔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3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4 성령께서 파견하신 바르나바와 사울은 셀레우키아로 내려간 다음,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5 그리고 살라미스에 이르러 유다인들의 여러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축일4월 24일 성녀 마리아 (Mary)
신분 : 신약인물, 부인
활동 연도 : +1세기경
같은 이름 : 메리, 미르얌, 미리암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19,25)라고 전해주었다. 마르코 복음은 같은 장면에서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그분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다.”(15,40-41)라고 했다. 이어서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16,1-2)라고 했다. 그들이 무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입구를 막았던 돌은 굴려져 있었고, 무덤 안에는 하얗고 긴 겉옷을 입은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미 부활하셨다면서 전에 말씀하신 대로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라 알려주었다. 그들은 겁에 질려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고 마르코 복음은 전해주었다(16,3-8).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는 요한 복음이 언급한 클로파스(Clopas)의 아내 마리아(Maria)를 성모 마리아와 자매 사이로 해석했고, 작은 야고보와 요세는 예수님과 사촌 사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예수님의 12사도 중 한 명인 알패오(Alphaeus)의 아들 야고보(마태 10,3; 마르 3,18; 루카 6,15)와 ‘주님의 형제’ 야고보(마태 13,55; 마르 6,3; 갈라 1,19)를 같은 인물로 제시하면서 클로파스를 알패오(Alphaeus)와 동일시했다. 결국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는 알패오의 아내 마리아이자 예수님과 사촌지간인 사도 성 소 야고보(Jacobus, 5월 3일)의 어머니라고 설명하였다. 중세 전통은 성녀 마리아를 안식일 다음 날 빈 무덤에서 주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세 명의 거룩한 마리아’ 중 한 명으로 간주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9일 목록에서 클로파스의 아내 성녀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마리아의 자매로 소개하였다.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일부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4월 24일 목록에서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살로메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를 부활절 아침에 주님의 시신에 발라 드릴 향료를 갖고 무덤에 갔다가 처음으로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거룩한 여인들로 예루살렘에서 함께 기념하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축일4월 24일 성녀 살로메 (Salome)
신분 : 신약인물, 부인
활동 연도 : +1세기경
같은 이름 : 마리아, 메리, 미르얌, 미리암, 쌀로메
살로메는 평화를 뜻하는 히브리어 샬롬(shalom)에서 파생되어 유다인에게 흔한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 안에서 살로메라는 이름은 마르코 복음 안에서 두 번 등장한다.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그분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다.”(15,40-4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실 때 마지막까지 그 곁에서 지켜보았던 여인 중 한 명으로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 발라 드릴 향료를 사서 무덤으로 갔다.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16,1-2) 그들이 무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입구를 막았던 돌은 굴려져 있었고, 무덤 안에는 하얗고 긴 겉옷을 입은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미 부활하셨다면서 전에 말씀하신 대로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라 알려주었다. 그들은 겁에 질려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고 마르코 복음은 전해주었다(16,3-8).
마태오 복음은 십자가 아래에서 끝까지 주님을 지켜보았던 많은 여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들이라 소개하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라고 기록하였다(27,56). 두 복음서가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면, 살로메는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로 부르신 네 명의 어부에 속한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마태 4,21)의 어머니가 된다. 그렇게 보면 주님의 나라에서 자신의 두 아들을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혀 달라고 청했던 부인도 살로메이다(마태 20,20-21). 반면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19,25)라고 전해주었다. 그래서 살로메가 예수님의 이모라고 추론할 수도 있지만 “그 밖에도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마르 15,41)라는 말씀으로 미루어보아 확실하지는 않다. 루카 복음은 십자가의 죽음을 지켜본 여자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고(23,49), 주간 첫날 무덤을 찾은 이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다. 그들과 함께 있던 다른 여자들도 사도들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였다.”(24,10)라고 전해주었다.
신약성경 안에서 살로메의 신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전통적으로 마르코와 마태오 복음의 증언을 중심으로 살로메는 제베대오의 아내이며, 사도 성 대 야고보(Jacobus, 7월 25일)와 성 요한(Joannes, 12월 27일) 복음사가의 어머니로 보고 있다. 그리고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시중들던 충실한 여성 제자임이 분명하다. 중세의 전통에 따르면 성녀 살로메는 안식일 다음 날 빈 무덤에서 주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세 명의 거룩한 마리아’ 중 한 명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22일 목록에서 그녀의 이름을 ‘마리아 살로메’(Maria Salome)로 소개하며 주님의 장례를 지켜보았던 신심 깊은 여인으로 기록하였다.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일부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4월 24일 목록에서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살로메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를 부활절 아침에 주님의 시신에 발라 드릴 향료를 갖고 무덤에 갔다가 처음으로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거룩한 여인들로 예루살렘에서 함께 기념하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축일4월 24일 성 피델리스 (Fidelis)
신분 : 신부, 선교사, 순교자
활동 지역 : 지그마링엔(Sigmaringen)
활동 연도 : 1578-1622년
같은 이름 : 삐델리스
1578년 10월 독일 슈바벤(Schwaben) 지역의 지그마링엔에서 태어난 성 피델리스는 프라이부르크(Freiburg) 대학교를 마치고 법학박사 과정을 밝으면서 그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이때 그는 스스로 회개생활을 시작했는데, 고행자의 옷을 입고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1604년 그는 잠시 귀족 자제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봉직하다가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 지방의 아인지스하임(Ensisheim)에서 변호사로 개업하면서부터 그의 인격과 학문이 괄목할 정도로 발전하였고 또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후 그는 1612년에 사제품을 받고 그해 10월 4일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피델리스라는 수도명을 얻었다. 그는 사제 서품을 앞두고 자신의 유산을 반으로 나누어서 한 몫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른 한 몫은 신학교를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주교에게 증정하였다. 사제로 서품된 후 그는 주로 설교와 고해성사를 주는 임무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그의 인품과 재능을 익히 알고 있던 주교는 스위스 그리존(Grison) 지방의 츠빙글리파(Zwinglian)에게 파견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하도록 명하자, 그는 8명의 다른 카푸친 작은 형제회 회원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 지방 사람들은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하는데 그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고 반기를 들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는 며칠 밤을 기도하면서 지냈다. 1622년 2월 24일 그루쉬(Grusch)에서 열정적으로 설교한 뒤 한 동안 탈혼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 후 그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 수사들을 죽여라!'라는 외침을 무시하고 세비스(Sewis)로 돌아와 미사를 봉헌하다가 성난 군중들 앞에 당당히 나아가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다.”는 설교를 하고 군중들의 공격을 받아 1622년 4월 24일 순교하였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츠빙글리파 성직자들이 개종하였다. 그는 1729년 3월 12일 시복되었고, 1746년 6월 26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시성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리아 (Mary), 살로메 (Salome)자매들과 피델리스 (Fidelis)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