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잠화와 비비추 임 보
'옥잠화玉簪花'라고 생각하며 10년 넘게 그놈을 길렀는데 어느 날 공원을 산책하다가 화초들 곁에 꽂혀 있는 팻말을 보고 우리 집 뜰에 있는 그놈이 '옥잠화'가 아니라 '비비추'인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이름을 잘못 불러주다니……. 언젠가 며늘애가 그 꽃의 이름을 묻기에 '옥잠화'라고 자신 있게 일러준 적도 있는데, 이 무슨 낭패인가. 알고 봤더니 옥잠화와 비비추는 같은 백합과에 속한 화초이긴 하나 많이 다르다. 잎도 다르고 꽃도 다르다. 옥잠화의 잎은 넓고 둥근데 비비추의 것은 좁다란 타원형이다. 곧추 올라간 꽃대의 끝에 나팔 모양의 꽃이 잇달아 피어난 것은 비슷하지만 옥잠화의 꽃은 좀 두툼하고 옥처럼 흰데 비비추의 것은 가늘고 보랏빛이다. 말하자면 옥잠화는 귀족풍의 우아함이 있어 보이는데 비비추는 서민풍의 소박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름부터서가 옥잠화는 귀족의 냄새를 풍긴다. 옥같이 하얀 꽃숭어리들이 매달린 긴 꽃대가 귀부인의 머리에 꽂힌 우아한 옥비녀를 연상케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으리라. 그런데 비비추는 어떻게 해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무슨 멧새의 울음소리를 따온 것 같기도 하여 경박한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비비추를 옥잠으로 알다니……. 내 자신의 착오로 빚어진 일이건만 마치 누구에게 속은 것 같은 허전한 마음이 일었다. 부서를 조기로 여기고 사 먹은 사람이 뒤늦게야 알고서 느끼는 환멸감이 아마 이런 것일지 모른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어떠할까? 옥잠을 비비추로 알고 기르다가 나중에 옥잠인 것을 알게 되었다면? 이 경우는 실망보다 반가움이 더 클 것도 같다. 우연히 얻어 기른 똥개가 진돗개로 판명될 때 느끼는 기분처럼 말이다. 이름이 문제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이름이 붙는 건 아니다. 옥잠은 물에 가서 살면 부레옥잠이 되지만 비비추는 그만 익사하고 만다. 옥잠은 물에 몸을 띄울 부레를 만들어 내지만 비비추는 그런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
첫댓글 언듯 보면 분간이 안되는 것도 꽃이 피어야만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 보게되는 꽃입니다
살다보면 그런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