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골문과 금문의 艺자는, 한 사람이 양손으로 한그루의 나무묘목을 받쳐 들고 있는 형상으로 나무 아래에는 흙이 있고, 흙에 나무를 심는 의미를 표현한다. 그것의 본래의미는 나무를 심는 것으로, 본의로부터 파생되어 넓게는 재배하는 것을 가리킨다. 재배는 고대에 일종의 매우 중요한 생활기능 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술은 또한 모종의 특수한 재능 혹은 예술을 가리키는 말로 전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술, 공예 등이다.
文化
오늘날 학계에 고대사회문화와 종교 연구에 대한 주요한 논점은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해 보려는 경향으로 발전되어 가고 있다. 예술을 통해 당시의 종교의식을 고찰하고 이해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의 예술이란 종교발생의 원인이 된다는 직접적인 표현방식이기 때문이다.[1]
한 가지 덧붙일 것은 고대 중국인들이 자연물, 그 중에서도 나무를 신성시 여겨 종교적 행위를 하기도 했다. 이를 근거로 艺자의 고대문자에서 보여 지는 나무를 심는 행위가 예술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바로 예술과 종교의 연계성 때문이다.
중국의 유가는 도덕적 수양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유가의 美는 善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공자가 말한 ‘군자는 남의 미를 이루어 주지, 남의 악을 이루어주지 않는다.’ 라는 ‘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는 곧 선이 예술이고, 예술은 도덕적으로 사람과 사회를 바로잡는 도구로서 기능한다는 것이다.[2] 이를 통해 고대 중국인들이 美의 가치를 외적인 측면이 아니라 내적인면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측면으로는 나무를 심는 행위의 작위성이다. 고대인들에게 나무나, 꽃 등의 식물은 도구, 식량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즉 나무를 심거나 가꾸는 행위는 매우 작위적인 행동인 것이다. 생존이 최우선인 상황에서 일련의 행위들, 여기에서 예술과 같은 행위를 포함한 것들은 마치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이 작위적이므로, 이러한 행동이 후에 예술을 표현하는 글자가 되었다.
이동↑정애란(2001),「중국 고대 예술·종교·정치심태에 관한 연구동향」, 중국사학회 pp.263-264
이동↑김태완, 양회석(2008), 「한자, 한문 그리고 중국문화」, 전남대학교출판부pp.169-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