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암사동 유적 세계유산 등재기원 문학작품 공모 수상작 시, 시조 부문 대상 움집 이명우 암사동 유적지에 들어서자마자 개울물이 돌의 지층을 긁어내리면서 기어이 햇빛을 들어 올리고 달빛을 게워놓고 공기도 꺼내놓는다
제 몸을 쪼개고 쪼갠 돌은 판화처럼 물에 박히고 물은 모래알을 덮기도 하고 넘기기도 한다 얽히고설킨 그 물의 문장을 나는 읽을 수가 없다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에 부락은 먹구름이 내려앉는다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구름 관에 짐승들도 꼬리를 감춘다 빗줄기는 땅에 못을 박아놓고 며칠 동안 삽질을 하면서 산 채로 그들을 묻는다
안개가 움집들을 돌아다니자 고요는 부풀어 올라 무덤은 능선을 잇고 이파리들은 지붕을 덮고 공기는 집요하게 부락을 찾는다
한강이 범람하자 죽었던 마실 귀퉁이가 조금씩 조금씩 열리고 사람들은 부락을 집요하게 깨낸다
움집은 죽었어도 집터는 다친 곳이 없다 검게 타들어갔던 돌들은 불을 움켜쥐고 있고 옹기에 담긴 도토리 몇 알도 쪼그려든 주름살을 풀어놓지 않는다
사람들이 기둥을 세우자 죽었던 바람이 지붕에 걸린다
햇빛이 빗줄기의 창살을 걷어내도 병든 사냥도구들을 바람이 습기를 도려내도 공기가 옆집의 소문을 펴다 날라도 허공에 걸린 주인은 끝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햇빛이 움집을 지키고 있다
허공에 떠돌던 원자인 빗줄기는 개울물을 따라 돌고 돌아다니면서 바다에 다다른다 원어인 파도는 구억 구천구백 년 동안 말을 내뱉고 있다
시, 시조 부문 우수작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유인채
강 언덕 야산에 우거진 졸참나무 숲은 이 항아리에 모두 담겼다 그때 누군가의 뒤주였을 토기 도토리와 물고기 뼈 화석이 보여주는 그들의 밥상이 소박하다 갈판에 도토리껍질을 벗길 동안 산으로 강으로 내달린 돌창은 하루치의 끼니를 겨냥했을 것 움집에 걸어들어 온 재티 묻은 저녁이 화덕에서 거뭇거뭇 익어갈 동안 목젖에 갇힌 말도 함께 부풀었을 것이다 항아리 아가리에 빗살무늬로 찍힌 육천 년 전의 말 밋밋한 거죽에 나뭇가지와 대나무와 생선가시가 스쳐갔다 그릇에 옷을 입힌 투박한 손 그때부터 우리는 무늬를 숭배했던 것일까 긁히고 파이며 흙은 제 몸의 상처를 무늬로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내가 받아들인 상처는 어떤 무늬로 남았을까 나는 가끔 마음의 무늬가 딱딱해서 미간을 찡그린다 연신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양미간의 표정 조각조각 이어진 재생 토기는 순하고 고운 무늬를 지녔다 이 투박한 마음이 해안가 구릉 깊이 묻혔다가 불쑥 드러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근원적인 맨몸의 언어를 읽기 위해 이 질그릇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심사평 - 함민복
서울 암사동 유적 세계유산 등재기원 문학작품 공모전> 심사장에 가며 마음이 유달리 부풀어 올랐다.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의 삶을, 21세기 현대인들은 문자로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까, 내심 설렘이 컸다.
시, 시조 510편(159명), 소설 48편(47명), 수필 56편(30명), 동화73편(73명) 총, 응모작이 687편이나 되었다. 첫 공모인 점을 감안하여 볼 때 응모작 수가 예상외로 많았다. 단일 작품에 대한 당선상금이 유례없이 크게 걸린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한반도 선사시대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접근해 심도 있게 그려내 보고자 하는 응모자들의 투철한 작가정신의 결과가 더 컸을 것이다. 거기다가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를 문학의 힘으로 살찌워보겠다는 계획이 좋았고 이에 뜻을 같이 하고 싶은 열망이 컸던 것 같다. 심사위원들은, 빗살무늬토기를 처음 만들던 옛사람의 심정으로, 작품을 빚었을 응모자들의 마음가짐을 상기하며, 진지하게 작품 심사에 임했다. 주제의 적합성, 작품성, 창의성, 대중성 등을 집중 고려했다. 결과, 아래와 같이 작품을 선정하였다.
대상(공동수상):이명우-움집(시․시조부문), 박사무엘-터전(소설부문) 우수상:유인채-암사동 빗살무늬 토기(시․시조부문), 양진영-도토리 (소설부문), 정정성-아난의풋잠(수필부문), 김완수-빗살무늬 두더지(동화부문)
본래 대상은 한 작품을 선정할 계획이었으나, 논의를 거듭한 끝에 공동수상으로 두 작품을 선정했다. 두 작품 다 우수한 작품이고 1회라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결정하였다.
대상에 선정된 소설 <터전>은 서사적 완결성과 간결하고 단정한 문장이 돋보였다. 시<움집>은 주제를 향한 집중성과 인간의 역사와 시간에 대한 사유에 깊이가 있어 좋았다.
우수작 시<암사동 빗살무늬 토기>는 세련된 언어구사, 상황은유의 적절성 등, 시적 완성도를, 소설<도토리>는 매끈한 전개와 탄탄한 구조를, 수필<아난의 풋잠>은 사유의 활달함과 진정성으로 일궈내는 감동을, 동화<빗살무늬 두더지>는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글을 재미나게 이끌어가는 힘을 높이 보았다. 사실 위의 우수작들을 대상으로 결정해도 별탈이 없을 것이다. 아울러 당선작들 이외도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음을 밝힌다.
당선자들을 축하하며 본 문학 잔치가 <서울 암사동 유적>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문정희. 함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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