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러운 국민의 힘 갈등(葛藤)에 대한 제언
갈등을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1.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
2. (문학) 소설이나 희곡에서, 등장인물 사이에 일어나는 대립과 충돌 또는 등장인물과 환경 사이의 모순과 대립을 이르는 말.
3. (심리) 두 가지 이상의 상반되는 요구나 욕구, 기회 또는 목표에 직면하였을 때, 선택을 하지 못하고 괴로워함.
심리학자인 레빈에 따르면, 갈등은 다음의 세 가지 경우에 일어난다고 한다.
1. 두 개의 플러스의 유의성(誘意性: 끌어당기는 힘)이 거의 같은 세기로 동시에 반대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 즉 다 같이 매력 있는 목표가 있는데, 어느 쪽을 택하면 좋을지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예컨대, 여성이 결혼과 직장 사이에서 진퇴양난이 되어 있는 경우이다.
2. 두 개의 마이너스의 유의성이 거의 같은 세기로 동시에 작용하는 경우, 즉 앞은 낭떠러지요, 뒤에는 호랑이라는 경우이며, 어느 쪽으로 나아가도 화를 면할 수는 없다.
3. 플러스의 유의성이 동시에 마이너스의 유의성을 수반하는 경우이며, 가령 시험에는 합격하고 싶은데, 공부는 하기 싫다는 등의 경우이다. 이상은 유의성이 둘인 경우인데, 셋일 때도 있다.
사실 이러한 설명도 한자에 내포되어 있는 철학적인 의미에는 미치지 못한다.
갈등은 한자로 葛 : (칡 갈) 藤 : (등나무 등)으로 쓴다.
칡은 우리나라 산하 어디에서든지 햇볕을 잘 받는 곳이면 무성하게 자란다. 콩과 낙엽활엽 덩굴성식물로서 뿌리에는 녹말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흉년에는 배고픔을 면하게 했다. 칡 줄기를 삶아 껍질을 벗겨내 만든 하얀 섬유로 짠 옷감을 갈포라 하는 데 이것으로 옛 조상들은 의복을 만들었다. 그리고 뿌리를 캐서 찧은 다음 물에 여러 번 담가 앙금을 가라앉혀 만든 녹말이 갈분이다. 요즈음은 전분이라고들 하는데 고유의 명칭은 갈분이었다. 또 한방에서는 꽃 말린 것을 갈화(葛花), 뿌리 말린 것을 갈근(葛根)이라고 하여 중요 약재로 사용되었다.
등나무는 콩과의 낙엽 덩굴식물로 쉼터 햇빛 차양 용도로 사랑을 받는 식물이다. 5월경 쉼터 여기저기에서 연보랏빛의 아름다운 꽃이 수없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등나무를 흔히 볼 수 있다. 콩과 식물이라 뿌리 혹 박테리아가 있어 척박한 장소에서도 잘 자란다.
줄기는 지팡이를 만들었고, 가는 가지는 바구니를 비롯한 우리의 옛 생활도구를 만들었다. 껍질은 매우 질겨 종이의 원료로도 사용하였다..
칡의 성질은 나무를 감고 오를 때 왼쪽에서 오른 쪽(시계 반대방향)으로 감으면서 오르는 성질이 있다. 반면 등나무는 오른 쪽에서 왼 쪽(시계방향)으로 감으면서 오른다.
이렇듯 덩굴식물은 종류마다 자기들의 정해진 방향으로 감고 올라간다. 방향을 일부러 바꿔 놓아도 다시 원래 제 방향대로 자리를 잡아 올라간다.
우리 조상들은 칡과 등나무를 소인배 나무로 치부했다. 이유인 즉 자기 스스로 서지 못하고 남의 영역을 침범하여 상대를 희생시키고 홀로 광합성을 독차지 하는 그 모습이 인간 사회에서 강자가 약자의 등에 올라타서 이익을 독차지하는 모습이 비슷하게 비춰졌기 때문이다.
감는 방향이 다른 칡과 등나무가 한 나무에서 만나면 서로 자기 방식의 방향으로 감고 올라가다 보니 서로를 짓누르게 되고 이리저리 얽혀서 매우 복잡해지고 서로의 생장에도 방해를 하게 된다. 이렇게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고설킨 모습에서 우리들이 흔히 쓰는 '갈등'이란 말이 만들어졌다.
두 나무가 불규칙하게 서로 감으면서 오르기를 계속하면 결국 칡과 등나무가 모두 죽게 되거나 어느 한 쪽이 죽게 된다.
그러나 칡과 등나무가 규칙적으로 서로 느슨하게 감고 오르면 오히려 단일 종목이 생장하는 것 보다 더 잘 자란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에서는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갈등을 잘 못 해결하는 것은 칡과 등나무가 불규칙하게 얽혀 공멸하는 것과 같은 길을 걷지만, 잘 해결 하면 갈등이 없었을 때 보다 더 역동적으로 변할 수 있음이 한자의 글자에 내포되어 있다.
논어 里仁(이인) 편에 ‘放於利而行多怨(방어리이행다원)’이라 했다. ‘공리가 아닌 개인적인 사욕을 추구하기 위해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면 남으로부터 원성과 원망을 쌓게 된다.’ 고 했다.
위정자가 일을 처리할 때 자기 이익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칡과 등나무가 다른 나무에게 해를 끼쳐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과 같고 서로 쟁탈을 벌린다면 칡과 등나무가 함께 얽혀 공멸하는 것과 같다.
국민의 힘 이준석 전 대표는 세 번의 선거를 승리로 이끈 장수다. 그의 공로를 가볍게 치부하면 안 된다.
소위 윤핵관이란 분들의 눈에는 이준석이 암적인 존재일 것이다. 그 분들은 대부분 다선의원들이다. 그분들이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아 당선되면 국회 의장 자리가 눈앞에 어른거릴 것이다. 그분들은 지역구가 비교적 현 여당이 당선되기 쉬운 지역의 의원들이다. 그런데 이준석의 개혁 공천이 실현 될 경우 그 분들이 공천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공천혁신위’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가장 쉬운 방안이 이준석의 당권을 빼앗는 것이었다고 본다.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단이 난 것이다.
이젠 냉정하게 생각할 때다.
이준석을 몰아내고 총선을 치른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 여당 국회의원의 대부분은 영남권에서 당선된 사람들이다. 이분들은 공천이 곧 당선이기에 개혁이 오히려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국회의원의 수가 많은 수도권의 선거는 암담하다고 본다.
지방선거에서 6대 4정도로 유리했던 민심이 20대와 30대가 국민의 힘을 외면함으로써 오히려 3대 7정도로 불리하다는 여론 조사가 속속 등장한다.
수도권에서 국회의원 선거가 밀리면 국민의 힘이 다수당이 된다는 것은 요원하며 국회의장을 꿈꾸는 자들의 생각도 신기류에 불과하리라고 본다.
바라건대 정치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그리고 돌아올 수 없는 다리도 없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함께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칡과 등나무가 규칙적으로 감아 더욱 싱싱하게 자라는 것처럼 조직의 갈등도 이와 같이 치유되어 갈등이 없었던 시점보다 더욱 역동적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국민들의 염원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