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요일 성령강림 대축일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저마다 받은 성령의 은사에 힘입어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기로 다짐합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23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성령을 많이 받는 방법
하느님을 믿고 성당에 다니면서 가장 큰 숙제 중에 하나는 성령께 대한 욕심과 어떻게 하면 성령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표징에 관한 문제도 나를 참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영을 만질 수도 없고, 측량할 수도 없어서 많거나 적다고 말할 수도 없고,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방언(放言)하는 것을 보면서 은근히 질투도 생기고, 나에게는 왜 그런 은사를 주시지 않는지 투정을 부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령강림 대축일에 특별히 성령을 어떻게 받는지에 대해서 내 자신의 노하우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요령도 아니고, 비법도 아니고, 또 올바른 방법이라고 검증 된 바도 없기 때문에 권장할 만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혀두는 바입니다. 아주 형편없이 빈약한 노하우(know-how)이지만 이만큼이라도 터득 하느라고 족히 60년은 걸렸으니 그냥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1. 성령은 하느님의 영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니 하느님과 같이 있으면 당연히 성령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하느님 주변에서 맴돌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같이 있는 방법으로는 우선 하느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 머물기 위해서 묵상을 한다든지, 성경을 읽는다든지, 기도를 한다든지, 하느님을 자꾸 부르고 찾는다든지, 현실 속에서나 상상 속에서 하느님과 얘기를 한다든지 그런 모든 방법도 효과적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방법입니다. 내가 건방지게도 하느님의 입장이 되어 나를 보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참 꼴불견인 때도 많고, 볼만한 때도 가끔 있지만 속 터지는 때가 가장 많은 것이 하느님의 입장이 되어 나를 볼 때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생활로 내가 들어가서 그분의 귀여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는 미사나 전례에 참례하여서 성령을 받는 방법입니다. 성사생활을 통해서 받는 성령은 그 징표가 확실하기 때문에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이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강복이나 신부님의 안수나 평화의 인사나, 하느님과 형제들과 일치 안에서 성령을 받습니다. 피정이나 강론을 듣거나 간증을 들을 때도 성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고요한 침묵 속에서 성체 조배 시에 받는 성령의 특별한 강림은 더 가슴 가득히 벅차오릅니다. 성체 조배는 정말 좋은 시간입니다. 성시간은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은총의 시간입니다.
3. 논어의 이인(里仁)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덕불고 필유인’(德不孤 必有隣)란 말씀입니다. “덕이란 본래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어, 누구나 다 같이 좋아하는 바이기 때문에, 덕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덕을 흠모하여 따르는 이가 있게 마련이다.” 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공자님이 말씀하시는 덕은 본래 성령이십니다. 하느님의 성령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성령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따르도록 마련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성령의 궁전’이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인간관계와 사회성이 좋은 사람과의 사귐을 통해서 성령을 충만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4. 성령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죄를 싫어하실 것입니다. 성령을 많이 받기 위해서는 죄를 피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물과 불, 숨과 바람과 같이 갇혀있는 분이 아니시고 자연스러움을 더 사랑하실 것입니다. 내 생활 전반에 걸쳐 자연스러움 속에서 생활 습관이 녹아들어야 합니다. 내 버릇 속에서 성령께서 싫어하시는 죄와 악에서 멀어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5. 다섯 번째의 방법은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방법입니다. 성령의 7가지 은사를 청하는 기도를 끊임없이 바치며 그 은총 안에 살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것입니다. ①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은사인 슬기(지혜)를 주십사고 청하는 것입니다. ② 세상의 도리에 대하여 깨닫게 해달라고 깨달음(통달)의 은사를 주십사고 또한 청해야 합니다. ③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의견의 은사를 주시기를 청하며, ④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굳셈(용기)의 은사를 또한 주시기를 청해야 합니다. ⑤ 복음 말씀이나 세상의 이치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지식의 은사를 주시기를 청하고, ⑥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알아 올바른 부자관계를 맺게 해 주시도록 효경(孝敬)의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⑦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경외(敬畏)를 청하면서 은총 안에 있기를 희망해야 합니다.
6. 여섯 번째 방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입니다. 떡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큰 그릇을 챙기듯 ‘무조건 떼거지를 쓰는 방법’입니다. 가장 나다운 방법입니다. 울어 퍼 대기도 하고, 넋을 놓고 앉아 있기도 하고, 안 주시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보채고 붙잡고 통사정을 하듯 애걸하기도 하면서 매달리는 방법입니다. 어찌 되었든 속이 후련하니까 한번 해 보십시오. 죽기 아니면 까물 쓰기로 덤벼들어 보십시오. 될 수 있으면 꿈도 야무지게 가지시고 그렇게 덤벼들면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모두 잠들고 고요한 시간 묵상하면서 가슴 벅차오르는 성령을 만나시거든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3ㄷ-7.12-13
형제 여러분,
3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축일5월 19일 성 첼레스티노 5세 (Celestine V)
신분 : 교황
활동 연도 : 1209/10-1296년경
같은 이름 : 셀레스틴, 첼레스띠노, 첼레스띠누스, 첼레스티누스, 켈레스티노, 켈레스티누스, 코일레스티노, 코일레스티누스
교황 성 코일레스티누스 5세(Coelestinus V, 또는 첼레스티노)는 이탈리아 중부 몰리세(Molise)의 산탄젤로 리모사노(Sant’Angelo Limosano)라는 마을에서 소작농인 안젤로 안젤레리오(Angelo Angelerio)와 마리아 레오네(Maria Leone)의 아들로 태어나 피에트로 델 모로네(Pietro del Morrone)라는 이름을 얻었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그는 들에서 일했지만, 그의 영성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어머니는 그가 단지 농부나 양치기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17살 때 몬타가노(Montagano) 인근 파이폴리(Faifoli)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입회해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더욱 고적한 생활을 동경해 1231년경 아브루치(Abruzzi) 광야에서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가, 사제가 되려고 자신의 움막을 떠나 1234년경 로마(Roma)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몇 년 동안 술모나(Sulmona)의 모로네(Morrone) 산에 있는 한 동굴에 머물면서 은수 생활을 원하는 이들과 공동체를 이뤄 지도하다가, 몰려드는 군중들을 피해 1245년경 제자들과 함께 접근이 더 어려운 마이엘라(Maiella) 산 깊은 곳으로 가서 생활했다. 하지만 제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는 처음에 만들었던 모로네 산의 공동체, 이미 당시에는 수도원을 발전한 곳으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그는 매우 엄격한 규칙을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가 설립하고 훗날 그의 이름을 따서 첼레스티누스회로 불리는 은수자 공동체는 1264년 교황 우르바누스 4세(Urbanus IV)에 의해 인가되었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Gregorius X) 때 성 베네딕투스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교황 니콜라우스 4세(Nicolaus IV, 1288-1292년 재위)의 선종 후 정치적 알력 때문에 2년간의 교황직 공백 기간이 발생했을 때, 이미 80에 가까운 고령의 은수자인 그는 교황 선출을 위해 페루자(Perugia)에 모인 추기경들에게 위협적인 언사로 새 교황을 즉각 선출하지 못하면 하느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추기경들은 당시 고령에다 병든 그를 새 교황으로 선출했다. 더 오래 교황직을 공석으로 둘 수 없어서 그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였고, 주교품을 받고 이틀 후인 1294년 8월 29일 아브루초(Abruzzo) 지방 아퀼라(Aquila)의 산타 마리아 디 콜레마지오(Santa Maria di Collemaggio) 성당에서 코일레스티누스 5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좌에 올라 혼란하던 교회의 방향을 바로 잡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행정 실무 경험이 전혀 없던 성 코일레스티누스 5세는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기에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무능함과 건강상의 이유로 그는 더는 교황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교황에게 스스로 물러날 권리가 있다는 마지막 교령을 발표하고 재임 5개월여만인 1294년 12월 13일 교황직을 사임했다. 그는 스스로 교황직을 사임하고 자신의 수도원을 되돌아간 최초의 교황이 되었다. 베네데토 카에타니(Benedetto Caetani) 추기경이 그를 승계해서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라는 이름으로 교황좌에 올랐으나, 선임자의 높은 인기가 수많은 지지자를 만들어 그를 복위시키려는 운동으로 번졌다. 그러자 후임 교황은 성 코일레스티누스 5세를 아나니(Anagni) 근교의 푸모네 성(城)에 감금했다. 예전의 은수 생활로 돌아가고자 했던 성 코일레스티누스 5세는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푸모네 성에서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채 첼레스티누스회의 두 수사와 함께 생활하다가 1296년 5월 19일 종기로 인한 감염으로 선종했다. 그의 시신은 우선 페렌티노(Ferentino)에 묻혔다가, 1317년에 그가 교황으로 즉위했던 산타 마리아 디 콜레마지오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그는 1313년 5월 5일 교황 클레멘스 5세(Clemens V)에 의해 증거자로 시성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첼레스티노 5세 (Celestine V)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