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선집
김영봉 지음/IVP
이 책은 동서고금을 아울러서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꼭 필요한 기도문들을 모아 놓음으로써 이 기도문들 사이를 거닐며 기도의 키가 커지고 기도의 영혼이 깊어지도록 도와주는 신앙인들의 필독서라 하겠다.
책을 대하기 전, 몸과 마음을 맑게 해야만 할 것 같아 가벼운 산책을 했다. 이러한 건강한 조바심이 들게 하는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크나 큰 행복이다. 그것이 영적 삶에 관련된 책이라면, 게다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호흡’이라 하는 ‘기도’에 관한 책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지만, 소개하는 책 ‘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선집’은 그 중에 단연 으뜸이다.
이 책 ‘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선집’이 출판되기 이전, 그러니까 지난 2002년 월드컵으로 나라가 온통 뜨겁게 달아오를 때 즈음에 나는 독서로 인한 깨달음의 감격을 맛보았는데, 다름 아닌 김영봉 목사의 ‘사귐의 기도’라는 책이었다. ‘사귐의 기도’는 기도의 본질에 관한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 그어가며 감탄사를 연발해야만 했던 것은 그동안 나의 신앙과 기도가 때때로 얍복강변의 야곱에만 매달리던 모습이었든지, 아니면 어미의 품에 안겨 젖을 빠는 갓 태어난 아기의 신앙으로 만족해 왔다 싶은 회개의 심정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후 출간될 김영봉 목사의 책은 영적 생활에 대한 실제적인 안내에 관한 게 아닐까 하며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선집’이었다. 이 책은 제목이 말하는 대로 기도문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책에 실려 있는 기도문들은 김영봉 목사가 신학자로서 그리고 목회자로서 기도에 대해 구체적인 관심을 갖게 된 이후부터 수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기도문을 수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개 인간의 관심은 그의 정신을 반영하는데, 그 정신이 습관처럼 자연스럽고 그 안에 체화되고 온축되는 것은 실로 각고의 노력(의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관심을 지속시킬만한 어떤 모상을 찾게 되고 그 모상을 통해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열정을 완성시켜 나가곤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기도한다’고 했을 때 어떤 표준 혹은 모범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마치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듯이 말이다. 해서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시인 박노해가 곱씹었던 ‘거목 사이를 걸으니 내 키가 더 자랐다’는 싯구를 제목으로 삼아 이 책이 어떤 방향성과 어떤 목적으로 저술되었는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데, 즉 이 책은 동서고금을 아울러서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꼭 필요한 기도문들을 모아 놓음으로써 이 기도문들 사이를 거닐며 기도의 키가 커지고 기도의 영혼이 깊어지도록 도와주는 신앙인들의 필독서라 하겠다.
이 책은 기도자들의 시대와 사상을 놓고서는 일이관지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다양한 기도문들을 싣고 있다. 초대교회로부터 오늘날까지, 동양으로부터 서양까지, 그리고 보수로부터 진보까지 이르는 그리스도교 사상의 보고이기도 하다. 국내 저자로써는 길선주, 김교신, 김재준, 류영모, 문익환, 박목월, 손양원, 이용도, 주기철, 함석헌, 한경직 등등이 있는데, 이로써 우리는 한국의 근대화 속에서 꽃 피었던 선배 신앙인들의 역사의식과 신앙을 배울 수 있고, 또한 박재순, 이재철, 안이숙, 임영수, 한희철 등과 같은 현존하는 신앙인들의 기도문들로 인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바른 기도는 어떤 것인지도 함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저자 김영봉 목사 자신의 기도문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풍부한 국외 저자들의 이름으로는 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십자가의 요한, 이그나시우스, 토마스 아 켐피스등 유수한 고전 영성가들의 기도문이나, 마르틴 루터, 장 칼뱅, 그리고 존 웨슬리와 같은 종교 개혁자들의 기도문들, 또한 라인홀드 니버, 테이야르 드 샤르댕, 웰터 브루그만, 디트리히 본회퍼와 같은 신구교를 넘나드는 신학자들의 기도문, 그리고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헨리 나우웬, 유진 피터슨, 켈커타의 테레사 등의 동시대 영성가들의 기도문도 접할 수 있다. 총 5백여 편 되는 방대한 기도문들이다.
저자는 이 책의 소개를 위해 이메일을 보내왔는데, 한참 후배 목사인 내게 이런 말을 한다. (‘잘’ 써줄 것 같아서가 아니라 ‘제대로’ 써 줄 것 같습니다.) 잠시 멍하니 그의 메일을 되새겨 보았다. 책 소개를 ‘잘’ 해주어서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란다고 해도 무방할텐데, 굳이 ‘잘’과 ‘제대로’의 의미를 구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은 그의 책 서문을 읽고 나니 쉽게 풀릴 수 있었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기도선집은 통독용이 아니다. 연구용도 아니고 감상용도 아니다. 이것은 ‘기도용’이요 ‘영성 생활용’이다. … 만일 이 기도문들을 읽고, ‘참 좋다!’하는 느낌으로 끝난다면, 독자들은 이 기도 선집을 통해 별로 얻는 것이 없을 것이다. 반면, 이 기도들을 자신의 기도로 만들어 묵상하고 기도하다 보면, 깊은 기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 줄 것으로 믿는다.(13쪽)
저자 김영봉 목사가 이 책을 통해 의도한 것은 풍부한 기도문들을 소개함으로써 ‘잘된 기도’ 즉 멋있는 기도, 아름다운 기도, 혹은 내용이 꽉 찬 기도가 무엇인지 그 본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기도문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깨닫고 실천하는 단 하나의 독자를 염두에 둔 것임에 분명하다. 이것은 목사로써 학자로써 그리고 저술가이자 영성가인 저자에게 맡겨진 양심이자 의무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삶과 신앙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또한 동일한 심정으로 짊어지고 가야할 길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