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텔러* / 정선우
다시, 꽃샘추위다.
무료함을 깔고 있는 방바닥을 손으로 쓸어보지만 오후는 뒤집어지지 않는다. 손바닥의 방식으로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먹다 만 생수병과 따지 않은 생수병 사이에 에프킬라는 일 년째 그 자리. 지겨워. 물린 자리를 긁다가 피를 볼 것이다.
꽃샘추위예요.
며칠이 지난 귤을 까먹다 시들한 나 같아서 단면으로 잘라 채반에 펼쳐 놔요. 동작 그만. 나도 그 옆에서 햇살 쬐며 해바라기 시늉해요. 쉽게 까먹은 얼굴들. 두려워.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어떻게 하죠. 터진 알맹이 마냥 새는 기억을 주먹으로 막을 수 있을까요.
변명을 하고 장래희망을 말했다. 희망은 변명의 또 다른 말. 내 이야기가 진담이 될까봐, 식은 밥에 물 말아 먹으며 음악을 듣는다. 나를 꿀꺽 삼킨다. 오지 않는 것들을 배웅하는 것은 잘한 일이다. 안부 묻는 사람을 선택하기로 한다. 당신의 입장을 선호 한다.
*self-teller: 내 안에서 나에게 말하는 존재.
* 2019년 계간 <시산맥> 여름호.
첫댓글 재미있는 시에 한동안 머물다 갑니다 ~~
감사합니다^^~
시산맥 여름호가 벌써 나왔군요^^ 잘 읽고 갑니다. '장래'라는 말은 외롭고도 안타까운 느낌이 들어요. 희망이라는 말에 꾸밈새로만 주로 쓰이지요. 미래라는 이음동의어에 밀려 오지않을 가능성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신세라고 할까요.
네 그렇군요. 장래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케하는 말씀입니다.
단어 하나를 주의 깊게 살펴 보는 눈을 가지셨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