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향전 패러디에 대하여
현대문화 속에서 만난 춘향(이 송 희)
1. 왜 춘향인가.
오늘날 춘향은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가게 입간판, 영화, 시나리오, 시, 소설, 오페라, 연극 등을 비롯한 한국의 문화 현장 곳곳에서 춘향은 다양한 표정으로 얼굴을 내민다. 춘향은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면서 한국여성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운명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닥쳐 온 고난을 극복하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온 몸을 바치는 춘향의 행동양식이 다양한 모습으로 구현되는 것은 전통적 한국여성의 정서가 현대에 맞는 캐릭터로 진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판소리에서 시작된 고전으로서의 춘향은 다양한 문화 장르로 분화되면서 현대에 맞게 재해석·재생산되고 있다. 매 년 5월, 남원 광한루에서 열리는 춘향제는 물론, 설화와 판소리를 통해서 춘향은 대중적 지지를 얻고 지역적․계급적 특성과 결합하여 새로운 인물로 형상화된다. 문학작품에서의 춘향 역시 문화제와 마찬가지로 독자의 요구와 수용을 의식하고 수렴한다. 최인훈의 소설 ������춘향뎐������에서처럼 기존 춘향전을 패러디하여 전혀 새로운 춘향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박만규의 뮤지컬 ������성춘향������과 박병우의 드라마 ������TV 춘향전������과 임권택의 영화 ������춘향뎐������에서처럼 새로운 플롯을 삽입하거나 주제의식을 심화시키는 등 현대감각에 맞는 춘향전 개작의 새로운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들 장르가 춘향전의 스토리 전개를 의식하고 있다면, 시의 경우는 개인의 서정과 만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직접적으로 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오늘 춘향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역사와 민중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일까. 오랜 시간을 지나 온 춘향이 오늘날 전통문화제와 현대시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해석되었는가를 조명해보는 일은 오늘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뿌리를 만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 전통문화제로서의 춘향
문화산업 시대에 문화를 상품화시키는 것은 문화의 주체가 자신이 속한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여유로운 삶을 누릴 때 가능하다.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열악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 지역 축제는 공동체 정신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각종 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지역 축제에 대한 관심은 수도권과 지역, 개인과 공동체간의 문화 소통의 장으로서, 경제 성장의 통로로서, 시민들의 놀이 공간으로서 그 가치를 얻는다.
전통문화제로서 그 입지를 굳힌 춘향은 남원 사람들에 의해 오랜 세월을 거쳐서 가꾸어졌다. 춘향과 이도령이 실존 인물인가 허구 인물인가를 둘러싼 수많은 논의들과 춘향이 원래 박색이었다는 박색설화를 비롯한 춘향의 주변을 두른 이야기들, 춘향을 바라보는 긍정적․부정적 시선들은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논의의 중심에 있는 이도령과 춘향의 사랑, 춘향의 정절, 부조리한 사관에 대한 서민의 항거 등과 같은 주제들은 춘향을 보다 아름답고 강한 여성상으로 거듭나게 하며, 계급적 한계와 억압을 뛰어넘어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는 현대의 여인상으로 거듭나게 한다.
춘향제는 춘향의 절개와 정절을 숭상하고 잘못된 사회상에 저항하는 춘향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 개최되어, 현재는 단순 제사의 이미지를 벗어나 지역 축제로서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남원의 유지들을 주축으로 시작한 춘향제는 1931년 광한루 정내에 춘향사를 건립하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그 막을 올렸다. 처음 제를 올린 날은 1931년 음력 5월 5일로 이도령과 성춘향이 광한루에서 처음 만난 것을 기념하여 정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줄곧 야간 또는 새벽에 제를 지냈다고 한다.
바흐친의 말처럼 축제는 자유와 평등이 지배하는 탈일상의 공간이다. 이 시간만큼은 민중들도 일상에서 벗어나 재생산을 위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축제는 공동 경험의 장을 제공하고 자기 지역을 드러내는 문화적 장이며 동시에 같은 집단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갖게 하는 장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사회적인 의미를 지닌다. 또한 지역 내부에 존재하는 계급구조들을 일순간 정지시키고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맛보게 한다. 이런 가운데 축제는 지역 공동체라는 문화적이며 도덕적인 지도력을 갖추는 것이다.
축제의 성공 전략은 제의성과 예술성을 적절하게 결합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일제의 압박과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그 명맥을 이어 온 춘향제는 오늘날 춘향의 이미지와 결합된 다양한 행사 상품과 전략으로 인해 풍요로운 성과를 얻고 있다. 춘향은 문화 상품으로서 전통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지역 문화의 활성화에 앞장 서는 캐릭터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춘향을 통한 축제 홍보는 지역의 이미지 고취는 물론 춘향의 정신을 이어받은 한국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한다. 제의를 통해 소원을 빌고 가무를 통해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민중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이야말로 춘향의 고을로서 남원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고, 현대 사회 속에서 전통의 가치를 세우는 우리 민족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춘향은 남원을 대표하고 지역민들의 성품을 대면하는 문화적 코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축제 현장에서 우리는 생생한 춘향의 모습을 민중들의 삶 속에서 현장감 있게 만날 수 있다.
3. 현대시 소재로서의 춘향
축제가 현장에서 생생한 만남을 연출한다면, 시는 시인의 상상과 서정의 무대 위에 세워진다. 춘향은 김소월, 김영랑, 서정주, 박재삼, 복효근, 강은교 등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의 시들에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춘향의 이야기는 시인의 서정과 만나 시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며 오늘날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들 시인들을 통해서 그려진 춘향은 시적 소재로 쓰여 지기도 하고 시인을 대신해서 말을 하고 노래를 하기도 한다. 춘향을 통해서 시인은 문화제와는 다른 차원의 재생을 경험한다.
춘향이 현대시의 소재로 맨 처음 차용된 것은 김소월의 시 「춘향과 이도령」에서이다. 누님에 대한 그리움을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야기로 그려내는 독백 형식의 이 시에서 춘향과 이도령은 주제를 뒷받침하는 소재로서의 역할을 한다.
모진 春香이 그 밤 새벽에 또 까무러쳐서는
영 다시 깨어나진 못했었다. 두견은 울었건만
도련님 다시 뵈어 恨은 풀었으나 살아날 가망은 아주 끊기고
온몸 푸른 脈도 홱 풀려 버렸을 법
出道 끝에 御史는 春香의 몸을 거두며 울다
"내 卞苛보다 殘忍無智하여 春香을 죽였구나"
오! 一片丹心
- 김영랑 「春香」 부분
‘큰 칼 쓰고 獄에 든 춘향이는/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그 옛날 成學士 朴彭年/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에서처럼 김영랑은 춘향이 처한 상황을 직설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위에 인용한 마지막 연은 이도령이 출도하기 전 형벌을 이기지 못한 춘향이 끝내 숨을 거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시인은 춘향전이 갖고 있는 기존 이야기를 따르지 않고, 숭고한 절개를 지키다 간 춘향의 죽음을 묘사함으로써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신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잇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에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에요!
- 서정주 「春香 遺文-春香의 말3」 전문
서정주의 시에서 춘향 모티프는 「鞦韆詞」, 「春香 遺文」, 「다시 밝은 날에」등에서 등장한다. 이들 시편들은 ‘춘향의 말’ 연작으로, 단순한 소재로서의 차용을 넘어 시인의 서정과 상상의 세계가 조화를 이루면서 보다 생생한 감정을 전달한다. 「春香 遺文」에서 춘향은 시인의 내면과 일체화되어 있다. 도련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춘향의 독백은 이도령을 향한 춘향의 정절을 깊이 있게 드러낸다. 춘향의 생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길 땅 밑의 검은 물로, 도솔천의 하늘을 떠도는 구름으로, 도련님의 곁에 퍼붓는 소나기로 환생한다.
향단에게 그네를 밀게 하면서 춘향이가 하는 말을 담고 있는 「鞦韆詞」는 천상과 지상을 잇는 가교적 역할로서의 ‘그네’를 통해 자신을 묶고 있는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춘향의 간절한 마음을 보여준다. 그네를 타는 것은 춘향의 신분을 둘러싸고 있는 기존 관념으로부터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기 구원의 방식이기도 하다.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 나무’, ‘풀꽃더미’,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은 춘향이 벗어나고 싶은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시 밝은 날에」에서도 시인은 감정을 절제하고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춘향의 말’ 연작인 이들 작품에서 서정주는 춘향전의 이야기 전개를 따르면서도 춘향을 단순한 소재로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춘향이 두르고 있는 유교사상과 윤회사상을 시인의 내면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생생하고 의미 있는 이미지 구현은 박재삼의 시에서도 드러난다.
집을 치면, 精華水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선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平床의. 갈앉은 뜨락의, 물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 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올 따름, 그 옆에 順順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이 마음이 아니었을레.
하루에 몇 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 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 때마다 일렁여 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진실로, 우리가 받들 山神靈은 그 어디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의 만리 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춘향은 바람에 어울린 水晶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 박재삼 「水晶歌」 전문
박재삼의 「춘향이 마음」에서 춘향을 소재로 한 작품은 모두 10편이다. 「水晶歌」, 「바람 그림자를」, 「華想譜」, 「매미 울음에」, 「自然」, 「綠陰의 밤에」, 「葡萄」, 「한낮의 소나무에」, 「無縫天地」, 「待人詞」 등이다. 박재삼의 시편들에서는 작가의 상상 속에 덧씌워진 춘향의 이미지를 가상적으로 엮어 형상화하고 있다. 「水晶歌」는 정화수를 떠 놓고 이도령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춘향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정화수를 떠 놓은 물 위에 어리는 푸른 그리움은 막연한 기다림을 두른 시간들을 더욱 애타게 드러내는 효과를 준다.
「華想譜」에서 시인은 춘향이의 옥(獄) 중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입장에 있다. ‘목이 휘인 채 꽃진 꽃대같이 조용히 춘향이는 잠이 들’고, 칼 위에는 눈물방울이 겹쳐진 꽃 이파리처럼 아롱져 있다. ‘아픈, 꽃이파리’ 되어 떨고 있는 장면은 ‘춘향이 一片丹心을 생각해 보아라.’는 시인의 감탄으로 인하여 고통 속에서 더욱 밝게 빛나는 기다림의 정서가 아름답게 승화된다. ‘피릿구멍 같은, 獄’에 갇힌 춘향이의 쓸쓸하고 외로운 밤을 노래한 「綠陰의 밤」 역시 ‘일편단심’하는 춘향이의 애절한 마음을 잘 담고 있다. ‘笞杖 끝에 피멍진 賤妾 춘향의 全身滿身 캄캄한 살 위에도 병 생기는 아픔’의 시간들은 밤의 이미지와 어우러져 애달픈 춘향의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편 옥(獄)에 갇힌 춘향과 기다리는 춘향을 다룬 시편들과는 달리 「葡萄」는 ‘이승에서 다 풀고 갔’을 원통하던 일을 저승에 가서도 못 잊고 조롱조롱 다시 열린 ‘춘향이 마음’을 포도에 비유하고 있다. 원통함이 맺힌 포도송이를 보면서 시인은 ‘가냘피 아파 우는 소리’와 ‘여럿이 구슬 맺힌 눈물’을 보고 있다. 무릎을 고쳐 잡느라 나는 뼈 소리는 형틀에 매인 춘향의 고통을 나타내고, 포도의 신물은 고통을 참으며 삼킨 눈물을 의미한다. 이렇듯 박재삼은 춘향의 기다림과 소망을 응시하면서 그러한 정서를 때로는 시적 화자의 가슴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노래하기도 한다.
춘향을 소재로 한 시편들은 칼을 쓰고 옥(獄)에 갇혀 있는 춘향, 또는 고통 속에서도 님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정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춘향전의 이야기 전개보다는 극적 구성과 시인의 상상적 공간이 만나 새로운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
지리산은
지리산으로 천 년을 지리산이듯
도련님은 그렇게 하늘 높은 지리산입니다
섬진강은
또 천 년을 가도 섬진강이듯
나는 땅 낮은 섬진강입니다
(중략)
땅 낮은 섬진강 도련님과
하늘 높은 지리산 내가 엮는 꿈
너나들이 우리
사랑은 단 하루도 천 년입니다
- 복효근 「춘향의 노래」 부분
춘향이를 화자로 내세우고 있는 복효근의 「춘향의 노래」 역시 이도령에 대한 기다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화자는 도련님을 ‘하늘 높은 지리산’이고, 춘향은 ‘땅 낮은 섬진강’으로 노래한다. ‘나는 도련님 속에 흐르는 강’이 되고, ‘도련님은 내 안에 서있는 산’이 되는 것은 천년을 가도 변함없이 몸을 섞는 지리산과 섬진강의 존재 상황으로 인하여 더욱 깊은 사랑의 빛을 발하는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을 극대화한다. 땅이면서 하늘이고, 하늘이면서 땅인 자락에서 엮어가는 꿈같은 사랑은 너와 나 분별이 없는 넘나듦 속에서 이루어진다.
아주 먼 눈물이 날 출렁이고 있네
아주 오랜 배가 날 자꾸 실어가네
어쩔꺼나 어쩔꺼나
새벽은 멀구
내 고름 한 자락 땅위에 놓치이니
눈물 자국 자국마다 일어서는 누구 발자국 소리
- 강은교 「춘향이의 꿈노래」 부분
이 시는 우주를 뛰어넘는 영원한 사랑의 정신이 눈물 맺힌 저고리 고름과 그 눈물 자국마다 일어서는 발자국 소리로 인하여 더욱 짙어지는 그리움을 묘사하고 있다. 울음과 설움을 삼키며 이도령을 그리던 춘향의 정절과 애절한 마음이 구체적으로 묘사된 작품이다.
이렇듯 현대시 속에서 춘향은 시인과 하나가 되거나 때로는 시인의 관찰 속에서 그 고난의 삶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대부분 춘향을 둘러싼 기다림과 그리움, 아픔의 정서에 초점을 모으고 있는 시 작품들은 춘향전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기존 춘향전의 스토리에 의지하지 않고 비유와 상징을 통해 참신한 사랑의 이미지를 창출한다. 이렇게 고전의 원형으로서 춘향은 시인의 시각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고, 독자는 다양한 각도에서 춘향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시편들에서 춘향은 시인 자신의 열망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분신이기도 하다.
4. 고전과 현대, 열린 소통의 장으로서의 춘향
일정한 주제와 구성으로 짜여 진 고전 양식이 현대에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재창조와 재해석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전의 원형이 특별한 존재가치와 그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수요층의 요구와 참여가 고전 속의 인물을 오늘의 자리로 데려온다. 춘향은 고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시도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춘향전은 정절과 영원한 사랑을 추구하는 유교적 사유와 도덕적 관념 이면에 가려진 신분을 넘나드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인하여 현대사회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하고 있다. 일찍이 조동일은 「춘향전 주제의 새로운 고찰」에서 열녀의 교훈이라는 표면적 주제를 버리고 인간적 해방이라는 이면적 주제를 받아들일 때 춘향전이 오늘날의 것으로 계승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춘향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은 오히려 오늘날 춘향이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재생산되고 있는 이유를 제공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전통문화제로서 춘향은 지역 축제의 현장 속에서 더욱 생생한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민중들의 삶을 대면하면서 남원을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춘향은 문화제를 통해서 눈앞의 여인으로 부활한다. 한편 현대 시 속에서 춘향은 시인의 서정과 만나 새로운 미학적 형상화를 이끌어 낸다. 문화제의 춘향과 현대시의 춘향은 각각의 목소리와 향기를 가지고 있다. 대중은 이런 다양한 문화적 양식 속에서 자신만의 춘향을 상상하며 욕망한다. 캐릭터의 발전은 새로움을 향한 욕구 속에서 거듭난다. 우리는 그렇게 춘향을 만난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의 기반이 위기를 맞고 있는 요즘, 현대 속에서 전통의 산물들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은 또 다른 방식으로 문화의 미래를 여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춘향은 영화, 연극, 드라마, 노래 등 곳곳에서 기존의 인습을 허물며 생각하지 못했던 빛깔과 모양의 옷을 입고 우리와 마주칠 것이다.
* 이송희
1976년 광주 출생,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전남대 국문과 박사, 전남대․조선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