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史記 45회》
☆유방의 일생☆
어제에 이어 오늘은 유방(劉邦)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유방은 기원전 247년 초나라 패현(沛縣 :現 장쑤성)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어느날 어머니 유온이 연못가에서 문득 잠이 들었는데 꿈에 신령이 나타나고 소나기가 퍼붓는데 집에 있던 남편 유공이 뛰어나가 보니, 하늘에 용이 승천을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뒤에 임신하게 되어 유방을 낳았는데 얼굴이 龍相이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유방은 자라면서 특별히 공부를 하거나 무술을 배운적은 없고 그저 키가 8척이나 되는 등치로 거리에서 노는
건달이었습니다.
그러다 취직이라고 했는데 조그만 시골의 면장 일을 맡아보게 되었습니다.
말이 면장이지 매일 술집에서 술이나 마시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그것도 공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술집 주인들이 술값을 달라는 법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방이 술집에 나타나면 주변에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어 매상이 몇배로 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유방의 얼굴만 봐도 즐겁다며 줄줄 따라다닐 정도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결혼은 선보현의 작은 고을의 현령(現 군수 정도) 呂公의 딸 여치(呂稚)와 하였는데, 여공은 유방의 관상을 보고 장차 크게 될 인물이라며 부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시켰습니다.
유방은 패현에서 현청의 관리로 있는 소하(蕭河)와 조삼(趙參)의 추천과 번쾌 등 지역 주민들의 만장일치로 패현의 현령이 되었는데, 너도나도 진나라 토벌군에 지원하겠다고 하여 모여든 군사는 1만명이나 되었습니다. 유방은 그 우두머리로 등단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1만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진나라 토벌길에 오르게 되었으며 초나라 회왕으로부터 항우와 함께 토벌군의 장수로 임명되었습니다.
그길로 진나라 수도 함양으로 진격하게 되었으며 함양을 선점한 후 홍문의 잔치 이후 항우와 갈라져 패권을 다투게 되었습니다.
최후의 전장(戰場)인 해하(垓河)에서 항우를 물리치고 漢나라를 창업(創業)하였습니다.
유방은 특별히 공부한 것은 없으나 참모들의 조언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솔선수범하는 기질이 있었습니다.
유방은 항우와 지루한 전쟁을 끝낸 후 신하들을 위로하는 연회석상에서 "짐이 천하를 얻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든지 기탄없이 답해보시오."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신하들은 전하의 탁월한 지략과 높은 덕망 때문이라는 등 감언이설로 유방을 추켜세웠습니다.
그러나 유방은 "그건 잘 모르고 하시는 말이오. 나는 천막 안에서 작전을 세우고 천리 밖에서 승리를 다투는 일에는 장량(張良)만 못하고, 내정을 다스리고 군량을 조달하며 보급로를 확보하는 일에는 소하(蕭河)만 못합니다. 또 백만대군을 지휘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일은 한신(韓信)만 못합니다.
이분들이야말로 영웅들입니다. 나는 이 세분들을 뒤에서 조종하여 천하를 얻게 되었습니다."라고 겸손해 하며 "항우는 유능한 모사 범증 한사람도 활용하지 못해 나한테 진 것이오."라고 하였습니다.
한고조 유방은 말년에 자신의 판단 잘못과 황후 여치의 농간으로 명장 한신(韓信)을 죽이는 실수를 범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그는 사후에 일어날 잔혹한 살상(殺傷)과 권력다툼은 상상도 못하고 기원전 194년 화려한 장락궁에서 파란만장한 53년의 일생을 마감하니, 항우가 죽은지 7년만이었습니다.
천년만년 권력을 유지할 것 같이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들도 백년을 살지 못하고 이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