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 부르는 노래
어저께 날이 맑고 화창해서 빨래를 했습니다. 물론 소소한 빨래야 자주하지만 겨우내 신세를 진 겨울 이불하고 요를 세탁기에 넣고 요란을 떨었지요. 천진암 벗님네야 그것도 일이냐 하시겠지만 제겐 엄청 큰 사건이지요.
그동안 공장 곳곳을 고치고 페인트 칠까지 큰공사를 벌인 탓에 집에 올라가지 못하고 죽 이곳에서 지내왔습니다. 더우기 옥상에는 방수 공사를 하고선 방수 페인트를 칠했는데 엄청 색갈이 고와요. 녹색으로 칠해놓으니 옥상에서 살고 싶더라니까요. 페인트 마르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어제 대사를 치룬 거지요.
흠~ 세탁기도 올해 새 거로 바꿨거든요. 전에 세탁기는 돌리면 천둥이 치듯 요란법석을 떨었는데 이제는 가벼운 윙 소리가 꿈결 같아요. 세계 시장 점유율이 으뜸인 우리나라 가전제품인데 어련할려고요. 이불하느라 한 번, 요하고 등산 다니느라 나온 세탁물 한 번, 재미가 나서 뭐 없을까 챙겨서 또 한 번 살림 사는 재미가 여간 재미 나는 게 아닙니다. 아내가 살림사는 거를 유세 떨 때 측은하더니 이렇게 재미나는 걸 지 혼자서 즐긴 거 아니야! 아내가 괘씸했습니다. 오히려 흥미 만점인 장난감을 가진 것처럼 제가 신이 났습니다.(아이구 노는 게 가관도 아니구먼)
세 번이나 옥상 출입을 하면서 그 많던 빨래를 널었습니다. 봄에 어울리게 색감 좋은 초록색 옥상, 그 위에 빨래줄을 매고 각종 빨래를 널었습니다. 내 체취가, 혼자 있는 몸이라 총각냄새가 나는 퀘퀘한 옷가지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살래살래 몸을 맏기고 춤을 추나봅니다.(댄싱 위드 스타 보시나요?) 바람에 따라 자이브를 출 때도 있고 차차차를, 룸바를 추기도 하겠지만 어제는 왈츠 같이 점잖은 춤을 하느적하느적 출 뿐이었습니다. (우아한 나타샤 왈츠 정도는 춰야하는데 그지요! 겨우 지루박하고 부르스나 땡기는 제가 챙피하더라고요 ....댄싱 위드 스타를 보면서 아내가 비난했음)
그리곤 장을 보러 마트에 갔지요. 장 보는 마트도 여기서 10킬로가 넘습니다. 실파가 워낙에 비싸서 쏘주에 파전을 부칠까하다가 관두었지요. 김치가 떨어져 종가집 맛김치 500그람짜리로 하나 사고 계란을 제일 싼놈으로 한 판 샀지요.(오해 마시라, 집에 올라긴 지 오래되어가꼬) 그 다음엔 뭘 샀더라? 저도 치매끼가 있나 생각이 나질 않아요.
오다가 제일 기름값 싼 주유소, 세차시설이 된 곳을 찾노라 한참을 돌아다녔구요. 제 똥차, 사고선 처음으로 세차한 거네요. 차 보기가 여간 미안한 게 아니더라고요. 스마트폰으로 인증샷을 하고선 온갖 요란을 떨며 전송을 해야하는데 제가 반컴맹이라서 생략.
제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는 이제부터
돌아와서 헉헉~ 숨 차라. '나는 카수다'를 봐야잖아요. 밖이 어둑해지는가, 불현듯 옥상에 둔 빨래가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이불하고 요에다가 온갖 허접쓰레기 같은 제 빨래를 챙겨서 내려오니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게 아니겠어요. 기가 막히지잖아요. 똑 떨어지게 시간을 맞춰 빨래를 거두었으니까 말예요. 쌍쾌무비해서....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니까요. 한참 카수다를 보는데 그제야 오늘 세차한 차가 생각나는 게 아니겠어요. 처음으로 목욕 시켜 준 날 하필 비가 오다니 미안하기 그지없더라고요. 빨래 걷은 걸 통쾌하다고 했는데 내 애마, 비를 맞출 줄이야.
종가집 김치 한 보시기 놓고 카수다에 넝쿨당을 보면서 쏘주를 마시는 기분, 그저그만이예요. 집에 올라가 보세요. 단번에 채널 권 빼앗기고 ...아내는 남극의 눈물이니 무척 고상한 걸 보노라고 제 취향을 통속적이라고 비난한 함. 넝쿨당하고 카수다에다가 불후의 명작을 즐기시는 벗님네들! 우리 아내를 비난해 주시기 바람. "꽃사랑 아내되는 여인이여! 고상한 척 하들 말어. 세상사는 게 바로 통속적인걸"
제가 이렇게 삽니다. 이곳 숙소에서 사는 게 얼마나 재미 나는 일인지 제 아내만 몰라요. 제 친구들은 절 제일 부러워 하더라고요. 왜요? 아내랑 떨어져서 혼자 사니까! 6십이 넘으면 아내가 가까이 오기만 해도 무서워요. 그래요 소신 껏 삽니다. 자리에 누우느까 새로 꺼낸 봄 이불호청의 까칠한 촉감. 아~ 세상 사노라 잊어버렸던 상큼한 추억처럼 꿈나라로 갑니다.
화창한 날, 봄이불하고 요를 옥상에서 말려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넌 겨울 이불을 여태껏 덮고 이제야 봄이불을? 제 옷처럼 모든 게 그렇습니다. 여름 옷, 겨울옷 두 가지만 있습니다. 그럼 여름 이불은? 여름에야 덮을 게 뭐있습니까? 그냥 훌러덩 벗고서 자면 그만인 걸.
햇볕에 자글자글 튀김을 한 이불에서, 등어리에 붙은 요에서 솔솔 향기가 나겠지요. 햇님이 전하는 말씀, (얼릉 무릎을 꿇으세요.) '그냥 순리 대로 살아라' Let it Be (비틀스의 메카트니가 부른 노래) 어렵소 마더 메리하고 같은 말씀이네.
튀김 이불에서 자노라면 세상 근심에서 불면의 나날을 보내고 계실 벗님네들! 곱게 치장을 한 마차에 태워서 꿈나라로 데려갈 거고 몸에 무지 좋다는 비타민이 무진장 쏟아나올 것만 같지 않으세요?
창문을 열고 자노라 바깥에서 나는 소리, 개구리가 울고 이름 모를 벌레가, 별님이 속삭이는 소리와 푸른 솔가지 사이로 날아가면서 푸드득 까투리 날개짓 소리하고 공장 한 곁에 사는 들고양이 울음까지
주인이 잠들었다고 저들 세상입니다.
아참~ 공장 한 켠에서 가꾼 얼갈이 배추 솎은 거 가지고 쌈 싸먹었습니다. 괜시리 마음이 푸른 하늘로 달아날 것 같은 여름날 저녁입니다. 제가 빨래 널은 걸 가지고 수다가 많다고요? 여기서 하루 종일 말 한 번 할 일이 좀 처럼 드물어요. 그래서 수다가 많아졌습니다. 사람이 그리워서 그렇습니다. 죄송하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