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방공호 위에
어쩌다 핀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호 안에는
아예 들어오시질 않고
말이 숫제 적어지신
할머니는 그저 노여우시다
-진작 죽었더라면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지 않았으련만......
글쎄 할머니
그걸 어쩌란 말씀이셔요
숫제 말이 적어지신
할머니의 노여움을
풀 수는 없었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인젠 지구가 깨어져 없어진대도
할머니는 역시 살아계시는 동안은
그 작은 꽃씨를 받으시리라.
<박남수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전문>
오래 전 읽었던 시를 다시 접하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도 전쟁 중인 듯, 할머니와 손주는 공습을 피해 방공호에서 생활하는 듯하다.
‘방공호 위에 / 어쩌다 핀 / 채송화 꽃씨를 받으’시는 할머니의 표정은 노여움으로 가득차 있다.
혼잣말로 내뱉는 ‘진작 죽었더라면 / 이런 꼴 / 저런 꼴 / 다 보지 않았으련만....’이라는 표현.
옆에서 지켜보는 손주는 ‘글쎄 할머니 / 그걸 어쩌란 말씀이셔요’라고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자그만 채송화 꽃씨를 받으시는 할머니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듯히다.
전쟁통에 벌어졌던 수많은 일들을 애써 지우려는 할머니의 행동이 작품에서 많은 것들을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