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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철학자의 시선으로 <논어>를 읽고, 그 내용을 소재로 다양한 생각을 펼쳐낸 에세이집이다. ‘김영민의 논어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으며, 논어의 내용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 저자가 바라보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그동안 <논어>의 번역본은 적지 않지만, 대체로 주자의 주석본을 근거로 번역과 해설을 첨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책의 편제나 구성이 조금씩 다를지라도, 전반적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논어>를 특정한 해석에 틀에 가두기보다 공자 당대의 역사적 상황을 통해 이해하고, 그 내용을 오늘의 관점에서 음미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유가의 경전 가운데 하나인 <논어>는 공자의 어록을 중심으로 엮어낸 책으로, 그 내용에는 공자와 제자들이 펼쳐내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내용은 매우 간략한 경우가 많아, 대화의 전후 맥락을 통해 그 의미를 탐구해야만 한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대체로 주자의 주석본을 대상으로 강독과 번역이 이뤄져 왔다. 때문에 해석의 다양함을 추구하는 대신, 주자의 해석에 일방적으로 의존해야만 했다. 개인적으로 처음 읽을 때는 주자의 상세한 주석으로 인해 내용 이해에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번 반복해 읽으면서 주자의 주석이 공자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 역시 기존의 <논어>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졋던 것 같다. 때문에 번역이 아닌, 에세이라는 형태로 <논어>에 대해 나름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실상 이 책의 내용은 이미 신문에 연재되었을 때 정독을 한 바 있기에, 나로서는 두 번째로 대하는 내용들이다. 당시에는 2주에 한 번씩 연재되어, 집중해서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이번에 다시 읽었을 때, 비로소 <논어>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과 문제의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저자는 주자가 구축한 공자의 ‘신화적’인 모습에 갇히지 말고, ‘인간 공자’의 면모에 다가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 나 역시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모두 24개의 글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서문에 해당하는 ‘메니페스토’와 4개의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저자는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는 제목의 서문(메니페스토)에서, ‘<논어>에 담긴 생각은 이미 죽었다’고 선언하고, ‘<논어>의 언명은 수천 년 전에 발화된 것’이기에 ‘그 언명에 의해 원래 의미를 부여하던 맥락들 역시 역사적 조건이 변화하면서 오래전에 사라졌’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어떤 생각이 과거에 죽었다는 사실을 냉정히 인정함을 통해 비로소 무엇인가 그 무덤에서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기에,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라 하겠다. 이러한 저자의 독법이야말로 <논어>를 하나의 ‘경전’이 아닌 '텍스트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 시각을 획득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논어> 자체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속에서 현대인들이 간취해야할 문제들을 하나씩 꺼내어 짚어보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침묵의 함성을 들어라’라는 제목의 첫 번째 항목에서는 모두 4개의 에세이를 통해서, 영화나 책들을 통해서 상기되는 문제들을 <논어>의 문제의식과 연결시켜 논하고 있다. ‘실패를 예감하며 실패로 전진하기’라는 두 번째 항목에서는, <논어>에서 언급되는 유가의 중요 개념들을 저자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예컨대 ‘인(仁)’은 ‘신의 가호에 회의를 품게 된 시대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경(敬)’은 ‘완성을 향한 열망’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식이다. 여기에서 다뤄지는 키워드는 모두 8개로, 두 개를 제외하고 ‘정(正)’ ‘욕(欲)’ ‘예(禮)’ ‘권(權)’ ‘습(習)’ ‘지(知)’ 등이다.
세 번째 항목 역시 7개의 키워드를 통해서 서술되고 있는데, ‘회전하는 세계의 고요한 중심에서’라는 제목을 붙여 두었다. 도가(道家)의 핵심적인 사상으로 표현되는 ‘무위(無爲)’라는 표현이 ‘위령공’편에 등장하는데, 저자는 이를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밖에도 ‘성(省)’ ‘효(孝)’ ‘위(威)’ ‘사(事)’ ‘재현(再現)’ ‘교학(敎學)’ 등이 여기에서 다뤄지는 개념들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스크랩과 대조해 보니 나머지 원고들은 이미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들이지만, ‘돌직구와 뒷담화의 공동체 ?교학’이라는 내용은 이 책에만 수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아무래도 공자와 제자들과의 학문이라는 문제가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해서, 나중에 첨가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성급한 혐오와 애호를 넘어’라는 제목의 네 번째 항목에는 모두 3개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논어>와 고전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내용들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유교’라는 단어가 오늘날 ‘유용한 동시에 무용한 단어’라 평가하고, ‘사람들이 어떤 때 이떤 이유로 유교라는 말을 환기하고 사용하려 드는가에 주목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단언한다. 또한 ‘에필로그’를 통해서, <논어>를 역사 속의 텍스트로 인정하고 ‘텍스트를 공들여 읽고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동학(同學)들과 <논어>를 읽으면서 다양한 해석서들에 나타났던 아쉬운 점을 인지하고 있기에, 나 역시 저자의 이러한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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