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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흥미롭고, 또 그 내용과 형식 또한 파격적인 소설이다. 앞부분을 읽을 때는 옴니버스 형식의 단편 모음집이라고 생각했지만, 표지에는 분명히 '장편소설'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목차에는 그저 사람의 이름이 나열되고 있으며, 각각의 항목들은 해당 인물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여느 단편보다 짧게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계속 읽다보면, 앞에 소개되었던 인물들과 나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고 있었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마치 퍼즐처럼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다른 인물들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전 인물들의 성격이나 특징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즉 해당 인물을 소개한 부분에서는 알 수 없는 정보들이 다른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상세히 설명되기도 한다.
서울 근교 도시의 종합병원에서 시작되는 등장인물과 그에 관한 에피소드는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어, 새로운 인물들과 사연들을 불어오는 형식이 흥미롭게 여겨졌다. 종합병원의 응급실과 여러 병동에서 활동하는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병원의 다양한 직역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이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진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들과 연결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서 작품의 배경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의 다양한 면모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100시간에 가까운 노동을 하는 종합병원 응급실의 의사들, 비정규직과 동성애자 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의 형상들이 소개되기도 한다. 아파트 층간 소음에 시달리는 가족들의 면모가 등장하는가 하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무기로 사회적 약자를 찍어누르려고 하는 군상들도 작가의 시각에서 조명되고 있다.
작품을 다 읽고 책의 말미에 수록된 '작가의 말'을 통해서, 이 작품의 성격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혹은 '모두가 주인공이라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을 쓰고 싶어 시작했다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도 50명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로 붙였을 것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연재하면서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50명의 얼굴이 아는 사람의 얼굴처럼 선명해졌'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인 나로서도 등장인물들의 관계나 전체적인 내용이 하나씩 또렷하게 윤곽을 갖춰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좀처럼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식을 통해, 다중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장편소설'로 만들어낸 작가의 시험적인 시도가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처음에는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점차 작품에 빠져드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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