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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정착시키면서, 어린이 운동에 헌신했던 방정환의 글들을 엮어 펴낸 책이다. 시조나 가사 등 고전시가에서 ‘어리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지만, 그 의미는 ‘어리석다’ 또는 ‘미숙하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서경덕의 시조 초장에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어리석고 미숙한 마음가짐으로 인해서 하는 일조차 어리숙함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방정환은 이러한 표현에서 ‘어린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으며, 비록 미숙하지만 당당한 ‘사회적 존재’로서 그들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던 것이다.
미숙하지만 온전한 주제로 ‘어린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어린이는 어른보다 새로운 존재’라는 이 책의 부제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하겠다. 그가 만들었던 ‘어린이날’은 이제 대표적인 국가 공휴일로 자리를 잡았으며, 명실공히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31살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어린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조선소년연합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각종 글을 기고하고 동화를 창작하는 등 ‘어린이 운동’에 적지 않은 업적을 남겼다. 이 책에는 <어린이>를 비롯한 <개벽>과 <별건곤> 등의 잡지에 방정환이 기고했던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의 글에는 ‘어린이’의 권리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학생이나 여성의 인권과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논하는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다.
모두 3항목으로 구성된 목차에서, 첫 번째는 ‘새로 쓰는 동화’라는 제목으로 모두 10개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원시사회의 인간이 어떻게 집단을 이루고 계급이 나뉘고 빈부의 격차가 생기는가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깨어 가는 길’이라는 동화가 가장 앞에 수록되었고, 이어지는 글들은 단순히 ‘이야기’가 아닌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어떻게 창작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스스로 ‘작가로서의 포부’를 드러내는 글이 있는가 하면, ‘새로 개척되는 동화에 대하여’나 ‘어린이 찬미’ 그리고 ‘동화 작법’ 등을 통해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생각들을 펼쳐내고 있다. 여기에 ‘이혼 문제의 가부’는 당시 사회적 약자로 자리하고 있던 여성들의 처지를 헤아려서 이혼이라는 문제를 고민해야한다고 역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러한 문제의 연장선에서 ‘미혼의 젊은 남녀들에게’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진심과 신뢰를 바탕으로 결혼을 생각해보도록 권고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2장에서는 ‘나와 우리의 이야기’라는 제목 아래,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어린이와 학생의 사회적 처지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천도교에 대한 생각들을 펼쳐 보이고 있다. 저자가 7살 때 누군가를 따라 학교에 갔다가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교장의 말에 덜컥 긴 머리를 자르고 와서, 집안 어른들이 그것을 보고 난리가 난 것처럼 반응했던 ‘옛날 학교 이야기’는 20세기 초반 사회의 분위기를 말해주는 듯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입사 면접에서 사회 저명인사들의 추천장을 들고 온 사람이 아닌, 초라한 행색이지만 아무런 추전장도 없던 이를 채용했던 일화를 소개하는 글이었다. 추천장을 들고 온 이들은 자신 있는 발언으로 능력을 강조했지만, 추천장이 없던 응시자는 자신의 신발을 정돈하고 주변에 떨어진 책을 책상에 올려놓는 등 행동으로 자신의 성실함을 증명해서 뽑았다는 내용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취업을 위해 자신의 경력을 뜻하는 ‘스펙’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지만, 결국 그보다는 내면의 품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내용이라고 이해된다.
마지막 3장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모두 8개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 역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학생과 여성들에게 들려주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형사의 감시를 받으며 생활했으며, 자신을 감시했던 형사들과 인간적으로 교유했던 솔직한 이야기를 ‘미행당하던 이야기’에서 풀어놓고 있다. 자신의 의사도 묻지 않고 강연한다는 광고를 먼저 내고, 정작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저자 자신은 나중에 지인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면박을 받기도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는 ‘선전시대’라는 글의 내용은 누군가의 명성을 악용하는 세태에 대한 씁쓸했던 소감을 피력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로서 방정환의 업적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가 지녔던 소신과 운동에 대한 신념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사회적 약자로서 어린이와 여성, 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방정환의 관심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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