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여전히 당신
고백의 위험
장작을 태우며 연기와 한 몸이 된다
나 참 오래 젖어 있었구나
몸도 마음도 푹 젖어 그것도 모르고 제단 앞에
슬프면 엎드렸구나
이 저녁
몸을 태우는 일이 가장 엄숙한 의식이라 한다면
불길을 바라보는 일도 한 생을 마주하는 일이라 한다면
바싹 잘 마른 장작도 못되면서
밤마다 고백이라니
나무의 심장이었는지, 노래였는지
어쩔 수 없이 사그라지는
오늘 내가 태워버린 이 나무의 기록들은
어떤 형상으로 몸을 뉘어 갔을지
아니면 서쪽 바람을 따라 다시 나무에게로 돌아갔는지
연기의 감정만 자욱한
언제나 나는 나이기 위해서 울었었지
갓 자른 나무일수록 축축해
오늘 저녁도 나는 젖은 연기를 토해놓을 것이다
저녁에 새들은 왔던 곳으로 날아간다
어쩌지 못한 마음이 왜 점점 새 한 마리로 날아가게 되었는지, 어쩌다 서녘 구름을 타고 훨훨 우주 바깥으로 날아가길 원했었는지, 어둡고 흐릿한 그곳만 바라보며 종일 노래 하게 되었는지, 흰 꽃나무에서만 울고 잎 붉은 다른 나무엔 왜 도무지 옮겨 앉지 못하는지,
배롱나무가 붉게 타오르는 동안
한 나무에 닿고 싶었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서쪽은 아무나 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
그 속에 경계가 있어 우리가 그렇게 적막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그래서 낮과 밤이 있는 것이라고
당신은 여전히 당신
창문 앞 동산이 꽃을 피우느라 눈을 감았다 떴다 어지러운가 보다
좋은 시 몇 편을 옮겨오는 나도 어질어질
눈가가 침침하다
아침부터 시 읽기에 잠기고 꽃 번짐에 잠기다
저 봄볕에 화르르 발가벗고 싶은 충동
몇 년째 코로나19 마스크를 하고
내뱉은 숨을 내가 다시 먹고 살아도
봄은 여전히 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라고 읽는
이 기묘한 날들의 후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