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가 마흔이 넘어서 낳은 늦둥이 자식이 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태어난 남동생이다.
그러니까 나와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인 셈이다.
처음엔 엄마가 동생을 가졌다는 사실을 몰랐었고, 배가 점점 불러 오자 그때야 알게되었다.
어느정도 다 큰 자식들이 넷이나 있는데 뜬금없이 생긴 자식 때문인지 따로 말은 안하셨다.
엄마도 한편으로는 민망했으리라.
그때 당시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는 누구네집 늦둥이가 태어난 사실에 그 일대 동네 아줌마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에 충분했었고 소문이 쫘아 하니 퍼져 있었다.그 동네에서는 내가 아주 어렸을적부터 오랫동안
살던 동네인지라 왠만큼 오래 산 사람들은 누구네집 하면 다 아는 우리 집이었다.
엄마가 늦은 나이에 애를 낳게 되면 늦게 까지 뒷바라지 해야 하기 때문에 고생스러울텐데
어떻게 살라고 하느냐 하며 염려스러움과 걱정때문에 그야 말로 엄마에게 투정아닌 투정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낳고 보니 핏줄의 당김은 어찌 할 수 없음이라 정말 귀엽고 예쁘기만 하였다.
그때 당시 우리집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였던 듯 싶다.
형이나 누나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자란 우리집 막내.
동생을 돌봐야 하는 일은 나와 내 여동생 몫이여서 나는 주로 부엌일이나 기저귀를 많이 빨았고
동생은 어린 남동생을 업어주는 일을 주로 많이 했다.
동생을 보는 일은 귀엽고 예쁘지만 나에게 할당되는 일이 많아서인지 나로 하여금 짜증과 함께 불만이
쌓여 갔다
하루는, 기저귀 빨아야 하는데 하기 싫어서 그대로 놔두고 TV를 보고 있는데 기저귀를 안빨아 놨다고
엄마에게 호되게 지천구를 듣게 되었다.
나는 그게 몹시 서운해서 울면서 기저귀를 빨았던 기억이 난다.
여동생은 주로 업어주는 일을 많이 해서였는지 한번은 포대기가 아닌 기저귀로 띠를 두르고 어린 동생을 업고
옥상에 올라가 서성거리며 있었던 뒷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한 부분이다.
동생이 유치원 다닐 때 유치원에서 행사가 있는 날 이면 엄마가 참석을 해야 하는데
엄마는 늘 일하느라 바쁜 관계로 행사에 참여 하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니였다.
그럴때면 가끔 한번씩 엄마 대신 참석하기도 했었다.
어느정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성장하면서 어렸을적에는 곧잘 놀던 아이가 커가면서 말이 없어지고 집에 있을 때
말 하는걸 도통 보기가 드물었다.그게 너무 염려스러워 엄마에게 물어 본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있는지, 학교 생활은 잘 하는지,친구들과의 유대관계는 좋은지......
엄마도 그런일 때문에 학교 담임 선생님께 여쭤 봤더니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활발하게 잘 지낸다는 것이다.
그소리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었다. 그러나 내 마음 한구석에는 왜 그리 짠한 마음이 드는지.....
또래의 부모들에 비해 나이가 많은 엄마, 아빠와 위로 형 둘은 나이 차가 많이 나 놀아 줄 형편도 못 될 뿐더러
몹시 어려웠을테고 그나마 누나들이 좀 더 나았을텐데 큰누나인 나는 일찍 시집을 가버리고 작은 누나는 대학 다니느라 바쁘고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에 겪을 수있는, 비슷비슷한 또래의 형제들끼리 서로 부대끼며 겪는 끈끈한 형제애가 주는 유대관계의
부족함으로 겪는 외로움이 컸을 것이다.함께 자라지 못한 어린 동생이 겪었을 외로움.....
엄마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입원 해 계실때면
"막내 저거 결혼이나 시키고 죽어야 할텐데......"
"내가 그것을 보고 죽을 수 있을지......"
하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볼 때면 괜한 걱정을 한다며 투박을 줬던 일도 있었다.
몸이 병들면 마음까지 약해져 그럴것이다.
아들 둘 딸 둘 다 시집 장가 보내고 마지막 남은 막둥이 짝을 못 지어 주고 잘 못 될까봐 마음에 돌부리 걸리듯
딱딱한 아픔이었던 것이다.
학교 다니며 말썽한번 부리지 않고 엄마 속 한번 끓이지 않고 자라 온 착한 내동생이 이제는 장가를 가서
벌써 둘째 아이를 출산하였다.
엊그저께 병원에 가서 봄(태명) 이를 보고 왔다.
어쩜 아이들을 보면 눈이 먼저 웃게 되고 저절로 입이 귀에 걸리게 되는걸까 새로 태어난 새 생명때문일까
아니면 아이가 주는, 아이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순수함때문일까.
내게는 늘 어리게만 보이는 늦둥이 막내 동생이 이제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책임감이 막중하다
어깨가 좀 더 무겁게 보여 또 짠하다.
첫댓글 엄마 동생과 같이 키운 막내동생이라 더 정이 가겠지요.예쁘고 귀여운 동생.힘든 중에도 정이 소록소록.이제 두 아이 아빠가 된 모습을 바라보는 누나의 깊은 심정을 봅니다.나도 엄마가 마흔에 낳으셨구요,바쁜 엄마 대신 큰언니가 키웠데요.언니들 틈에서 자란 거지요.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꿈에 보였는데 나에게 이렇게 말하십니다.'널 시집보내고 가야하는데.."그 한마디가 아직도 생생합니다.하늘에 가시면서도 그게 참 걸렸던 모양이에요.엄마 대신 동생들에게 엄마노릇한 영주님,그래서 참 속이 꽉차고 어른스러워 보입니다.큰딸과 막내딸의 차이는 남들도 느끼지요.
저희집도 맏이인 언니가 10살 아래 막내 남동생을 사랑합니다.꼭 kim youngju님이 사랑하시는 것 처럼.
엄마같은 마음,엄마같은 눈길로 사랑합니다.
큰 누나.엄마같은 큰 누나에 대한 사랑, 작은 누나에 대한 사랑의 빛깔과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