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대형 시계가 갑자기 멈추자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백 명의 사람들이 백 개의 시계를 가지고
백 개의 세계로 흩어졌다
어떤 사람은 출근하고, 그 시각에 어떤 사람은 퇴근하고
어떤 사람은 점심을 먹고, 그 시각에 어떤 사람은 저녁을 먹었다
자다가 일어나 노래하기도 하고
외치다가 밥을 먹고 먹다가 다시 눕고
누워 불면과 싸우다가 아침 해가 뜰 때에야
잠들기도 했다.
지상의 시계가 멈추자 하늘도 걸음을 멈추었다
라디오에게 시간을 묻고자 했지만
어떤 라디오는 노을이 붉으니 날이 밝을 것이라 하고
어떤 라디오는 노을이 붉으니 밤이 깊어질 것이라 한다
라디오들은 왼쪽과 오른쪽에서 떠들어대고
혹은 공중과 깊은 우물속에서도 외쳐댔다
라디오에 대한 오랜 신앙을 차마 의심할 수 없어
주춤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진실과 궤변 사이에서 흐느꼈다
달이 한번 기울고 커졌다가 다시 기울도록
광장의 시계는 살아나지 못했다
그저 멈춘 그 시간은 40년 전 시간 같기도 하고
120년 전이나 500년 전 같기도 했다
변함없이 오고 가는 낮과 밤만이
우주시간의 불변성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비로소
태초부터 존재해온 불변의 시간을
신중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은총이다.
(丁明, 2025. 01. 10)
#광장 #시계 #불변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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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몇 시인가.
고장난 라디오에게 묻지 말고
하늘의 日月星辰에게 물어야겠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떠오르네요^^
첫댓글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오랜만에 만나네요.
시와 이미지의 앙상블이 최곱니다. 이미지는 재옥 선생님이 픽했는지요. 센스가
작가께서 시와 함께 올리셨어요.
.
(시인의 말씀)
글을 쓰는 사람은 뭔가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었으면 하지만.. 세상은 그리 쉽게 달라지지 않는 듯합니다.
역사를 쓰든 詩를 쓰든 소설을 쓰든..
펜을 든 사람들에게는 크고 작은 바람이 있게 마련이지요.
그래도 代를 이어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게..
호머의 후예들이 품고 있는 무언의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