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미시령 고개를 지나
속초시내로 들어오다 보면, 장엄한 바위산이 보인다.
울산바위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응암역에 내리면 왼쪽으로는
신사동이 오른쪽으로는 역촌동이 나온다.
응암동 초행길이면, 누구에게 물어야 알 수가 있다.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필요한 것이 있어 나서는 일이다.
필요없이 나가는 법칙은 자연에는 없다.
금강산 일만이천봉 공사 한다고 천하에 공표를 한다.
모든 바위는 참석해도 좋다고,
울산에 있던 바위산도,
자신이 이곳에 머물기 좁다고 생각을 하던차에 ,
금강산 소문을 듣고
두 번 다시 이런 시골에 오질 않는다고,
자랑 하면서 금강산으로 향한다.
가는곳마다 머물러 달라고 청을 한다.
울산바위는 내가 갈 곳은 금강산 일만이천봉과
경합 한번 해 본다고,
오늘 설악산 이곳에 당도하고 보니
경치가 천하 절경이다.
바다가 보이고, 주변에 아무도 대적 할 바위가 없다.
앉고보니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경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금강산에 도착을 하니,
이미 일만이천봉이 채워져 갈 봉우리는 없다.
낙심을 하고, 울산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자랑한 것 때문에 체면이 안 선다.
다시 돌아가는 길에 머물던 이 곳 설악산에 자리를 잡는다.
바위가 싫어,
봉우리로 살고자 출발 했는데,
이곳에서는 울산바위로 살아야 한다.
울산에 있는 바위라면 이름이라도 있을텐데,
설악산에 있다보니 울산바위라는 이상한 이름이 지어진다.
금강산 어느 봉우리보다 더 잘나가던 바위가,
봉우리가 되지 못하고,
다시 바위로 남아 후대 전설로 전해진다.
응암동 없는 곳에 응암역이 생긴 원리도 마찬가지다.
무엇 때문에 이 지하절이 생겼는가?
2002년 월드컵이 아니라면 생기지 않을 역이다.
역사가 보여지는 건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연구하라고 보여준다.
수 많은 신동이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는 원리도
이 많은 재주를 어떻게 쓸 것 인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쓰면 사라지는 것이고
공적으로 쓰면 빛나는 삶을 만들어간다.
금강산에 간 일만 이천 바위는,
조화를 이루려고 참석 한 것이고,
울산바위는 자랑 하려고 간 것이다.
오늘 내가 어디로 간다면 정리를 해야 한다.
누구와 무엇을 하고,
어떤 대화를 한 것인지
명분이 있어야 저장이 된다.
본 것과 들은것은,
다음에 대화를 할 때 파일이 스스로 풀려
쓸 수가 있다.
물을 풀어보면 HO2다.
수소 2개와 산소 한 개가 결합이 되면,
최소한의 답을 낼 수가 있다.
작심3일이고, 삼세번이고, 세 번에 기회를 주고,
삼신에게 기도를 하고,
수 많은 말들이 천년 만년 우리에게 전해진다.
이것이 무엇인가를
연구하면,
무엇이든 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절에도 불,법,승이고, 천주교도 성자와 성부와 성신이다.
이 나라 대한민국은 천,지,인 사상이다.
모르는 것도 세 번만 생각을 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는 시대를 연다.
울산바위에 간다면,
다시 새로운 생각을 하고 와야 한다.
무엇인가 욕심으로 간 것은 없는지,
왜 저 아름다운 바위가 봉우리가 되지 못했는지,
그것만 풀고 와도 삶이 다르게 보인다.
세상에 그냥 그 지역에 사는 법칙은 존재하질 않는다.
왜 그런지 노력을 해야,
지나가던 어른이 설명을 하든
공원에서 누군가 이야기하면서 가르켜 준다.
들으려고 해야 들리지,
귀를 막으면 더 이상 들을 수가 없다.
오늘 들어 놓아야 다음에 풀린다.
정리를 해야 설명 할 수가 있다.
자연에 법은 둘이 아니다.
인연으로 보여주고, 환경으로 보여주고, 그래도 한번 더
자연으로 보여준다.
삼세 번 기회를
무시하고 지나가기에 당하는 일이다.
사람은 모르는 것을 하나라도 배우고 가야 어려움이 안온다.
다른 재주와 가 춤이다.
여행을 가면 최소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가야
나머지가 채워지고,
그곳에서 나의 모자람을 채워온다.
자연에 법칙은 두 가지 없다.
새로운 아침이고, 새로운 사람이다.
메일 보는 부부도 늘 아침이면 인사를 한다.
무엇을 깨친 것이 있다면, 나누어 달라고
밤새 안녕히 주무섰는가를...
2023년9월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