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일 080926 가해 강론
1열왕 19:9ㄱ, 11-13ㄱ; 로마 9:1-5; 마태 14:22-33
제가 어릴 적에 가장 좋아했던 책은 할 수 있어! 작은 기차 The Little Engine that Could! 라는 책이었습니다.
내용인 즉 더 큰 기차들도 오르지 못한 높은 언덕을 넘어가는 작은 기차 이야기이지요. 그 작은 기차가 그 언덕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칙칙 폭폭,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하고 끊임없이 되뇌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마침내 진짜 “해낼 수 있는 작은 기차”가 된 것입니다.
제가 이 동화를 사랑했던 이유는 저에게 자신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크고 복잡하며 어른들이 지배하는 세상 앞에 선 아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처음 세상에 전해졌을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서에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이야기가 담긴 이유도 어쩌면 이와 같은 경우일 지도 모를 일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사가는 교회와 개별 신자들에게 주님의 권능을 온전히 신뢰하도록 용기를 주고 싶었을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던 것은 예수님의 뜻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베드로 자신의 청이었습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 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마태 14:28) 이런 요청은 참으로 독특하고 특별한 요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명해 주십시오.” 라는 것과 같은 요청이었던 것이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불가능한 일을 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너라.”
그러자 베드로는 그렇게 합니다.
정말로 물 위를 걸은 것입니다. 어쩌면 배에서 내려 물을 디딜 때 베드로는 속으로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믿는 동안에는 정말로 물 위를 걸을 수 있었고, 실제로 걸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베드로가 거센 바람을 보고 두려워졌을 때 찾아왔습니다. 베드로의 “할 수 있어”라는 믿음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이성적인 “난 이걸 할 수 없어” 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속절없이 물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주님께 건져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구해주시면서도 동시에 이렇게 꾸짖으셨습니다. “이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마태 14:31)
하지만 베드로가 의심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사람이 물 위를 걷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며, 이토록 비현실적인 일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 법입니다.
우리 역시 베드로와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세상에 평화와 정의를 가져오고, 서로 용서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러고 요청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해 보아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일이 과연 얼마나 현실적인 일일까요? 역사와 인간의 이성, 그리고 우리 자신의 마음까지도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무엇이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요? 작은 기차가 높은 언덕을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갈릴래아의 한 어부가 물 위를 걷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입니다.
SF 작가 아서 C 클라크 Arthur C. Clarke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륜 있고 저명한 과학자가 어떤 일이 ‘가능하다’고 말할 때는 그 말이 맞을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그가 어떤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는 그 말이 틀렸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클라크의 이 말은 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삶의 영역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불가능한지 스스로 미리 단정 지어 버리고 그 바람에 실제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조차 해내지 못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베드로처럼 주님께 불가능한 임무를 맡겨 달라고 청해 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이 불가능한 일을 기꺼이, 아니 열렬히 해낼 원의가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비록 그것이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청이었다 할지라도 자신의 힘으로 걸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를 물 위에 뜨게 해 준 것은 베드로의 신망(信望)에 응답하신 예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어쩌면 베드로가 속으로 되뇌었던 생각은 “내가 할 수 있어”가 아니라,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어,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어,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어!” 였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신을 예수님께 온전히 내맡겼기에, 베드로는 물 위를 건너오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먼저 청하고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믿음이 흔들렸을 때, 그는 물 아래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언제나 기꺼이 우리를 받쳐주고 도우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안전한 일상’이라는 이름의 배 밖으로 담대히 발을 내딛게 해 줄 참된 믿음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을 사랑하려면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베드로는 “주님, 주님이시거든…” 하고 청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의 현존(現存)이시라면, 우리 역시 베드로처럼 불가능한 일을 하게 해 달라고 주님께 열렬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세상이 원한과 비통함으로 끓어오르고 있습니까? “저 더러 용서하라고 명령하십시오.”
세상이 절망의 무게에 짓눌려 비틀거리고 있습니까? “저 더러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라 명령하십시오.”
세상이 희망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까? “저 더러 복음을 선포하라 명하십시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님의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굳건한 신념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나의 좌우명은 이것이 됩니다. “주님께서 하실 수 있음을 알기에, 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가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는 마침내 한 사람의 “해낼 수 있는 작은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첫댓글 녜 신부님. 더운데 건강조심하십시요
신부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일 열대야!
아멘.아멘!
아멘 🙏
감사합니다
아멘
녜 ♡♡♡
신부님. 너무나도 더운 날씨에 몽조심 하시고요. 늘 영육간에 건강하시기 기도합니다
신부님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길요.
복된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늘감사합니다 오늘도주님과함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
무더운날씨
건강 조심하세요
신부님! 감사합니다
이 더운폭염속에서도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신부님의열정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부디 건강하셔요.❤️❤️❤️🙏🙏🙏
신부님 피정의 행복했던 여운이 아직도 맴돕니다.
카페 가입했습니다.
자주 방문하여 신부님 강론말씀안에서 참좋으신 하느님을 만날께요.
건강하셔요.~~
작은 그리스도인~~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 더운 날씨에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아멘!
믿고 희망하고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저는 곤지암성당 권용희 마리아입니다 성모회장님 이 어제돌아가셔습니다 오늘 장례미사 를 해습니다 장귀미 엘리사벳자매님이돌아가셔습니다
엘리자벳자매님의 평화의안식을위해 기도합니다_()_
감사합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