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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8. <순례 1 일차>
9학년이 되어서 오는 첫 순례이다. 그런데 진짜 놀랄 만큼 아무 감흥이 없다. 내가 순례를 하고 있다는 인지만 하고 있을 뿐, 그 외에는 정말 아무 감흥도 들지 않는다. 내가 애초에 이 순례를 산티아고 순례의 준비 정도로만 생각을 했기 때문에 좀 가볍게 생각을 한 것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감흥이 없는 게 말이 되나 싶다. 이 순례도 결국 하나의 순례이니만큼 나에게 주는 것이 분명히 있을 텐데 이렇게 실감을 못 하다가 배움을 놓쳐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든다. 나의 첫 순례도 떠올려 보면서 계속 실감을 해보려 했지만 잘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 순례를 내가 왜 실감하지 못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이번 영산강 순례의 과제인 듯하다.
2023.5.9. <순례 2 일차>
길을 가다가 얘들이 “어! 번호판에 55오 5555로 되어 있는 차 있으면 재밌겠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왜?” 그러자 얘들이 또 말했다. “특별하잖아. 외우기도 쉽고.” 그 말을 듣고 질문이 들었다. ‘ 왜?, 왜 특별한데? 외우기가 쉬워서? 똑같은 숫자가 나열되어 있어서? 그런데 다른 번호판들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잖아. 그럼 그것들도 특별해야 하지 않아?’ 그리고 이런 생각은 곧 인간 사회와 동화되었다. 우리는 자신보다 특출난. 아니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 특별하다. 부럽다’ 이렇게 생각한다. 마치 우리가 비슷한 숫자들이 나열되어져 있는 번호판을 보며 특별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 자기 자신이라는 점에서 그 누구보다 특별하다. 하지만 ‘작은 영혼과 해’라는 책에서 나온 것처럼 특별하다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라는 것이 아니듯 나와 동시에 모든 사람은 가장 특별하다. 우리는 이 점을 잊고 살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거나, 아예 깨닫지조차 못한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나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 얘들이 고마웠다.
2023.5.10. <순례 3 일차>
오늘 누가 걷다가 꾀병을 부려서 수습하느라 시간이 늦춰져서 짜증과 화가 났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 사건을 짚어보니 내가 화가 난 이유가 그 애에게만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화가 난 이유는 그 애가 꾀병을 부려서 늦춰진 것 때문이 아닌, 오늘은 어제보다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내 어리석은 생각 때문이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코스 길이가 짧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마음에는 ‘ 오늘은 어제보다 더 빨리 도착하겠군. 이런 생각이 고정되었다. 이 생각 때문에 내 속도를 잃고 빨리 걸었고. 그 때문에 후반에는 뒤에서 짜증과 함께 천천히 걸어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애가 꾀병을 부렸던, 안 부렸던 짜증과 화가 났을 것란 소리이다. 이렇게 찬찬히 생각해보니 괜히 그 애한테 짜증을 낸 게 미안해졌고, 외부에서 누가 툭 건드렸다고 또 금세 내 짜증을 남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내 나름대로 성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더 주의와 관찰이 필요할 것 같다.
2023.5.11. <순례 4 일차>
슬슬 사람들이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뭔가 기류가 슬슬 날카로워지고 툭 던지는 말에도 가시가 있다. 사실 내가 제일 그런 것 같다. 평소와 똑같은 말을 들어도 괜히 욱하고 다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혹시나 이런 기분에 휩쓸려 실수하지는 않을까 조심하며 지내게 된다.
걸으면서 두 노인이란 책을 생각했다. 나의 질문은 누가 더 진정한 순례를 했는가이다. 나는 엘리샤가 더 진정한 순례를 했다고 시작했다. 순례는 마음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몸의 힘듬은 마음을 배우기 위한 수단일 뿐 순례의 본 목적은 마음에 있다. 그리고 엘리샤는 비록 목적지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마음은 진정으로 충만해졌기 때문에 엘리샤가 더 진정한 순례를 했다고 생각한다.
2023.5.12. <순례 5 일차>
어제 소피움에서 잤다. 소피움은 책이 정말 많은데 그만 거기에 빠져 정작 내가 그때 해아 할 일을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그것도 진짜로 내가 거기에 빠져 내 일을 놓친 게 아니라 알고 있었는데도 모른 척했던 것이었다. 후마께서 바로 일러주셔서 내 나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걸으면서 그때 나의 행동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전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도 이렇게 반성하며 ’다음부턴 이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도 했었다. 근데 또 반복되었다.
앞으로도 반복될 것 같다. 깊게 생각해보니 이렇게 당장에 일을 외면하는 것도 내 오랜 악습중의 하나여서 고치는데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그런 행동들이 조금이라도 내 양심을 찌를 수 있길 바란다.
2023.5.13. <순례 6 일차>
두 사람을 만났다. 먼저 만난 사람이 우리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니?” 우리가 말했다. “담양에서 목포까지 영산강 따라가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또 물었다. “하루만에?” “아니요 6 일차에요.”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다. “너무 느린 거 아니냐?” 그 다음에 또 다른 사람을 만났다. 아까와 똑같은 대화가 오갔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어이구! 빨리 왔네!” 그 두 사람을 만난 후 질문이 들었다. ‘우리는 분명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는데 왜 반응이 정반대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전혀 다를 게 없이 똑같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답을 알아냈다. 차이는 우리가 아니라 그 둘에게 있었다.
먼저 만난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두 번째 만난 사람은 걷고 있었다. 그러니 내 생각에는 첫 번째 사람은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있다고 생각했고, 두 번째 사람은 우리가 걷고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렇게 되니 첫 번째 사람은 우리가 느리다고 생각했고 두 번째 사람은 빠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걸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결국 사람은 어떻게 노력은 하든,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웠다.
2023.5.14. <순례 7 일차>
내가 왜 이번 순례에 대한 감흥이 없었는지 알았다. (이것을 내 질문으로 삼고 있었다.)질문은 7일 동안 가지고 있었지만,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냥 내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애초에 이번 순례를 순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다음에 산티아고 순례라는 굉장히 큰 순례가 있었기 때문에 그 순례의 준비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니 당연히 실감 나지도 않았고, 온전히 이 순례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그 예로, 어제와 오늘, 발바닥부터 발목이 굉장히 아팠는데 남은 3일을 어떻게 걷냐 보단 산티아고 순례를 어떻게 갈 것인가만 생각한 것을 들 수 있겠다. 이렇게 답이오니 내가 순례를 잘한 것인지, 내가 이 순례에서 얻은 배움이 진짜인지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혹시 모든 게 가짜였을 까봐, 더럭 겁도 났다. 하지만 내가 이 순례에서 얻은 배움들은 모두 진짜라고 결론지었다. 얕게 경험했어도 내가 겪은 일들은 모두 진짜였기 때문에.
2023.5.15. <순례 8 일차>
오늘 영산강하구둑까지 다 걷고 목욕탕에 가서 피로를 풀었다. 다 씻고 탈의실로 나왔는데 한 할아버지께서 내가 앉아있던 자리를 뺐고 우리가 보고 있던 TV 채널을 마음대로 돌리시는 등, 불쾌한 행동을 하셨다. 그리고 그걸 나중에 조은호 목사님께 들려드렸더니 그 목사님께서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지나쳐, 그리고 너희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애들한테 함부로 안 하면 되지, 안 그러냐? 그런 걸 반면교사라고 하는 거야”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까지는 나도 생각했지만, 반면교사는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난 여전히 무의식 속에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만 받아들이려 하고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배척하려는 행각이 깔려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23.5.16. <순례 9 일차>
오늘은 순례도 마무리하고 지친 몸도 풀 겸, 걷지 않고 김대중 노벨 평화상 수상 기념관을 방문했다. 거기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생부터 해서, 어떤 목표와 의지를 갖고 살았는지까지 알기 쉽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말들을 책 형식으로 모아둔 전시물을 보았는데 그중에서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남을 비판할 때는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상대방의 사상과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생각한 다음 비판할 것.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 되고 비난은 상대와 나, 모두의 마음에 못을 박는다.’ 사실 조심해야 할 항목이 2가지였는데 2번째는 기억이 안 나서 첫 번째만 적었다. 이 말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인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내가 본 정치인들은 대부분 꼬투리만 잡히면 상대를 비난하기 바빴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는 그것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또 하나의 생존 방법일 수 있다. 아무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고, 비난이 아닌 비판을 해야 한다는 한 정치인의 말은 꽤 신선했다. 그리고 굳이 이 요소가 아니더라도 내 삶은 어땠는지, 내 주변은 어땠는지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게 해준 말이어서 더 기억에 남았다. 오늘 잠깐 기념관을 둘러봤다고 김대중이라는 사람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가 자신의 인생에 목표를 가지고 끝없이 의지를 불태워서 꾸준히 나아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23.5.17. <순례 10 일차>
영산강 순례도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이번 순례에서 제일 많이 느꼈던 것은 내가 많이 무감각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감을 못하는 것이랑은 약간 다르다. 실감을 못 한다는 것은 내가 지금 뭘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무감각은 내가 뭘 하는지, 내가 어떤 상황에처해 있는지는 아는데 그것에 대해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순례를 보면 누가 날 건드려서 내가 화와 짜증을 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정말 차분하게 그냥 저 애는 저러고 싶나보다. 이런 생각만 들 뿐이었다. 걷기를 할 때도 힘들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추가적으로 더 힘들다거나 그러진 않았다.
이 무감각이라는 것을 잘 성장시키면 정말 외부에서 들어오는 작용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길을 걸어가는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통각이 없는 사람들이 칼에 베여도 인지조차 못하는 것처럼 적당한 반응이 필요할 때 조취를 하나도 취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무감각을 잘 컨드롤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도 내 인생의 과제 중에 하나인 듯하다.
이번 영산강 순례는 첫날에 걱정과는 다르게 많은 배움들이 찾아온 것 같다.
시
실감
어떤 것을 실감한다.
하얗고 분홍빛의 꽃을 실감한다.
흐르는 계곡 소리를 실감한다.
스치는 바람을 실감한다.
하지만...어쩌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발걸음
앞을 봐서
앞만 봐서
멈춰선 것만 같을 때는
차라리 자신의 발을 보아라.
그 누구보다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신호등
멈춰선다.
나의 오른쪽이 달리고,
나의 왼쪽이 달려도
때가 되면 가기 위해 멈춰 선다.
너는
밥 뒷정리하다 얘들이 놀아서 짜증난 나에게 들려오는 한마디
“너는 뭐 했는데?”
... 없지
경계선
나는 그냥 걸었을 뿐인데
그냥 내가 오던 길 그대로 걸었을 뿐인데
어느새 다른 도시에 와있었다.
지도에서 본 경계선 따위는 없었다.
5.18 글&시
그날의 광주에게
나는 그날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직접 겪고 함께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전해 들었다’ 라고는 할 수 있어도 ‘안다’라고는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내가 당신들 이야기를 들을 때, 솔직히 말하면 공감이 잘 안 됩니다. 나는 역사적 사실과 그 사건들만을 듣고 배우는 것이니까요. 아마 제가 완벽히 공감을 했다고 하면 그것이 거짓이겠지요. 늘 죄송스런 마음입니다. 당신들에게 공감하지 못해서, 알지 못해서 죄송스러운 마음 때문에 고마운 마음도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죄송스럽고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감정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의 임무는 당신들의 묘 앞에서 곡을 하는 것이 아닌, 당신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 그것을 당신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지켜내고 개척해나가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앞으로는 고마운 마음을 진심으로 전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당신들이 지켜내 준 이 세상에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려 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고마운 마음도 들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신이 지켜주신 이 세상에서 제가 할 수 있을 만큼 힘껏 날아보겠습니다.
당신들이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는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누가 저에게 ‘네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이냐?’하고 묻더군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당신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당신이 바라던 민주주의는 무엇인가요?’ 당신들이 대답해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 든 저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저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겠구나, 저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자신의 의사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사회였을 것 같다.’ 이렇게 물어보고 나니 저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감이 좀 잡혔습니다. 저는 생각하는 사회가 민주주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옛날보다 훨씬 더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근데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다 비슷비슷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 아닌 사회의 공동의식만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진짜 자신의 생각을 알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라가 돌아간다면 더 풍성해지고, 또한 진짜로 각자가 나라의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보였습니다.
앞으로도 당신들과 그날에 대해서 착실하게 공부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저만의 민주주의를 꾸려가 보겠습니다.
당신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바람
피의 바람이 불었다.
돌은 피로 물들고 생명은 꺾였다.
투쟁의 바람이 불었다.
수많은 희생에도 꺾이지 않고 계속 불었다.
희망의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아픔을 딛고 터를 닦았다.
과거의 바람이 지나간 지금,
과거의 바람이 닦아놓은 이 터에서
우리는 어떤 바람을 불러들여야 하는가
주먹밥
그 초라한 주먹밥에는
슬픔이 담겨있었고
화가 담겨있었고
정의가 담겨있었고
배려가 담겨있었고
희망이 담겨있었다.
그럼
오늘날 우리가 동경하는 저 고급 뷔페에는
무슨 정신이 담겨있나.
첫댓글 순례의 목적은 마음에 있다.
큰배움을 배웠구나.
석영이를 통해 나 또한 직면해야할것이 무엇인지 잘 살피는것을 다시 한번 더 알아차리게 되네.
고맙습니다.
옴~
걸음걸음마다 곱씹으며 가는 한 존재가 보입니다. 씹고 씹고 되새기다보면 어느새 소화가 되고 내 몸과 마음이 되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