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만남 초등부부 망년회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까?
이 나이가 되어도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 행복에 대한 개념이다.
어제 저녁에 초등학교 부부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은 철없던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정겹다.
너와 나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다 알기 때문에 가식을 하거나 포장하여 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관계로 오고가는 대화는 비교적 진솔하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친구의 속마음이 금새 드러난다.
부부가 같이 모임을 가진 기간도 40년이 넘었다.
사모님들이 화장을 하지 않고, 평상복을 입고, 일터에서 입던 작업복을 입고도 자랑스럽게 참여하는 모임이 이 모임이다.
이 모임에서는 친구 아내의 이름을 실명으로 불러도 조금도 어색해 하거나 언짢게 받아 들이지 않는다. 그렇게 막역한 사이로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오늘은 망년회를 겸한 모임이었는데 참석률이 저조했다.
식사 후 사회를 자청한 친구가 1년을 보내는 마지막 모임이기에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소감을 한 마디씩 하자고 했다. 다들 찬성했다.
제일 먼저 회장이 통상적인 인사를 했다.
금년 임인년도 벌써 저물어 가는데 남은 시간동안 잘 마무리하고 새로 맞을 계모년도 회원모두 건강 잘 챙겨 내년에도 변함없이 회에 참석해 주셨으면 한다는 내용에 덧붙여 60년 전의 계묘년 보리 흉년이야기를 언급했다.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자주 와서 보리를 말리지 못하고 썩혀 기근을 맞이한 이야기와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에서 밀가루를 도입해 와서 굶주림을 극복했던 이야기를 소개했다. 우리들이 겪었던 이야기이기에 서로 공감했다.
수목원을 운영하는 친구는
자신의 건강 유지법은 나무를 돌보면서 산을 오르내리는 그 운동이 최고의 건강유지법이라 소개하고, 아내가 생존해 있을 때 병간호한 이야기도 했다.
아무리 금슬 좋은 부부라 하더라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아내를 오래도록 간호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정이 멀어지게 되더라는 경험담을 이야기 했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더라고 이야기 하면서 건강을 잘 돌보도록 당부를 했다.
운전을 평생 직업으로 삼았던 친구는
부모님께서 형과 동생들은 모두 진학을 시키고 자신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농사일을 시켜 후계자로 삼을 작정을 하시더라는 것이었다.
제복을 입고 학교에 등교하는 친구들을 보고 서럽게 울었던 이야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붉은색 버스를 보고 나도 언젠가는 저런 차를 몰아 보았으면 하는 생각과 각오, 농촌에서 일만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복합적으로 일어나 부모님께 시위를 했더니 괭이를 들고 와서 자고 있던 방바닥을 팠던 이야기를 숨김없이 이야기 했다.
결국 어머니의 조력을 받아 자동차 학원에 등록을 하게 되었고 1967년부터 운전을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부모님 덕분에 이 세상에 하나의 점으로 태어났다. 자라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선을 그었다. 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면에다가 국어공부도 하고, 산수공부도 하고, 사회공부도 하고, 자연공부도 하면서 그 면을 넓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고 부터는 그 면을 차곡차곡 쌓아 입체를 만들었다. 그 속에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법과 내가 공부하여 내공을 넓히는 법도 넣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과 선악을 판별하는 기준을 스스로 터득하기도 했다.
진정한 우주는 결혼 생활을 하고 난 후부터였다.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팽팽함, 자녀들을 기르면서 얻은 행복감, 혹시나 잘못될까봐 마음 졸인 가슴앓이 이러한 번뇌는 나를 단련시키고 더 큰 틀의 우주를 만들었다.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회원 모두가 이러한 길을 걸어왔다.
내가 보기에 이 자리를 같이한 친구들은 모두 한 결 같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우주를 만든 친구들이다.
다 같이 공통점이 있다면 이젠 우리들이 점으로 돌아 갈 시점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하게 보내자.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는 묘하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불행한 삶 같이 여겨지는 일이 행복이 되는 경우도 있고, 보통 사람들이 행복한 삶 같이 여겨지는 것이 불행이 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는 이태석 신부다.
1981년 부산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장래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버리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다. 1992년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2001년 사제서품을 받자마자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로 파견을 자청하여 그곳에서 교육과 의료봉사에 헌신했다.
톤즈에 병실 12개 짜리 병원을 짓고 하루에 200~300명의 주민을 진료했다. 한센병을 비롯한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보살폈으며, 학교와 기숙사를 세워 가난한 어린이들이 자립하도록 도왔다. 그의 아낌없는 희생은 가톨릭 신자들을 중심으로 '미주 아프리카 희망후원회'를 결성, 수단의 어린이들을 활발하게 지원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2008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를 '한국의 슈바이처'로 부르며 추앙하고 있다.
성직자는 남을 위해 희생한 이런 고통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반면 억만장자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향년69세)는 노래를 잘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에게 반해서 마리아 칼라스와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생각하다가 칼라스와 결혼했다.
8년도 못되어 권태가 나서 이혼하고 재클린과 결혼했다.
케네디의 아내였던 재클린과 함께 살면 행복할 줄 알았다.
재클린과 결혼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 오나시스는 "내가 실수를 했다." 고 되뇌었다.
'파혼을 하려고 하니 재클린이 엄청난 위자료를 요구해 이혼도 못했다.
재클린은 한달 24억 원이나 되는 돈을 펑펑 쓰니, 오나시스는 화가 나서 혈압이 올라가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다.
재클린은 엄청난 유산을 챙겼다.
다른 사람이 부러워할만한 쟁취를 한 오나시스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도 불행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가정은 각각 다른 척도를 가지고 살아간다.
남들이 보기에 불행한 가정처럼 보이는 집이 오히려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가정이 오히려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집도 많다.
행복은 주관적인 척도고 판단이다.
자신만 만족하면 그것이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