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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
 
 
 
카페 게시글
서양철학 게시판 ■ 향연 다섯번째 (11월 19일) 수업내용 요약
홍유경 추천 0 조회 153 15.11.21 15:26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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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11.22 09:59

    첫댓글 부지런 하셔라, 수업시간에 대칭적 관계와 비대칭적 관계에 대한 정리를 못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도 없었고, 귀희님의 글에서 소크라테스와 크산티페 사례를 가지고 토론을 해 볼려고 했는 데 빠뜨렸어요. 중요한 문젠데, 정리 잘 하시는 유경님이 해 볼래요? 소크라테스와 대칭적 에로스 관계라면 크산티페는 어떻게 아름다움을 생산할 수 있을까? 비대칭적 관계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자유-소유의 문제로 정리해 보세요 쉬희님도 한번 해 보시고, 다른 분들도 소견을 말해 보세요

  • 작성자 15.11.25 17:37

    아이고~이 댓글만 보고 나름 소견써서
    댓글달려고 카페들어온 순간...
    샘께서 좌르륵 정답댓글 다신거 봤네욤~ㅋ
    그래도 기왕에 쓴 거 올립니당^^

  • 작성자 15.11.25 17:38

    에로스는 무언가 결여된 상태에서 좋음을 향해 가는 것이니까 에로스 관계는 누군가는 그것이 있고 누군가는 그것이 없는 비대칭적인 상태에서 출발하게 되겠죠.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보편적인 에로스의 모습입니다.
    이 비대칭적 관계를 상승시켜 대칭성을 회복시킨 것이 소크라테스의 에로스입니다. 대칭적 에로스관계란 그냥 막연히 물리적 힘의 균형상태를 말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결핍을 상대로부터 채우고자 함이 아닌, 서로 상대방의 에로스가 상승하여 필로스로 갈 수 있도록 독려하며 함께 성장하지만 독립적이고 자유한 자아의 상태를 유지하는 관계 아닐까요?

  • 작성자 15.11.25 17:39

    상대에게 나를 채워줄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는 의미에서 크산티페와 소크라테스는 비대칭관계인 셈이죠.
    비대칭적 관계는 나의 결핍을 채워줄 상대의 무엇인가와 함께 상대방자체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테니 파열음을 예고하는 관계라고 생각됩니다.

    소크라테스적 에로스관계의 완성(필리아)는 상대와 나의 자유를 온전히 대칭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세상에 거져 얻어지는 건 없는 듯..
    소크라테스도 결국 자기 사유의 온전한 자유와 독립을 지켜내기위해 목숨값을 치뤄야 했으니까요.
    얽매임 없이 자유한 사람의 뒤편엔 타인이 모르는 수많은 가시가 꽃혀 있는거겠죠?

  • 15.11.25 07:49

    “나는 에로스에 관한 일들 말고 다른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터라서”(《향연》177d)

    에로스에 관해서 안다는 것 = 자신이 철학자, 즉 지혜(=가장 아름다운 것)를 사랑하는 자임을 자각하고 있다는 뜻이죠. 지혜를 사랑하는 자 = 무지를 자각하는 자. 알키비아데스의 소크라테스 찬양 연설은 소크라테스의 연설에서 밝힌 에로스가 소크라테스 자신임을 말해주고 있어요.

  • 15.11.25 08:09

    플라토닉 러브는 인간이 인간과 만나서 어떻게 몸과 마음을 성숙시켜 나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단면도와 같은 겁니다. 동성애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인간의 에로스가 성적인 에로스를 포함하면서도 단순히 생물학적 생산관계(자식의 생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보다 고차원인 아름다움(지성적 아름다움)의 생산으로 나아갈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생물학적인 생산(육체에 속하는 것)도 온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입니다.

  • 15.11.25 07:52

    플라톤이 이해하는 지성의 능동적 힘은 생물학적인 현상에서부터 사회와 공동체를 이루는 윤리와 도덕, 그리고 자연과 우주의 이치에 이르기까지, 즉 지상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몸의 건강은 정신의 건강과 뗄 수 없고(절제는 정신이 육체를 컨트롤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죠. 절제 없이는 건강한 몸을 가질 수 없어요. 몸의 아름다움은 몸이 최상의 건강상태에 있을 때 발현됩니다. 절제는 지성의 컨트롤에 몸과 마음이 길들여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걸 그리스어로 아레테라고 하죠.), 개인의 정신 건강은 사회의 건강(윤리 도덕, 정의)과 떼어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움의 상승은 줄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 15.11.25 07:54

    이게 플라톤이 이해하는 인간과 사회, 자연과 존재의 원리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지성의 힘, 아름다움을 생산하는 에너지는 언제나 하늘을 향해 비상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고향이 그곳이니까요(《파이드로스》의 신화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범인들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듯이, 에로스도 모든 인간의 영혼 속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힘, 지성적 에너지 같은 것이죠. 극히 소수이긴 하겠지만 불성을 갈고 닦으면 성불의 단계까지 이르듯이, 영혼에 깃든 에로스, 아름다움을 생산하는 지성적 에너지인 에로스도 인간을 지상에서 영원으로 이르게 하는, 그래서 인간을 인간답게 할 뿐 아니라 인간 이상으로 고양시키는, 신적이며 영묘한 것이랍니다

  • 15.11.25 08:08

    남녀 관계든, 부모자식 관계든, 동료들 사이의 관계든, 몸과 마음의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보는 거지요. 그 관계의 핵심은 대칭적 관계(따로 함께의 관계)지요. 대칭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기능적인 덕이 아니라 도덕적인 덕입니다. 도덕적인 덕이 모든 인간관계의 바탕이고 이 바탕에서 기능적인 덕이 제대로 발현되는 것이죠.
    알키비아데스는 아름다움을 생산할 수 있는 좋은 자질을 갖추었어나, 전통적인 에로스 관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지요. 몸의 아름다움으로 정신의 아름다움을 사겠다는 생각으로 소크라테스에게 구애를 했으니까요. 그는 도덕적인 덕을 갖출 준비가 되어

  • 15.11.25 08:08

    되어 있지 않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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